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세대'인 그의 꿈은 원래 '국제변호사'였다. 전남 순천고와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변호사의 세계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결국 '국제 변호사' 꿈을 접고 지난 2001년 검찰에 입문했다. '수사통 검사'라는 새로운 꿈을 안고 말이다. "더 이상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옷을 벗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김종률 의원 기소가 편파 수사? 참 힘들었다"
신성식(44) 수원지검 검사. 신 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특수부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당 정치인이었던 김종률(현재 구속중) 열린우리당 의원을 기소했다. 김 의원이 단국대 법대 교수와 법무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대학 이전사업의 이해관련자인 시행업체로부터 2억 원을 받았다는 단서를 잡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금품수수 혐의는 단국대 이전사업과 관련된 쌍방고소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착됐다. 신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특수부로 옮겨 김 의원 금품수수사건을 마무리한 뒤 '배임수재' 혐의로 김 의원을 기소했다.
"그때 의도를 가지고 수사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단국대 이전사업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던 중 김 의원 비리혐의건이 튀어나왔다. 비리혐의가 분명해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 파헤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 의원은 공적자금이 들어간 단국대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각해주고 20억원의 성공보수를 받으려고 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오마이뉴스> 2006년 5월 16일자 단독보도). 그런 점에서 김 의원의 기소는 1200억원대의 공적자금이 회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김 의원이 당시 여당 의원이었다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있다고는 하지만 인사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 민감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신 검사에게 '고민'은 없었을까?
"당시 검찰의 분위기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비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사하는 분위기였다. 단연하건대 윗선의 외압 등 수사 개입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지, 여당 정치인이기 때문에 수사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던 것은 노무현 정부가 어느 역대 정부보다 더 검찰의 수사독립을 보장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신 검사는 정치인 수사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모든 수사가 그렇지만 정치인 수사의 경우에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부담을 감수하고 기소해 무죄를 받으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자칫 잘못하면 표적수사 의혹을 받거나 사건의 이해당사자로부터 사주를 받아 수사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김 의원도 '편파수사'라고 주장해 수사검사 처지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상당히 힘들었다."
김 의원은 처음엔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다가 계좌추적 결과 등 증거자료들을 들이밀자 이해상충관계에 있던 시행업체로부터 2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재단의 부지 매각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행사측에 자문해준 것은 문제될 게 없다"며 배임수재 혐의를 부인했다.
"정치권에서 정치인 수사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신 검사는 김 의원의 혐의를 확신하고 기소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왔다. 수사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에게는 참담한 결과였다.
"법원에서 검찰의 수사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측 증인들의 말도 믿지 않았고, 주요 참고인들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피고인이 진술할 기회는 많이 줬다. 고심해서 기소한 사건을 너무 쉽게 인정해주지 않아 허탈하기도 했다. 무언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렇게 바뀐 재판정의 모습은 '공판중심주의'라는 사법개혁이 낳은 결과였다. 신 검사도 "당시 공판중심주의가 주요 화두였다"며 "법정 진술과 검찰진술이 배치되는 경우 검찰 진술은 증거로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나친 확신이 문제였다'고 판단한 신 검사는 피고인측 법정 진술의 모순점을 지적하거나 반박하는 의견서를 관련자료들와 함께 꾸준히 재판부에 제출했다. 결국 재판부도 검찰의 기소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해 10월 김 의원에게 징역 1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지난 9월 이를 확정함으로써 김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의원이 여당 의원이었을 때 무죄(1심)를 선고받았고, 야당 의원이었을 때 유죄(2‧3심)를 선고받았다는 점이다.
"김 의원이 야당 의원이었다는 점이 재판부의 유죄판결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2심 재판부가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영향이라기보다 치밀한 증거자료 검증과 법리 검토의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인 사건이기 때문에 더 치밀하게 판단했을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 2심 재판부가 큰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 의원의 유죄 판결을 두고 "야당 죽이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 검사는 "김 의원이 여당 의원이었을 때 수사를 시작해 기소한 사건"이라며 "'야당 죽이기' 주장은 이 사건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정치인 수사가 어려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사건의 실체보다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래서 전혀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했는데도 정치적 사건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검찰의 수사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정말 나쁜 행위로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당 죽이기' 한마디로 그들의 범죄행위가 희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수부 검사가 제 천직... 수사 잘하는 검사로 남고파"
김 의원 금품수수 사건의 공소를 유지하는 동안 신 검사의 자리에도 변화가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특수부로 옮겼다가 1심 무죄판결이 난 직후인 지난해 2월 수원지검으로 발령난 것. 이를 두고 "1심 무죄판결이 인사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그는 그런 시선을 애써 지나쳤다.
"수원지검으로 간 것도 잘 간 것이다. 지방 중에서도 수원지검은 검사들이 선호하는 곳 아니냐? 서울중앙지검에 계속 있게 되면 법무부나 대검 등 기획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수사체질'이다."
신 검사는 현재 수원지검에서 공정거래위로 파견나와 있다. 8년의 검사생활 중 오랜 만에 작은 여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야생'을 꿈꾼다.
"여전히 특수부 검사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하기 위해서 검사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특수부 검사는 책임이나 위험부담이 큰 만큼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는다. 난 수사 잘하는 검사로 남고 싶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수사를 하는 검사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그러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검사가 되고 싶다. 그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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