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일 새벽, 고1 아들내미가 갑자기 고열과 두통으로 불면에 시달렸다. 아무리 신종플루가 창궐 중이라도 독감 수준이길 바라며 아침 일찍 대전에 있는 한 거점 병원을 찾았다.

 

진료소는 거점 병원 출입구 밖에 임시로 설치되어 있었다. 오전 8시 30분에 갔는데도 기다리는 환자가 많았다. 초중고 학생들과 보호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병원 밖에 모여 있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물론 나도 그 풍경 속에 있었다.

 

"이거 무슨 난민 수용소도 아니고…."

 

약간은 쌀쌀한 날씨 속에 일부 학부모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깊이 공감했다.

 

'신종플루가 유행한 지가 언젠데 제대로 된 진료소 하나 안 만듭니까?' 이건 나의 속마음이었다. 출입구 밖에 딸린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 여의사 두 명과 간호사 두 명이 분주하게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환자수에 비해 의사수가 턱 없이 적다는 생각은 누구나 일치했다.

 

약 50분을 기다려 아들내미 차례가 되어 의사에게 증상을 말했다. 의사는 타미플루랑 감기약을 처방해주었다. 환자의 증상은 비슷하다. 발열과 두통이다. 감기 증세랑 다를 바가 없다. 타미플루를 처방받는 순간 1주일은 등교중지라고 했다. 결과는 이틀 후에 나온다나?

 

이틀 후 오늘 아침, 전화기에 낯선 전화번호가 찍혔다. 해당 병원이었다.

 

"○○○ 학생 보호자시죠? ○○병원인데요, 아드님께서 신종플루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아, 네에~ 그럼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반드시 마스크 착용하시구요, 1, 2미터 이내에서 접촉을 금해야 합니다. 따로따로 생활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까지 학교 가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족 중에 신종플루 환자가 있는 경우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하나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가족 중에 감기 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나와 진료를 받아보세요."

 

일선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당황했다.

 

'내 아들내미는 그렇다치고 나는 과연 온전한 걸까? 혹시라도 병원균이 내게 잠복해 있지는 않을까? 이대로 교실에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더구나 수능시험을 20일 앞둔 고3 교실인데?? 교무실엔 어떡하고?'

 

신종플루가 워낙 창궐 중인지라 휴교하는 학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이미 구입해 놓은 마스크를 쓰고 출근했다. 우선 주변 동료교사들에게 아들내미가 신종플루 확진환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혹시 모르니까 내 주변에 접근하지 말라고 농담 섞어 발표(?)했다.

 

'내 자식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어 치료 중인데, 혹시라도 내 몸에 병균이 있어서 귀중한 제자들에게 전염되면 이거 큰 죄악 아닌가! 아무리 선생의 생명이 교실 수업이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나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떡하지? 이거 정말 근무해도 괜찮은 걸까?'

 

가족 중에 신종플루에 감염된 경우 따로 복무지침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정보를 구하기로 했다. 메인 화면 오른쪽에 '신종인플루엔자 종합 안내' 문구가 빨갛게 쓰여 있고, 그 두 번째 항목에 '국민행동요령'이 있었다. 

 

▲의심 증상이 있거나 환자인 경우, ▲증상이 없으며 환자가 아닌 경우, ▲환자와 접촉한 경우로 나누어 신종인플루엔자 국민행동요령을 열거했는데, 나의 집중 관심분야는 '환자와 접촉한 경우'였다.

 

나는 현재 발열 증세나 호흡기에 문제가 없다. 문제는 '환자와 접촉한 날로부터 7일간 외출 삼가'라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교사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부득이한 외출(?)을 해야 하므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시교육청 신종플루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저는 교사이고 고1 아들내미가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상 출근해서 교실에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나요? 혹시라도 제게 병균이 잠복해 있다면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요?"

 

"엊그저께 교장회의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교사 가족 중에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해도 해당 교사에게 이상 증세가 없다면 출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면서 담당자는 10월 초만 하더라도 유초중고 신종플루 환자가 몇 백 명 정도였는데, 22일 현재 2700명이고, 교사 감염자도 20명이라고 밝혔다.

 

어쩌랴! 내 자식이 감염됐다고 교사로서의 소임을 마다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현재로서 방책은 나 스스로 조심하고 내 주변인들과 신체적 거리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신종플루가 나 스스로 왕따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신종플루 감염 사흘째인 아들 녀석은 현재 아주 '쌩쌩'하다. 열도 정상이고 기침도 안 하고 두통도 없다. 집에서 감옥 생활하면서도 학교에 안 가니까 신바람까지 났다. 그래서 경험자들은 그까짓 신종플루, 독감 수준에 불과하다고 얕잡아 보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모두 조심하자. 잘못되면 죽는 병 아니겠는가!


태그:#신종인플루엔자, #신종플루, #국민행동요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