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제 한새봉을 넘어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 한새봉을 넘어 등하교하는 아이들 이제 한새봉을 넘어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언제부턴가 도시 간 경계가 강이나 산, 숲이 아닌 도로가 됐다. 웬만한 도시마다 우회도로나 순환도로라는 이름으로 아스팔트가 도시 전체를 에워싸 버렸거나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물론, 이유는 단 하나, 도시 내부의 교통 혼잡을 개선하고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거다.

새로 도로를 낼 때마다 꼭 그만큼 사라지는 건 으레 산과 숲이다. 현 정부가 마치 주술처럼 되뇌는 '녹색 성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새로 숲을 조성하기는커녕 멀쩡한 산을 깎아 아스팔트로 덮으려는 것이다. 전국 곳곳이 도로 공사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늘 그렇듯 '개발'이 행해지면 주민들의 갈등이 나타나기 일쑤고, 이곳 광주광역시의 북쪽 끝자락, 일곡택지지구도 그중 한 곳이다.

콘크리트 일색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그나마 초록으로 품어 감싸고 있던 한새봉이 이번 북부 순환도로 공사로 인해 크게 훼손될 처지에 놓였다. 터널 구간도 있지만, 불가피하게 봉긋한 산 능선을 반으로 잘라내어 콘크리트 옹벽을 쳐야 할 판이다. 왕복 6차선에 제한속도 80km의 고속화도로이니, 인근의 주택과 학교를 위해 흉물스러운 방음벽도 필요할 것이다.

당국은 예언자가 되어 도시의 먼 미래를 꿰뚫어 본 것일까. 이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고, 공사가 예정대로 착수돼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주변 산업단지의 물동량이 급증하고, 인구가 과밀해져 도시가 팽창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한새봉 숲에 나란하게 가꿔놓은 교정 안 산책로의 모습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쉼터가 되곤 한다.
▲ 숲을 따라 교정에 낸 산책로의 모습 한새봉 숲에 나란하게 가꿔놓은 교정 안 산책로의 모습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쉼터가 되곤 한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주변 산업단지의 물동량이 늘어나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 좋겠다고 바랄 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욱이 도시의 인구 과밀은 쾌적한 생활 여건을 저해하는, 어떻게든 막아야 될 문제라고 인식한다. 어쨌든 공사의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문제를 제기해도 당국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뿐이다.

물론, 도로 개설에 찬성하는 주민도 있다. 도로가 뚫리면 교통이 편해질 테니 좋지 않으냐는 '단순명료한' 이유를 대곤 하지만, 모든 개발에는 돈이 얽혀있는 법, 접근성이 높아지면 집값이 오를 거라고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그들에게 산이 깎이고 숲이 헐리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기회비용이라 여길 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쯤 산과 숲이 헐린다고 쾌적한 생활 여건이 순식간에 나빠질 리는 없다. 기껏해야 개설될 도로에 바로 인접한 아파트 주민과 학교의 학생들만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뿐이다. 푸른 숲이 우거진 환경은 우리 삶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눈길을 주고 돌보는 종속변수가 시나브로 돼버렸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조차 도로 공사에 쉽게 찬성하는 이유다.

산에 사는 다람쥐와 새와 나무와 꽃이 '주어'가 돼 환경 문제를 설명한 적이 우리에겐 없다. 늘 인간의 탐욕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끝 모를 탐욕은 우리에게서 이른바 '환경 감수성'을 철저히 앗아갔다. 어쩌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본성이랄 수 있는 그것은 어느덧 우리 삶 속에 사치스러운 정서가 돼버렸다.

도로공사가 시작되면 이 울창한 숲의 절반은 헐리게 된다. 초록의 숲을 콘크리트로 된 방음벽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 교실에서 내려다본 한새봉의 모습 도로공사가 시작되면 이 울창한 숲의 절반은 헐리게 된다. 초록의 숲을 콘크리트로 된 방음벽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비록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상자에 갇혀 살고 있지만, 베란다에서 내려다볼 때 푸른 숲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회색과 검은색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 짙푸른 녹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안온한 휴식이 되며, 깨끗한 공기와 사시사철 지저귀는 새소리는 차라리 덤이다. 적어도 잿빛 도시에 살면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산과 숲을 지켜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주민들의 삶에 쉼을 주는 한새봉은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친구 같은 존재다.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난 산책로는 많은 아이들의 통학로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해야 하는 아이들은 울창한 이 숲길을 걸으며 피로함을 잊고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이 등하굣길은 그들이 숲과 나무를 만날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인근 학교 아이들은 수업 시간 공부가 지칠 때 잠깐 눈을 돌려 창밖 한새봉 숲을 본다. 마치 숲속에 서 있기라도 한 듯 큰 호흡을 하며 짧은 휴식을 가진다. 그것은 수업 집중을 위한 청량제와도 같다. 만약 바라보는 곳이 숲이 아니라 소음과 먼지, 진동과 매연으로 뒤덮인 아스팔트 도로라면 어떨까.

몇몇 학교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두루뭉수리 넘길 수 있을까. 아무리 공부에 찌들었다 해도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회색보다 초록색에 가깝다.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며 너나없이 학교의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현실일진대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로부터 숲의 위안을 앗아가는 것은 잔인하다.

계획 중인 순환도로가 전혀 쓸모없는 예산 낭비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 다만 앞서 강조한 대로 그 선택이 가져올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크다. 굳이 도로가 필요하다면 산과 숲을 그대로 살린 채 기존의 도로를 확장할 수도 있다. 한시 바삐 서둘러 강행해야 할 만큼 이 지역의 교통 상황이 열악하지도 않으며, 도로가 개설돼 설령 자기 집값, 땅값이 오른다고 기뻐할 주민도 많지 않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도로 개설이 시급하다고 얘기하는 주민은 별로 없다. 뒷동산 한새봉을 허물어 도로를 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주민들도 아직 많다. 누군가 도로가 절실하다고 말한다면, 세금 1,500억 원이라는 공사 대금을 풀어 일시적으로 지역 경제를 부양시켜보려는 당국과 개발 이익을 노리는 건설업자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자못 우려스러운 것은 평화롭던 주민들 사이에 개발에 따른 이해관계의 주판이 퉁겨지면서 갈등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하루 바삐 공사에 들어가라고 아우성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사 강행을 막기 위한 집회와 서명운동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주민들의 갈등을 조장해놓고 끝내 웃는 자는 대체 누굴까.

어쨌든 당국의 계획대로라면, 일곡택지지구 주민들과 등하굣길 아이들의 친구인 한새봉의 수명은 3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서글픈 운명을 한새봉에 사는 다람쥐와 새와 나무와 꽃들은 알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광주 북부순환도로, #한새봉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