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감나무 한그루
수줍은 붉, 꽃등 내것다
세상의 하늘이 환하네'
기축, 농부형네 집에 와서 남준 쓰다
박남준 시인이 텃밭도서관 초옥(오두막집)의 안방 문에 쓴 시화다.
박 시인이 이 시화를 쓰는 동안 신나는 '신판 취화선' 한판이 벌어졌다고 텃밭지기는 그때를 회상한다. 그날 즉석공연이 이루어진 것은 신명을 돋우기 위해서였다고.
"오랜 세월 뜸만 들이던 시간들이 끝나고 이제 삽질이 시작된다. 9월 9일부터 오두막집 짓는 일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시작하는데 아직 어떤 그림이 될지 제대로 감이 안 잡힌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만들어 가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가면서 시나브로 만들다 보면 집이 되겠지… 10월 12일에 있을 텃밭도서관 가을 잔치 전에는 그럴 듯한 모양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이렇듯 애달아하면서 텃밭지기가 온몸으로 지은 초옥이다. 기존의 집터에 마련한 초옥은 예스러움을 잘 살려내서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듯했다. 빠끔 열린 부엌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다.
부뚜막 가장자리에는 막걸리식초 3형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기다란 나무주걱과 어린 시절 책보자기에 함께 싸서 매고 다녔던 양은도시락이 놓여있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간줄 알았던 사기대접과 주발도 보인다.
텃밭지기가 초옥 서까래에 연을 매달고 있다. 올 진주 연날리기 대회에서 2등한 연이라나. 낙관이 찍힌 방패연으로 근래에 보기 드문 연이라고 했다. 마루의 바구니에는 토실한 도토리와 까다 만 마늘쪽이 한가득 담겨있다. 붉은 고추와 감, 고구마 등 텃밭에서 수확해놓은 갖가지 가을 농산물이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 당나귀 보러 가자."
텃밭지기는 이웃집 어린아이와 함께 당나귀 우리로 간다. 호랑가시나무 밑에는 수많은 닭들이 모여 있다. 암탉은 알을 낳았는지 '꼬꼬댁~꼬꼬' 자꾸만 울음을 운다. 당나귀의 이름은 '나루'다. 나루는 아직 대금도 지불하지 않았다. 모금해서 줄 예정이라는 텃밭지기는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직접 당나귀타기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구입했단다.
나루는 달구지를 끌고 다닌다. 소달구지보다 당나귀달구지가 더 이색적이고 멋있다고 한다. 이제 나루는 텃밭도서관의 수많은 닭과 염소들의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로 다가갈 날도 머지않았다.
장독대에 놓인 이 녀석은 누굴까.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토우)이다. 양산의 한 카페 회원이 보내준 것인데 깨져서 이곳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장독대에 다른 깨진 그릇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산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깨진 그릇들과 잘 어울린다.
피라칸사스의 빨간 열매 곁에서 수건을 쓴 허수아비 아주머니가 가을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 너머에는 밀짚모자 허수아비 홀 로 서있다. 밀짚모자 위에 앉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 한가롭다.
텃밭너머의 감 밭에는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어찌나 많이 열렸는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땅에 기대어있다. 대봉감은 그 달콤하기가 홍시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가을빛으로 뒤덮인 텃밭에는 김장배추와 무가 쑥쑥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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