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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의 낙엽 자작나무 아래에 자작나무의 낙엽의 그득하다.
자작나무의 낙엽자작나무 아래에 자작나무의 낙엽의 그득하다. ⓒ 김민수

가을이 깊어지면서 점점 가벼워지는 자작나무의 가지가 희다.
저렇게 앙상한 가지로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다가도 자작나무 숲에 들어가보면 수북하게 쌓인 낙엽의 푹신함에 이불을 덮은 듯하여 충분히 겨울을 날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자작나무는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 밥을 해본적도 있지만 그 소리까지 자세히 들어보질 않아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하지 못 했지만, 나무마다 성질이 다르고 결이 다르니 그 소리도 다를 것이다.

자작나무 하얀 껍질에 연애편지 써볼까?
자작나무하얀 껍질에 연애편지 써볼까? ⓒ 김민수

멀리서 단풍이 들어가는 숲을 바라보면 유독 눈에 띄는 나무가 있었다. 하얀 수피에 알록달록 단풍이 든 자작나무, 그가 주인공이었다. 멀리서도 유독 잘 보이는 것은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 덕분일 것이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잘 벗기면 하얀 종이를 닮았다. 누군가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에 사랑하는 이에게 연애편지를 써서 보낸 일이 있으리라. 그러니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보면 연애편지도 떠오르는 것이겠지.

자작나무 자작나무의 단풍이 아름다운 날이다.
자작나무자작나무의 단풍이 아름다운 날이다. ⓒ 김민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보이던 자작나무를 가까이 보고 싶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국도를 택했다. 운 좋게도 자작나무 숲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자작나무 수십그루가 심겨져 있는 숲 가장자리를 만났다.

아직은 어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수피의 색깔도 더 하얗게 변할 것이며 제법 장문의 편지를 쓸만큼의 수피도 내어놓을 것 같다. 스스로 벗어버리는 수피, 스르르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자작나무의 몸을 가볍게 만들 것이다.

자작나무 그들로만 이뤄진 숲도 예쁠듯하다.
자작나무그들로만 이뤄진 숲도 예쁠듯하다. ⓒ 김민수

자작나무 강원도 둔내 근처의 국도에서
자작나무강원도 둔내 근처의 국도에서 ⓒ 김민수

나무의 월동준비는 너무도 소박해 가슴이 저민다.
껴입어도 추울 겨울 빈 손이 되고, 빈 가지가 되는 것도 모자라 배라도 든든하면 좋겠건만 제 몸에 물을 최소한만 남겨두고 비워버린다. 그래야 얼어죽지 않고 새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으로 그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들의 삶이 그들에 비해 짧은 이유는 비우지 못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작나무 자작나무의 단풍이 얼마나 곱냐하면 이렇습니다.
자작나무자작나무의 단풍이 얼마나 곱냐하면 이렇습니다. ⓒ 김민수

가까이 다가가 본다.
이파리도 그리 크지 않고, 단풍의 빛깔도 그리 요란하지 않다. 은은한 빛깔, 그런데 그가 이렇게 눈길을 끈다. 아마도 작은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의 방향에 따라 춤을 추기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 하얀 수피, 나무들 중 하얀 줄기를 가진 것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 유독 눈에 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작나무 하얀 줄기와 잘 어울리는 단풍
자작나무하얀 줄기와 잘 어울리는 단풍 ⓒ 김민수

자작나무 자작나무의 단풍, 단풍 중 백미가 아닐까?
자작나무자작나무의 단풍, 단풍 중 백미가 아닐까? ⓒ 김민수

자작나무의 단풍을 보면서 단풍 중 백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이번 가을부터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단풍은 자작나무의 단풍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는 의미기도 하다. 자작나무의 단풍빛을 제대로 보기 전까지 자작나무는 나에게 많은 나무 중 하나였지만, 이젠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자작나무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자작나무의 단풍
자작나무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자작나무의 단풍 ⓒ 김민수

살아가면서 사랑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며칠전 굶주림으로 기아선상에서 죽어가는 아이들과 마시면 병이들 것을 알면서도 더러운 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르포를 보았다. 하필이면 그날, 나는 회식이있어 소화제를 먹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먹은 날이었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죄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구나 싶었다. 아니, 나쁜 놈이었는데 그런줄 모르고 의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하나 둘 이파리를 놓아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저 하얀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제대로 살아야겠다. 하나 둘 비우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러다가 죽음의 순간에도 너무 많이 가져 미련때문에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서럽겠다.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곧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자작나무자작나무는 곧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 김민수

어딘가 자작나무 숲이 있다고 했다.
자작나무 이파리가 남아있을 때 그 숲에 한 번 가보고 싶다.
그 숲에서 스르르 벗겨진 하얀 수피 하나 얻어와 사랑하는 이에게, 그동안 나 자신만 돌보느라 차마 돌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긴 편지가 아니라 그냥 흔한 말 '사랑해'라고 써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가을 날, 유행가 가사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라는 가사가 사랑타령처럼 들리지 않는 날이다.


#자작나무#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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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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