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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유적이 산재한 로마 시내에서 굳이 시내의 중심을 꼽으라면 바로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이다. 시내 번화가인 코르소 거리(Via del Corso) 등 로마 시내 6개의 주요 도로가 베네치아 광장에서 만나서 뻗어나간다. 광장에 면한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은 고대 로마의 가장 신성한 중심지였다.

로마 시내의 주요도로가 교차하는 중심 광장이다.
▲ 베네치아 광장. 로마 시내의 주요도로가 교차하는 중심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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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의 베네치아 광장에는 붉은색 2층 관광버스와 소형택시들로 붐비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여름의 강렬한 태양이 머리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베네치아 광장에 자리 잡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건물,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국왕기념관(Monumento Nazionale a Vittorio Emanuele Ⅱ)의 그늘을 찾았다.

기념관 건물 하단의 시원한 그늘에 관광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로마는 왠지 그늘 안으로만 들어오면 거짓말 같이 더위가 사라졌다. 태양은 강렬하지만 습기가 많지 않아서 그늘 속으로만 들어가면 몸이 견딜 만했다.

조그만 연못 크기 정도 되는 분수 위로 시원스런 물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분수대 앞에 앉아 딸과 함께 로마의 따가운 햇살을 피했다. 우리 옆에는 우람한 체격의 이탈리아 아줌마들이 나란히 앉아 다리를 쉬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우람한 체격의 관광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국왕기념관 분수대. 더위에 지친 우람한 체격의 관광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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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은 이름부터 베네치아이고 광장 내에도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많은 조각상과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우리가 앉은 뒤편,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 분수의 물줄기도 이탈리아 반도 동쪽 바다인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를 상징한다. 그리고 바다 위의 조각상은 아드리아해 끝에 위치한 베네치아에서 성인으로 극진히 모시는 산 마르코(San Marco) 성인이고 산 마르코의 옆에 있는 동물은 베니스를 상징하는 사자이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는 건축물 안에 이탈리아 통일시 주요 도시국가였던 베니스를 기념하는 상징물을 넣은 것이다.

1870년 이탈리아 통일의 업적을 이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념관에는 여러 동상이 여기저기에 솟아있으며 이 동상들은 수많은 상징 코드들을 가지고 있다. 이 상징코드들을 알게 되면 숱한 비난을 받고 있는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 건물도 살아있는 건축물로 다가선다.

기념관 상단 양 끝의 코린트식 대리석 열주 위에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와 여신이 보였다.

"신영아. '나이키' 알지?  이 청동 조각상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케(Nike)', 영어로 발음하면 나이키야. 열주 앞 대리석 원주 위에 높게 솟은 금도금 조각상도 나이키야. 로마 신화에서는 이 승리의 여신을 비토리아(Vittoria)라고도 하는데, 영어로 하면 '빅토리아(Victoria)'지. 그래서 이 기념관을 로마 사람들은 '비토리아노(Vittoriano)'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단다.

비토리아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 기념관 지붕에 자리잡은 니케가 하늘로 날아갈 것 같지 않니? 하지만 날개를 가진 비토리아가 왜 전차를 끌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토리아와 전차는 좀 안 어울리지 않니? 아빠는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건물에 너무나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생각해. 기념관 여기저기에 너무 많이 산재한 조각상도 그 당시 사람들이 통일의 과업을 너무 과시하려고 했기 때문일 거야."

로마에 사는 로마 사람들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상당히 싫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고대 로마의 중심지인 캄피돌리오 언덕과 포로 로마노를 거대한 대리석 건물이 떠억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11년에 부실공사로 완성된 이 건물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수리를 해야 했다. 건물의 색상도 로마를 특징짓는 고대의 황갈색 건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건물은 로마 사람들의 선호도를 떠나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을 로마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위치에 있게 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이미 백년의 역사 동안 이 건물은 로마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중심이 되는 도심을 규정짓기 힘든 로마에서 이곳이 로마의 중심광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물이 주변과 조화롭지 못하게 너무 큰 것이 흠이지만 이 건물이 로마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로마의 중심에서 이탈리아 국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탈리아 국기는 이 광장과 잘 어울렸다. 나는 녹색과 백색,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국기가 참으로 이 나라, 그리고 로마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밝게 비추는 붉은 빛이 정열적인 태양의 빛이라고 생각했고 녹색은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녹색 구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념관 아래 분수대에서 쉬던 발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의 피곤함에서 회복된 아내와 딸을 데리고 베네치아 궁전(Palazzo di Venezia) 쪽으로 이동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 2층 발코니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수많은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 베네치아 궁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 2층 발코니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수많은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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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국왕기념관보다도 더욱 역사적인 건물은 바로 베네치아 궁전이다. 에마누엘레 기념관의 거대한 위용 때문에 조금 작게 보이지만 기념관 건물이 생기기 전에는 이 베네치아 궁전이 베네치아 광장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베네치아 궁전은 1546년부터 230년 동안이나 로마의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관이었다.

내 머리 속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베네치아 궁전 잔상이 흑백필름으로 남아있었다. 흑백필름 속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연설하고 있었다. 로마에 와서 보니, 그 2층 발코니는 베네치아 광장의 베네치아 궁전에 있었다. 무솔리니는 2차 대전 당시 이 베네치아 궁전을 자신의 집무실 겸 지휘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베네치아 광장에는 이탈리아의 근현대사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는 베네치아라는 나라의 대사관이 있었고 이 대사관 기능을 정지시켜 버린 통일의 왕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의 기마상이 남아있었고 통일 이탈리아를 파시즘에 빠뜨렸던 무솔리니가 있었다.

베네치아 궁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진 실패작이다.
▲ '제네랄리' 건물. 베네치아 궁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진 실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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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의 이탈리아 현대사는 코르소 거리 건너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베네치아 광장에 건립된 또 다른 실패작 건축물이 있었다. 베네치아 궁전 맞은편에 자리 잡은 팔라초 델레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랄리(Palazzo delle Assicvrazioni Generali). 1911년에 지어진 건물이니 벌써 백년 가까이 살아온 건물이다. 나는 로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 이 건물이 베네치아 궁전인 줄 알았다. 건물의 모양이 내가 흑백 필름에서 봤던 그 건물과 너무 같았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이 광장에서는 드물게도 한 보험회사의 사옥, 즉 상업적인 목적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베네치아 궁전을 완전히 모방해서 지어진 짝퉁 건물이었다. 시대를 대변하는 독창성을 자랑하는 로마의 건축물들 사이에 굳이 똑같은 모습의 모방작을 길 건너편을 두고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백 년 전 이탈리아가 창조성을 상실한 나약한 시대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네랄리'라 불리는 이 건물 앞에서는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지하철 공사는 언제 끝날지 몰라. 땅을 파 내려갈 때마다 로마의 고대 유적지가 발견되거든. 그래서 로마 사람들도 이 지하철 공사는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 로마야!"

시간이 느리게 돌아가는 로마에서 왜 굳이 지하철 공사를 하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지하철 공사현장은 로마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건설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로마를 있게 한 힘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로마, #베네치아 광장, #베네치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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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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