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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전고성 입구에 있는 대수차. 대수차 일대는 밤에 더욱 화려하다.
 다옌전고성 입구에 있는 대수차. 대수차 일대는 밤에 더욱 화려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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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탄공원에서 바라본 위룽설산. 리장 도심에서 위룽설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헤이룽탄공원에서 바라본 위룽설산. 리장 도심에서 위룽설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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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성 서북부에는 두 개의 성산(聖山)이 있다. 하나는 리장(麗江)의 위룽설산(玉龍雪山)이고, 다른 하나는 더친(德欽)의 메이리(梅里)설산이다. 두 산의 해발은 각각 5596m, 6740m에 달한다.

두 산은 만년설로 뒤덮인 고산준봉이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되지 않은 처녀산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차이점도 있다. 위룽설산은 나시(納西)족의 성산이다. 이에 비해 메이리설산은 티베트 불교의 8대 성산 중 하나로, 티베트인의 숭배 대상이다.

위룽설산은 리장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13개의 봉우리가 모여서 마치 은색의 용이 춤추는 모습 같다고 해서 위룽(玉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기는 아름답지만, 산세는 험준하다.

위룽설산은 무엇보다 도시 리장을 키운 원동력이었다.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구릉에 아름다운 호수 헤이룽탄(黑龍潭)을 만들었다. 호숫물은 다시 여러 갈래로 흘러내려가 나시족의 마을을 형성했다.

위룽설산 중턱에는 빙촨(冰川)공원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4680m의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도중에는 삼나무 원시림에 둘러싸인 푸른 호수가 있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만년설, 원시림이 서로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위룽설산의 봉우리는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다. 실제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봉은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이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리장을 적셔 주고 있는 것이다.

고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위룽설산도 하루 종일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언제나 구름 속에 숨어 찾는 이에게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전망대 벽면에는 '자연주의를 체험하라'(體驗自然主義)가 적혀 있다. 날씨를 탓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명령이다.

위룽설산은 일종의 바람막이 구실을 한다. 리장은 평균 해발 2400m의 고산도시다. 하지만 연평균 온도가 섭씨 12.6~19.8℃로 일정하다. 겨울철도 4~11.7℃를 유지하는데, 위룽설산이 티베트고원에서 내려오는 한랭전선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바이쉐이허는 다랑논처럼 층층이 된 석회암 지대 바이쉐이타이를 본떠 만들었다.
 바이쉐이허는 다랑논처럼 층층이 된 석회암 지대 바이쉐이타이를 본떠 만들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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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난개발로 어수선했던 바이쉐이허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변모했다.
 초창기 난개발로 어수선했던 바이쉐이허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변모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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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400m의 윈산핑(雲杉坪) 아래에는 바이쉐이허(白水河)가 있다. 바이쉐이허는 샹그릴라로 가는 길에 있는 바이쉐이타이(白水臺)를 본떠 만든 것이다. 바이쉐이타이는 동파(東巴)교의 발상지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석회암이 굳어 다랑논처럼 여러 층이 형성됐다.

바이쉐이허는 인공적인 구조물이지만, 위룽설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과 함께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위룽설산과 바이쉐이허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최근에는 장사치들이 야크(牦牛)를 데려와 관광객을 올라 태워 사진을 찍어 돈을 번다.

바이쉐이허는 리장시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윗부분은 바이쉐이타이를 본떴지만, 궁극적으로는 쓰촨(四川)의 주자이거우(九寨溝)와 황룽(黃龍)을 합쳐 벤치마킹한 느낌을 준다. 초창기 난개발로 어수선했지만, 지금은 편안한 트레킹 코스로 잘 정돈됐다.

위룽설산 매표소인 간하이쯔(甘海子) 주변에는 설산극장이 있다. 해발 31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극장이다. 설산극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 등 세 연출가가 제작한 <인상(印象)·리장-설산>을 공연한 곳이다.

2008년 7월 초연한 <인상·리장>은 위룽설산을 배경으로 500여명의 비전문 배우가 출연한 대형 버라이티 쇼다. 16개 마을에서, 10여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배우는 모두 보통 농민으로 수개월 간의 연습을 거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욱 원시적인 춤과 순박한 노래를 내뿜어 공연을 빛냈다.

흥미로운 점은 <인상·리장>의 주인공 모두가 남자라는 것이다. 나시족은 작은 일이나 집안일은 여자가 해도 큰일, 바깥일은 남자가 도맡아 했다. 장이머우는 나시족의 호방한 기상을 남자들의 튼튼한 몸과 정신으로 잘 표현했다. 요즘은 실제 공연은 거의 안 하는 대신 공연실황을 담은 DVD 타이틀을 팔고 있다.

위쉐이자이 입구에 있는 동파신조. 동파교의 신물 중 하나다.
 위쉐이자이 입구에 있는 동파신조. 동파교의 신물 중 하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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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신원에는 동파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천로도가 부감되어 있다. 천로도는 다시 지옥계, 인간계, 천계로 나뉘어진다.
 동파신원에는 동파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천로도가 부감되어 있다. 천로도는 다시 지옥계, 인간계, 천계로 나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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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룽설산 자락에는 위쉐이자이(玉水寨)와 동파신원(神園)이 있다. 두 곳은 리장 나시족 고문화의 성지다. 명당 중 명당자리(風水寶地)로, 자연 풍광이 아름답다.

위쉐이자이는 우거진 나무숲을 끼고 동파벽화와 동파음악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동파 시조신을 모시는 신전은 나시족 전통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나시족 고문화를 발굴하고 정리, 전승, 연구하는 문화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동파신원은 동파교의 사원으로, 야외에서 시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우리의 장승과 유사한 나무 장대가 수백 개 보관되어 있다. 본래 동파신원에는 1만여 개의 장대가 있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대부분 훼손당하고 지금의 것들만 남게 됐다.

장대는 동파신원 입구부터 양쪽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왼쪽은 음의 세계, 오른쪽은 양의 세계를 뜻한다.

동파교는 난생(卵生) 설화를 지니고 있다. 음의 세계는 검은 알이, 양의 세계는 흰 알이 태어난다는 세계관이다. 장대 중간 바닥에는 동파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천로도(天路圖)가 부감되어 있다.

천로도는 셋으로 나눠지는데, 지옥계, 인간계, 천계가 그것이다. 생전에서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하늘의 세계인 천계에 가기도 하고 지옥의 세계에 가기도 한다는 의미다.

음의 세계 길을 가다 보면 인간계 입구에 '견목저두'(見木低頭)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나무를 보면 머리를 숙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무는 여성을 의미한다. 여성에게 고개를 숙이고 떠받치라는 나시족의 모계사회 전통을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나시족은 남자가 큰일, 바깥일은 도맡아 해도 여성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전통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동파교의 최고신인 태양신이 여신인 것을 봐도 모계사회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바이샤촌 마을 광장 한편에서 바시야세악을 연주하는 민간 예술인들.
 바이샤촌 마을 광장 한편에서 바시야세악을 연주하는 민간 예술인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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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박물관에는 과거 동파교 제사장이 주관했던 제천의식의 제단이 옛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리장박물관에는 과거 동파교 제사장이 주관했던 제천의식의 제단이 옛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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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쉐이자이 아래 바이샤(白沙)촌은 나시족 고음악의 하나인 바이샤세악(細樂)의 발상지다. 나시 고음악은 당·원대의 궁중음악에 유교 예례음악, 도교 법사음악, 당송대의 사(詞), 곡패(曲牌) 등이 융합됐다.

바시야세악은 나시족이 700여년간 창제하고 발전시킨 고음악의 정수다. 나시족 민간에서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왔는데, 전통 음계부호인 공척(工尺)으로 표시된 악보를 매개로 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친다.

음악 내용은 나시족의 역사, 신화, 설화, 사랑, 애환 등을 담고 있다. 노래와 춤도 있지만 주로 악기 연주에 담아 표현한다. 옛날에는 전문적인 악공에 의해 연주되고 불려왔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민간 예술인에 전수되고 있다.

바이샤세악은 20세기 중반 한 차례 소실을 당했다. 1956년 지방정부와 나시족의 노력으로 다시 부활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오늘날 중국정부는 고대음악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르며, 나시 고음악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헤이룽탄공원 북쪽 끝에 있는 리장시박물관에서는 나시족과 동파문화의 전모를 알 수 있다. 1984년 문을 연 리장박물관은 200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박물관 내 소장품만 1만여 점. 그 중 국가급 유물만 42점에 달한다. 중소도시 박물관치곤 적지 않은 규모다.

리장박물관은 크게 동파문화전, 리장고성문물자료전 등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리장뿐만 아니라 나시족의 탄생, 이주, 정착 등 변천과 동파교, 동파문자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동파교의 제천의식, 식사 전마다 집안에서 조상께 공양을 드리던 훠탕(火湯) 등을 재연하고 전시하고 있다.

한족의 12지신 및 오행도와 비교하여 동파교와 동파문자로 풀이하여 역법 풀이도 눈길을 끈다. 하루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는 리장박물관은 중국 10대 중소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속이 꽉 찬 향촌박물관인 셈이다.

다옌전고성의 중심가 쓰팡제(四方街) 일대의 야경. 고성은 밤에 관광객들이 더욱 번잡하게 붐빈다.
 다옌전고성의 중심가 쓰팡제(四方街) 일대의 야경. 고성은 밤에 관광객들이 더욱 번잡하게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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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업소르 변한 나시족의 전통 기와집. 식당과 술집마다 틀어대는 음악 소리로 청각이 마비될 정도다.
 유흥업소르 변한 나시족의 전통 기와집. 식당과 술집마다 틀어대는 음악 소리로 청각이 마비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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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고성은 밤이 더욱 화려하고 붐빈다. 매일 밤마다 다옌전(大硏鎭)은 거대한 쇼핑센터이자 유흥가로 변한다. 오늘날 다옌전 내 기와집은 대부분 가게, 식당, 술집으로 바뀌었다. 전통 건축물은 낮에는 넘쳐나는 관광객 속에서도 우아한 기품을 유지하지만, 밤에는 영락없는 유흥업소일 뿐이다.

술집 앞은 소수민족 의상을 입은 삐끼들로 혼잡스러워 통행이 불편하다. 가게에서 틀어대는 음악 소리는 오가는 사람들의 청각을 마비시킬 정도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수로 변의 식당이나 술집이다.

금세기 초만 해도 다옌전고성은 나시족의 거주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했지만, 지금 고성 내 기와집에서 사는 원주민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나시족은 외지인에게 집을 팔거나 임대 주고 신도시 아파트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고성이 너무 시끄러워 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리장의 관광 개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옌전고성 주민들은 장사, 부동산 매매 및 임대, 관광업 등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나시족은 여전히 빈곤하다.

2007년 현재 리장의 농촌 주민 소득은 1800위안(약 31만원)이지만 도시 주민 소득은 1만9000위안(한화 약 323만원)에 달한다. 한 지역 내에서 무려 10배 이상의 도농 불균형과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리장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농촌 주민들의 불만이 늘고 있고 젊은이들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족의 영향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한족은 리장의 상권을 쥐어 잡고 있다. 한족은 지방정부의 장례정책과 투자특혜를 받는데다 뛰어난 비즈니스 마인드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던 나시족을 쉽게 따돌리고 있다.

고성 내 기와집을 놀고 먹고 즐기기 좋은 식당, 카페, 술집 등으로 바꾼 이들은 바로 한족이다.

소원을 담아 수로에 띄어보내는 염원 촛불. 나시족의 명절 축제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소원을 담아 수로에 띄어보내는 염원 촛불. 나시족의 명절 축제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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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추냥쓰팡차이에서 맛볼 수 있는 나시족 전통 음식. 한족 음식보다 기름끼가 훨씬 적어 우리 입맛에 꼭 맞는다.
 식당 추냥쓰팡차이에서 맛볼 수 있는 나시족 전통 음식. 한족 음식보다 기름끼가 훨씬 적어 우리 입맛에 꼭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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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산업을 앞세운 경제 개발과 현대화가 리장에게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리장이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 발돋움하면서 나시족의 생활 수준은 전체적으로 향상됐다. 하지만 심각한 한족화와 상업화로 인해 민족의 정체성에 위기를 맞은 것도 문젯거리다.

무분별한 개발의 폐해는 독버섯처럼 퇴폐산업을 번성케 했다. 향락업소에는 나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여성들이 한족이 대다수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매매춘에 나서고 있다. 과거 리장은 마약 청정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윈난성 내에서 중독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황금상권을 두고 조직폭력배의 이권 개입과 금품 갈취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리시(李錫) 리장박물관 관장은 "지난 10여 년간 빛의 속도로 성장하면서 나시족 사회가 급속히 해체됐다"며 "지방정부가 지속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해 민족 문화와 공동체 유지에 힘쓰고 있지만 한족화·상업화로의 대세는 막을 수 없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관광 개발을 통한 번영 속에 빈부격차와 물질문명의 독초, 한족화와 상업화로 몸살을 앓는 리장. 혼돈스런 중국 소수민족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곳이다.

# 여행Tip 1

반나절을 이용해 리장 곳곳을 둘러보려면 차량을 빌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위룽설산 일대까지 4~5시간 살펴볼 경우 200~250위안(약 3만4000원~4만2500원)이면 충분하다. 렌트카는 다옌전고성 입구와 주차장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리장고성 보호비 80위안(약 1만3600원)을 구입했을 경우 위룽설산 입장료는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위쉐이자이와 동파신원도 고성 보호비 영수증을 보여주어야만 입장을 할 수 있다. 리장시박물관은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하는데, 입장료는 30위안(약 5100원)이다.

# 여행Tip 2

리장은 숙박시설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다옌전고성 내에서는 전통 기와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묶는 것이 좋다. 가격은 한 방당 60~80위안(약 1만200원~1만3600원)으로 저렴하다. 난방시설은 따로 없어 준비된 전기장판을 이용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추천할만한 곳은 고성 입구 신이제(新義街) 지산샹(積善巷) 일대다. 고성과 다른 곳으로의 출입이 편하고 다옌전 내면서도 시끄럽지 않다. 내가 자주 묶는 지샹(積祥)객잔은 한 방당 50~60위안에 불과하고, 위치도 아주 편리하다.

나시족인 객잔 주인은 겉은 무뚝뚝하지만, 얘기를 걸면 친절하게 나시족 및 다양한 여행 관련 정보를 들려준다. 객잔 앞에는 전통 나시족 음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추냥쓰팡차이(廚娘私房菜)도 있다. 방 예약을 위한 전화번호는 (0888)512-9710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운남, #리장, #옥룡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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