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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징표> 겉표지
<카인의 징표>겉표지 ⓒ 다산책방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아담의 아들 카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 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자 가장 유명한 살인일 것이다.

창세기에서 카인은 농부, 아벨은 양치기로 나온다. 카인과 아벨이 모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만, 신은 아벨의 제물만 받고 카인의 것은 물리친다.

그러자 질투에 사로잡힌 카인은 아벨을 죽인다. 이후에 신은 이를 벌하기 위해서 카인에게 징표를 내리고 에덴에서 쫓아낸다. 롯의 땅에 정착한 카인은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자식을 낳고 성을 쌓고 살아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이 빠져 있다. 창세기에는 '아벨을 쳐 죽이니라'라고 나온다. 구체적으로 카인은 어떤 무기를 사용했을까? 그리고 신은 카인에게 어떤 징표를 내렸을까?

궁금한 점은 또 있다. 창세기에는 '카인에게 징표를 주사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죽임을 면한다는 이야기는 곧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성서에는 카인의 죽음을 언급한 구절이 한 군데도 없다. 아담은 930세에 죽었고 노아는 950세,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카인이 몇 살까지 살고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카인의 살인을 소재로 한 역사 미스터리

브래드 멜처의 2008년 작품 <카인의 징표>는 바로 최초의 살인자 카인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미국 플로리다주. 주인공인 칼 하퍼는 20대 후반으로 전직 목사였던 친구와 함께 노숙자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칼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9살 때 아버지가 실수로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다. 과실치사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지만, 출소한 이후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비오는 밤에 차를 몰고 가다가 공원에서 한 노숙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 노숙자는 어디를 다쳤는지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다. 그 노숙자의 사회보장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했더니 놀라운 정보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바로 19년 전에 칼의 곁을 떠났던 칼의 아버지 리오드 하퍼인 것이다.

칼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자초지종을 듣는다. 트럭 운전사인 리오드는 마이애미 항구로 들어오는 한 컨테이너를 받아서 운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항구의 세관에서 그 컨테이너의 통관을 보류시킨 것이다. 할 일이 없어진 리오드는 낡은 술집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나오다가 강도에게 총을 맞고 쓰러진다.

총상은 심하지 않아서 리오드는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와 다시 항구로 향한다. 칼도 그를 따라간다. 한때 세관에서 근무했던 칼은 편법을 사용해서 문제의 컨테이너를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각, 그 컨테이너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인물 엘리스가 있다. 엘리스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던 가문의 책을 찾고 있다. 수소문 끝에 그 책이 컨테이너에 실려서 플로리다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추적해 간다. 엘리스는 위험한 인물로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칼과 리오드, 엘리스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컨테이너의 물건을 가지고 목적지로 가려는 사람과 어떻게든 중간에서 가로채려고 하는 엘리스. 그 책에 담겨 있는 거대한 진실과 비밀은 수천 년 전 창세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카인의 무기와 징표에 담긴 힘

성서나 교회를 소재로 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은 많다. 하지만 <카인의 징표>처럼 구약성서 창세기의 사건을 소재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찌보면 카인의 살인이야말로 미스터리 소설의 좋은 재료일 것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자 형제간의 살인, 역사 미스터리 소설에 적합할만큼 호기심이 동하는 사건이다.

창세기에서 신은 카인에게 징표를 내리지만 결국에는 그를 불쌍히 여긴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카인은 인류 최초로 신의 용서를 받고 권능을 부여받은 셈이다. 신이 카인에게 내린 징표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물건에는 신의 비밀스런 힘이 담겨 있지 않을까.

<카인의 징표>의 등장인물들도 그 힘을 쫓아간다. 수천 년 전의 물건이 아직까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그들에게도 어두운 집안의 과거가 있다. 칼은 19년만에 아버지를 만나지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버지는 칼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쉽지 않다.

19년 동안 쌓여왔던 상처와 절망이 회복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칼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또는 과거를 보상하고 싶어서 노숙자들을 돕는다. 아버지의 실수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인생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삶은 단 한 순간에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절망과 자책 속에서도 조금씩 삶을 회복하려 애쓴다. 롯의 땅으로 쫓겨났지만 그곳에서 문명을 세운 카인의 삶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 박산호 옮김. 다산책방 펴냄.



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박산호 옮김, 다산책방(2009)


#카인의 징표#역사 미스터리#브래드 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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