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 나 지금 나갈 테니까 마중 나와."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친 큰딸의 전화다. 껌뻑껌뻑 졸다가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독서실로 향한다.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지친 모습으로 하나 둘 독서실을 빠져나온다. 큰딸도 지친 군상에 끼어 있다.
무슨 큰 죄라도 진 심정이다. 고3은 사람도 아니라는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벽 6시 30분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 딸은 요즘 들어 식욕도 떨어졌는지 먹고 싶다는 것을 해줘도 두어 젓가락 먹고는 만다. 하긴, 살 맛이 나야 먹을 맛도 날 터인데 고3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힘들지?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너 스스로 싸워야 하는 싸움이야. 이제 열흘 정도만 참자."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경쟁사회에서는 시험이 끝나면 끝이 아니니까. 아이가 원하는 대로 과외선생 팍팍 붙여줄 능력도 안 되면서 어쩌자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을까 싶은 자괴감에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10여분, 딸과의 동행이 어색하기만 하다.
독서실에서 집으로... 딸과의 어색한 동행
교육학을 전공했던 나는 제도교육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원한다면 대안학교를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그냥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굴욕의 학부모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 문제 혹은 교사 문제 등을 인지하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랬을 때 아이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닥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냥 모든 아이가 같은 상황이니 억울해도 그냥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참자고 했다.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니 점수나 등수에 연연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나도 아이도 점수나 등수에 자유롭지 못했다. 내신성적이 안 나오면 아이도 속상해했고, 나도 내색을 안 하려 했지만 속상한 속내를 감추질 못했다. 학부모 면담을 하고 돌아올 때 "이 정도의 실력이면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라고 담임이 말할 때 나는 아이의 적성과 학과는 생각하지도 않고는 헤벌쭉 웃었다. 아이도 시험이 끝나면 점수에 민감했다.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수능시험이 끝나면 공부라는 놈이 지긋지긋할 것이다. 우리에게 공부라는 것은 시험을 통한 점수내기와 등수나누기에 불과했으므로 그런 편 가르기가 아닌 참 삶을 추구하기 위한 공부는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평생을 걸고 즐겁게 할 일과 관련된 공부라면 얼마나 신이 나서 공부를 할까마는 우리 사회가 그런 다양성을 수용하기에는 아직도 먼 사회이므로 '어떤 간판'을 따느냐가 중요하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그러나 줄줄이 고3
그러니 그 간판을 따는 순간부터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고,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 외에는 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다양한 문화 부재의 경험은 속박된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학기에 유난히 음주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이런 상황은 이미 내가 고등학교 때, 내가 수험생일 때에도 있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더 열악해졌고, 아이들은 아예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버렸으며, 시험성적에 따라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알면서도 나도 경쟁적으로 다른 학부모들과 경쟁을 했으며, '내 아이만'이라는 이기주의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아이가 셋이니 앞으로도 두 번 더 그런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수입의 대부분은 세 아이의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사교육비 열기가 높은 지역에 사는 대가를 독특하게 치르는 것이다. 혹자는 '능력만큼만 사교육비를 지출하면 될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행여라도 아이들에게 원망이라도 듣는 것이 아닐까 싶어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눈 질끈 감자고 다짐을 한다. 그것이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은 그렇다.
제도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면 이럴 일도 없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파행적인 교육정책이 이뤄지는 데다가 '내 자식만'이라는 독특한 이기주의적인 문화를 가진 곳에서 사교육에 대해 자유로운 부모는 드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는 길인 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이 땅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강요를 당하는 것이다. 나도 그 대열에 서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줄 서기, 그 사슬이 너무 깊다
지난 일 년,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공부하는 딸에게 아빠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싶었기에 사교육비는 물론이요, 운전기사가 되어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등교를 돕고, 퇴근 후에는 12시가 넘어 학원에서 데려오곤 했었다. 학원 교습시간이 밤 10시까지로 제한되면서 퇴근 후의 수고는 줄었지만, 12시가 넘으면 독서실로 아이를 데리러 가곤 했다.
"힘들지?" 하면 "아빠가 더 힘들지 뭐" 하는 딸의 말에 힘을 얻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속수무책으로 아이의 짜증을 다 받아주어야만 했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나도 감정이 폭발되어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언성을 높인 만큼 자괴감도 높아갔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 수험생뿐 아니라 온 가족의 행복을 고스란히 빼앗아가는 현재의 입시제도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러나 여전히 그 길로 올인하는 교육정책과 학부모의 열성을 보면서 나는 전율을 할 수밖에 없다. 시험을 10여 일 앞둔 큰딸 말고도 둘이나 더 남았으니 그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이미 노년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줄세우기 시험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사슬이 너무 깊다. 그래도 여전히 11월 12일이 기다려진다. 일단, 시험이라도 끝나면 딸아이가 사람도 아니라는 고3이라는 지긋지긋한 딱지를 뗄 터이니 말이다. 세상에서 불쌍한 이들이 많다지만, 이 땅에서는 돈이 있든 없든 고3 수험생과 그 학부모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이들도 있겠지만 건강하게 자유로운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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