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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3 개각에서 이명박(MB)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후보로 지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MB가 합리적 중도실용주의자로 평가받는 정 후보를 기용한 것이 진정한 중도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이기를 기대하면서 정 후보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고 칼럼에 썼다.

 

"이번 개각이 MB정부가 집권2기를 맞이해 내건 진정한 중도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인지 아니면 중도층 표를 포섭하기 위해 이미지만 차용한 것인지는 이내 드러나게 돼 있다. 당장 정 후보자가 용산 참사의 현장에 가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총리직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MB 정부의 순항에 좋은 징조가 될 것이다. 또 그에게 실권을 가진 책임총리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것 또한 한나라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좋은 신호가 될 것이다.

 

결국 그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 그가 곰바우의 길을 간다면 민주당을 위해 좋은 일이고, 곰바우의 길을 거부하고 책임총리의 역할을 다한다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이다." (오마이뉴스, 9월 4일, 이명박-정운찬 누가 '소신' 굽힐까)

 

그러나 정 총리에 대한 기대는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제기한 수많은 의혹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껍질을 벗길수록 의혹이 이어지자 야당과 언론은 그에게 '양파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탓일까? 14일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4명 중 3명 꼴(74.6%)로 정 총리의 사퇴 또는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성인남녀 1천 명 대상 ARS여론조사,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용산 방문 때 머리 좋은 총리가 왜 종이에 적어왔을까?

 

그래도 기자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환경 속에서 자랐으면서도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의 심성에 거는 기대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필자가 기대했던 대로 추석연휴에 용산참사 유가족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총리 외부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이날 희생자들의 영정에 조문한 후 유족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감정이 북받쳐서 엊저녁에 드릴 말씀을 몇 자 적었다"며 A4용지를 꺼내 읽었다. 머리 좋은 총리가 왜 용산참사 현장에 와서까지도 적어온 문건대로 읽을까, 혹시 총리실에서 써준 대로 읽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은 품었지만 그래도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은 여러분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대목을 읽으면서 가늘게 떨린 목소리와 붉힌 눈시울은 진정으로 느껴졌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총리의 위문정치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좋았다. 그는 용산 현장에서 "정부가 해결 주체로 나서기 어렵다"면서도 "참사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름대로 적극적 해결 의지를 밝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MB조차도 첫 주례회동에서 정 총리에게 "위로를 잘해줬다"고 치하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 총리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총리는 지난 8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을 받고 "상황에 진전이 없는 현시점에서 (유족을) 만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 시간을 두고 다음에 만나는 게 좋겠다"며 거절한 것으로 총리실 관계자에 의해 19일 전해졌다. 정 총리는 대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서울시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취임 닷새 만에 직접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해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연인으로서 무한한 애통함과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이제 총리로서 유족문제를 비롯해 용산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던 것과 사뭇 달라진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여권에서는 "당시 청와대 쪽에서도 경찰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받은 결과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는데 정 총리가 강행한 것으로 안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온다. 그렇다면 정 총리의 눈물은 물론, MB의 칭찬도 '쇼'였다는 얘기인 셈이다.

 

용산에서 세종시까지, '그 대통령에 그 총리'

 

현재 협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유족들이 위임해 놓은 '용산범대위'(용산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요구사항은 크게 ①정부 책임 인정,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죄 ②임시시장과 임대상가 등 보장 방안 제시 ③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 공개 및 살인진압 재수사 등이다. 이 가운데 ①과 ③은 사태 해결 의지만 있다면 총리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입장 표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용산범대위 등 외부세력은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20일자 <조선일보> '정(鄭)총리 '용산문제 해결' 온정주의 벗었다'는 총리실 관계자의 말을 빌려 "정 총리는 유족측의 검찰 수사기록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수사검사가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정 총리가 대화를 거절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서울시에 문제 해결을 떠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8일 대화를 거절했으면서 그런 사실을 그로부터 10여 일이나 지나서 총리실 관계자 입을 통해 슬쩍 공개한 속내도 미심쩍다. 자연스레 지난해 촛불정국 때의 MB 모습과 오버랩된다. 한 마디로 말해 '그 대통령에 그 총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함성이 청와대를 에워싸자 두 번이나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즐겨 불렀던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다고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는 컨테이너로 광화문통을 가로막은 '명박산성'으로 인해 여론에 눈감고 귀 막은 지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 MB의 진짜 모습, 이른바 '명박본색'인지는 머지않아 금방 드러났다. MB는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지만, 그의 수족인 검찰과 경찰은 집회 참석자를 폭도 취급했고 자발적으로 모인 유모차 부대까지도 사법처리하려 했다. 결국 촛불정국 당시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이 '명박본색'인 셈이다.

 

MB "군대라도 동원할까"→"훌륭한 계획"→"이대로는 안된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MB의 접근법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넉 달 넘게 정치권이 논란을 벌여도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며 꿈쩍 않던 MB였다. 그러나 MB가 17일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은 없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이 정부는 세종시 원안 전면수정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도 MB 본인은 무엇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인지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참모들은 세종시를 지칭한다고 밝히는 방식으로 '명박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명품도시'라는 말로 본심을 숨겨왔지만 그의 실제 본심은 '군대라도 동원해서 막고 싶은 것'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MB는 서울시장 재직시절부터 대표적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반대론자였다. 그는 지난 2005년 2월 23일 여야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제정에 합의한 다음날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군대라도 동원할까"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3월 2일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 대통령은 "수도분할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6월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그 다음달에는 위헌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러나 행정중심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이 대통령의 입장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180도 바뀌었다. 그는 특히 2007년 9월 12일 대선 후보로서의 첫 지방 방문지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찾아 "훌륭한 계획이다. 이 문제는 찬반을 떠나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시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MB 발언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8일 가장 먼저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해 "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 예정대로 추진하고 자족기능 보완책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듬해 3월 20일에는 충남도청을 방문해 "누가 행정도시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느냐"고 반문하면서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MB에게는 '방탄조끼용 총리'가 필요했다?

 

그 뒤로 세종시 문제에 대한 공식 언급은 지난 6월 20일 여야 대표들과의 청와대 회동 때가 마지막이다. MB는 당시 '원안대로 가야 한다'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발언에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라면서"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는 없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로 공식적인 언급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로부터 넉 달여간의 공백기를 거쳐 최근 나온 언급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선 안된다"이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세종시 계획에 대한 '명박본심'은 "훌륭한 계획"이 아니라 "군대라도 동원해서 막고 싶은 계획"이었던 셈이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MB가 정 총리를 기용한 것은 진정한 중도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이 아니라 세종시 원안 변경 및 폐기를 위한 구원투수로서의 '총알받이 총리'인 셈이다. 하긴 "군대라도 동원할까"라고 말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그에게 '방탄조끼용 총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운찬#이명박#세종시#용산참사#명박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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