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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의 영묘' 전경. 태양은 아주 강렬했고, 주변 풍경은 온통 향토색이고, 그런 가운데 우뚝 솟은 풍성하고 키큰 나무와 새파란 하늘이 묘한 색의 대비를 이루었다.
 '사디의 영묘' 전경. 태양은 아주 강렬했고, 주변 풍경은 온통 향토색이고, 그런 가운데 우뚝 솟은 풍성하고 키큰 나무와 새파란 하늘이 묘한 색의 대비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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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산과 황토빛 집들, 그리고 키큰 나무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황토산과 황토빛 집들, 그리고 키큰 나무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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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시인 사디의 무덤을 향해 가는 길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커다란 가방을 든 뚱뚱한 독일 아줌마가 걷던 캘리포니아 사막을 연상시켰습니다.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치게 하는 작열하는 태양 빛이 닮았고, 흙먼지 올라오는 풍경도 비슷합니다. 황토 빛 집들과 황토 산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그다드 카페>의 캘리포니아 사막 인상이 다소 황량했다면 사디의 무덤이 있는 사막은 밝은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쉬라즈 외곽에서 우리 머리로 내리꽂힌 태양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강렬하고 그렇게 밝은 태양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작은 방 안에 수천수만의 전등을 켰을 때의 그 강렬한 밝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페즈의 무덤에서 사디의 무덤으로 가기 위해 우린 버스를 탔습니다. 지하철은 타봤지만 버스는 처음이었습니다. 역시 지하철처럼 버스 가운데 가로막이 놓여 있고 남자들은 앞쪽에 여자들은 뒤쪽으로 앉았습니다.

버스 안의 여자들은 테헤란의 멋쟁이들과는 달리 검정색 차도르를 많이 걸쳤습니다. 쉬라즈에는 이란 3대성지의 하나인 '샤에 체라그'가 있어서 쉬라즈인들이 더욱 종교적이고, 그게 또 차도르를 걸친 여자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대도시로 갈수록 서구문명을 많이 접하다보니 개방적으로 변하고, 지방은 아직 문명 간의 거래가 소홀하다보니 보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한몫 했겠지요

차도르 여인들에게는 수줍음이 많아 보였습니다. 우리를 몰래 훔쳐보기는 했지만 대놓고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고, 또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검은 차도르를 걸친 조용한 그녀들 사이에 앉아서 황토 빛 일색의 쉬라즈의 시골길을 달리자니 이상한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강렬한 태양에는 여유와 평화가 실려 있는 모양입니다.

버스 기사가 우리에게 사디의 무덤에 도착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디의 무덤은 외곽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디가 시인으로서 페르시아 인들에게 하페즈보다 인기가 덜하기 때문인지, 사디의 무덤은 하페즈의 무덤보다 규모도 작고 방문객도 많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하페즈의 무덤을 보고 와서인지 사디의 무덤이 한층 작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괜히 왔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사디의 무덤이 비록 관광지 자체로는 그다지 볼 게 많지 않지만 쉬라즈 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그리로 가면서 마주치는 풍경이나 분위기는 그 어떤 관광지에서 만나는 풍경보다 인상적이었기에 만약 이란 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코스를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란의 지방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사디의 영묘'에 가기 위해 우리가 탄 버스. 가로막이 가로질러 있고, 앞쪽은 남자가, 뒤 쪽은 여자가 앉았다.
 '사디의 영묘'에 가기 위해 우리가 탄 버스. 가로막이 가로질러 있고, 앞쪽은 남자가, 뒤 쪽은 여자가 앉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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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찰떡 아이스크림 '소네티'
 이란의 찰떡 아이스크림 '소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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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의 무덤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자 키가 높은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하페즈의 무덤은 담장이 높고 또 영묘 부지가 넓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디의 무덤은 규모가 작고 담이 낮아서 마을의 풍경이 영묘와 어우러져서 보였습니다. 키가 크고 풍성한 나무는 마치 다른 세계의 나무 같은 이질적인 인상을 주었습니다. 황토 빛 산을 배경으로 풍성한 나무가 파란 하늘을 향해 치솟았는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사디의 무덤은 기념관과 대리석 관이 있는 묘가 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붕은 모스크 형식이었습니다. 역시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에는 많은 동전이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연못에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는데 이 나라도 그런 문화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동질성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페즈의 무덤에서처럼 사디의 관 앞에서도 한 사람씩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기도 내용은, 시인의 무덤이니만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사디 또한 하페즈와 마찬가지로 이란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고, 하페즈만큼은 아니지만 이란인들은 사디를 공경한다는 뜻으로 거리 이름에 사디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테헤란의 번화가 이름이 '사디로'인데 그 거리가 바로 지금 우리가 찾은 사디를 기념한 거리인 걸 보면 이란인들은 시를 사랑하고, 문학가를 잘 대접하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

사디의 관에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는 작은 애.
 사디의 관에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는 작은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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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이 던져진 연못. 큰 애도 동전을 던지면서 기도하고 있다. 연못에 동전을 던지면서 기도하는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그게 이란에서도 있는 걸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동전이 던져진 연못. 큰 애도 동전을 던지면서 기도하고 있다. 연못에 동전을 던지면서 기도하는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그게 이란에서도 있는 걸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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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마치고 정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햇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눈을 뜰 수 없다고 애들이 투정을 부렸습니다. 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괜찮지만 애들에게는 강한 빛을 직접 눈으로 되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어디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냐고 했더니 사디의 무덤과 도로 하나를 마주보고 있는 가게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우린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사람들처럼 신나서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족이 먹던 아이스크림은 찰떡처럼 끈기가 생기는 그런 신기한 아이스크림이었던 것입니다.

이란의 명물 중 하나인 소네티 아이스크림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먹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란 여행을 탐탁치 않게 여졌던 아이들을 설득한 것도 이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터키에서 보물찾기'라는 만화책에서 터키에는 찰떡처럼 끈기가 있는 '돈두르마'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얘기를 봤다며 터키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이란에도 그 아이스크림이 있고 너희들도 이란 가면 그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리라고는 사실 기대 안했는데 뜻밖의 소원을 성취하게 돼 모두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 채 아이스크림가게로 뛰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깨끗한 아이스크림가게서 우린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서 다시 사디의 무덤 정원으로 와서 먹었습니다. 햇빛이 강렬했지만 잘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은 찰떡처럼 씹는 맛도 있고 맛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그릇 더 먹기에는 어른인 내 입에는 너무 달았는데 애들은 이 맛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다시 아이스크림가게로 달려가서 한 그릇씩 더 사와서 먹었습니다.

사디의 무덤은 무덤 자체보다도 사디의 무덤이 있는 마을이 갖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와 사디 무덤 맞은편에 있는 아이스크림가게의 아이스크림으로 우리가 이란에서 만난 어떤 풍경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만약 다시 이란 여행을 하게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태그:#쉬라즈, #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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