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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인 프랑크 라루씨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인 프랑크 라루씨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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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암담했다.

국내 피해자들뿐 아니라 국제 인권활동가의 눈에도 후퇴상황이 명확했다. 그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모범 인권국가로 꼽혔던 한국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경찰국가로 보일 정도로 역주행하고 있다.

14일 오후 1시 30분,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UN특별보고관 초청 워크숍'에서는 각 분야에서의 자유 침해 상황이 발표됐다. 언론인들의 보도와 교사·공무원들의 시국선언, 시민들의 집회·시위, 누리꾼의 글까지 억압 사례는 다양했다.

특히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작심한 듯 "한국의 인권상황이 뒷걸음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유린당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모범사례였던 한국, 경찰국가 같다는 생각 들 정도"

무이코 조사관은 "과거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였고 앰네스티(가 선정하는) 양심수이기도 했다, 한국은 아태 지역에서 모범사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의 정부관료 등에게 "한국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설명한다고 한다. 그가 UN에 전달한 한국의 인권상황은 이랬다.

"많은 시민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받지만, 전경이 처벌받은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사진·동영상 등 (경찰 폭력의) 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그렇다. 정부는 '반정부시위'라고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대 반정부 시위자 별로 본 적 없다. 2009년 전경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해외 방문객들이 보면 한국이 경찰국가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고작 10명 시위하는데 경찰은 500명이 있다.

정부 사람들은 아마 (시민들이) 지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판이다. 정부가 길들이려 해도 여러분은 이런 시위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안하면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는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워크숍'에서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워크숍'에서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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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워크숍에는 '미네르바'로 알려진 인터넷 논객 박대성씨도 참석해 자신의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사례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뒤로 가는 역사"라고 표현하면서 "스스로 권리의 가치를 망각하는 순간 대중은 언제나 복종과 희생을 강요받았다"면서 시민정신을 강조했다.

프랑크 라루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UN 특별보고관'은 "정부 초청을 받지 않았고 학자로서 한국을 방문했다"며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만이 100%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면서 "공직에 있으면 일반 사람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을 명예훼손으로 민형사 고소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관련 "일반인들도 인터넷에서는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프랑크 라루 UN특별보고관에게 전달된 한국의 생생한 표현의 자유 억압 사례는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 : 일반인도 글 잘못 올리면 징역] 2008년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활동가 5명이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체포됐고, 반국가단체 구성 및 찬양·고무행위 위반 혐의로 간부 4명이 구속됐다. 국보법 적용대상은 일반 시민으로 확대되어, 지난해 2월 농민 정아무개씨가 인터넷에 한미FTA 반대, 통일농업 실현 등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가 '찬양고무죄'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온오프라인의 헌책방 주인들도 이적표현물 소지 및 배포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서적을 압수당했고, 일부 서점 주인들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노엄 촘스키 교수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인터넷 게시물 : 한국 이메일을 떠나는 네티즌들]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탄압 사례는 올해 초 구속됐던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일 것이다. 박대성씨는 이날 워크숍에서 나치 히틀러의 언론탄압을 언급하면서"국가 이익에 우선해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침해받아왔으며, 애국주의로 포장돼 지배계층이 기본권 제한을 합리화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인터넷사이트 '다음'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의 광고불매 관련 글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언소주의 새 글은 등록한지 5분만에 삭제됐다.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언소주 운영진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올해 2월 회원 2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례를 발표한 이태봉 언소주 개설자는 "네티즌들이 글을 게재할 때 직접적 표현을 자제하는 등 자기 검열을 하거나 과거에 올린 글을 삭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이 <PD수첩> 방송작가의 사적 이메일을 압수수색하자 네티즌들이 이메일 계정을 해외 인터넷서비스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 현상도 나타났다.

[언론 자유 침해 : 가족 앞에서 수갑찬 기자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에 대해 보도한 <PD수첩>의 이춘근 PD와 작가들은 농림식품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돼 지난 3월 긴급 체포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였던 구본홍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YTN 소속 언론인들도 긴급체포됐다. KBS에서는 정연주 사장이 정권에 의해 강제 해임됐다.

이날 워크숍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인 20여명이 가족 앞에서 수갑찬 채 강제구속됐고 이 순간에도 30여명의 언론인들이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50여명 가까운 언론인들이 해직·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면서 "적어도 이전 두 번의 정권에서 기사를 이유로 구속되거나 체포된 언론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집회·시위의 자유 : 발암물질 최루액에 테이저건까지]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경찰은 버스나 병력을 이용해 광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당시 서울광장 폐쇄가 대표적 사례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치적 구호를 외쳤거나 릴레이 1인시위, 유인물 배포 등의 활동을 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것도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올해 들어 경찰은 진압작전에 발암물질이 포함된 최루액, 테이저건·다목적 유탄발사기 등 대테러무기를 사용하는 등 장비를 강화했다. 단순 집회 참가자에 대해서 일반도로교통법을 적용해 300만원 이상의 벌금을 구형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사례를 발표한 유성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경찰은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집회나 시위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사·공무원 표현의 자유 : 국민의 공무원 되면 잘린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지난 7월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싶다"는 신문광고를 낸 뒤, 현재까지 소속 공무원 11명이 파면·해임됐다.

이날 홍성호 민주공무원노조 전 수석부위원장은 "이는 공무원노조가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한 데 따른 정치적 탄압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가공무원법·공무원노조법 개정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아예 자유를 박탈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 정권에서도 교사 시국선언이 종종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 하의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교조 전임자 8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유례없이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개인 이메일, 계좌 등을 조사했다. 시국선언을 주동한 혐의로 지난 7일 검찰 조사를 받은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이날 "정부 태도는 교사에게 정권 시녀가 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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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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