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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일하느라 케냐 땅 다 누리지도 못했죠? 아이들이랑 함께 가까운 곳에 놀러갔다 와요."

 

케냐까지 와서 시골 깡촌에 박혀 있는 우리들이 살짝 가여웠는지, 조이비전스쿨의 교장선생님은 선뜻 우리에게 차를 빌려주셨다. 마이마히유 마을을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였다. 국제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우리들은 운전석 위치가 한국과 반대인 차를 운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급조된 운전사, 조이비전스쿨의 수학 선생님인 무고와 동행하기로 했다. 미스터 무고가 심심할까 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베나드와 조이홈스 고아원에 유일한 여자 아이 살로메도 함께 가기로 했다. 이렇게 구성된 여섯 명은 지프차에 실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자동차 키를 건네받은 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완전히 신이 나 있었다. 가는 길에 기어코 집에 들러 아내와 자신의 아들 지미에게 운전하는 멋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떠났다. 지미와 그의 아내는 나뭇가지로 만든 집 앞 울타리에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1. 나쿠루, 분홍빛 플라밍고의 호수

 

마이마히유 시골 마을을 떠나 간 첫 번째 여행 목적지는 그곳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나쿠루 호수. 케냐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며, 호수지만 공원 안에 초식 동물들이 살고 있어 사파리 체험도 살짝 맛보기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차도에는 중앙선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앞차를 추월해 오는,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본다면 역주행을 하는 차가 맞은편에서 돌진해오면 케냐 교통상황에 익숙지 않은 우리들은 그야말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케냐 있는 동안 여러 번 사고를 목격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을 매우 재미있다는 듯 쳐다볼 뿐이다.도착한 나쿠루 호수는 분홍빛이었다.

 

분홍색 플라밍고와 하얀 펠리컨으로 덮여 있어서 물이 있는 호수일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위에 가득, 평안하게 떠 있는 이들이 가끔 관광객의 인기척에 놀라 한꺼번에 하늘로 떠오를 때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정상에 올라가 여전히 외국인에게 열려 있는 현지인 꼬마녀석들과 금세 친해져 신나게 놀았다. 곳곳에 살고 있는 원숭이, 바분 녀석들은 간이 배 밖에 나와서 음식을 들고 나온 관광객을 서슴없이 공격했다. 모르고 간식을 들고 나왔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이곳, 나쿠루. 바람이 나뭇잎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좋다.

 

 

#2. 암보셀리, 행운이 따라줘야만 즐거울 수 있는 사파리 여행

 

나이로비에서 지프차를 타고 5시간 남짓 서쪽으로 가면 있는 국립공원이다. 이미 지프차를 타는 그 순간부터 사파리 투어를 하는 셈이 된다. 아프리카의 길은 다른 어느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비포장이 대부분인 케냐의 도로는 바위 투성이며, 메마른 땅에서 일어나는 먼지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차문을 꽁꽁 닫아도 스멀스멀 올라는 먼지에 이미 온몸은 먼지투성이다. 하얀색 옷을 입고 가면 누런 먼지가 껴 빨아도 지지 않을 정도다.

 

 

5시간의 로데오 경기를 끝내고 간 암보셀리 국립공원. 케냐의 마사이마라 사파리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다. 훗날 탄자니아에서 사파리한 경험 때 쓰겠지만.

 

 

사파리는 행운이 좀 따라줘야 즐거울 수 있다. 사자가 누를 사냥하는 모습을 1분 차이로 놓칠 수도 있고, 온종일 돌아다녀도 표범 한 마리 보지 못하는 낭패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날 사자를 그토록 보기를 희망했지만 결국 이미 사냥을 한 차례 끝내고 배가 불러 강아지마냥 벌렁 뒤집어 누워 자는 수사자 한 마리만을 목격했을 뿐이다. 처음엔 죽은 줄 알았다. 문을 쾅 닫는 소리에 귀를 살짝 움직여줘서 아, 자는구나 생각했지. 동물의 왕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게으름뱅이 수사자는 동물원의 그것보다도 못했다고 해야 하나.

 

 

조이홈스를 떠나 여행을 한 지도 3일째.그러나 어느 새 우리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그저 닭소리에 잠을 깨고 캄캄해지면 눈을 감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곧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근사한 방법임을 아는 사람들이니.

 

#3. 그러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에

 

 

케냐에서 유명한 사파리투어 코스도, 멋진 국립박물관도, 근사한 호수도 내 마음에서는 언제나 2위였다. 먼지 가득 일으키는 메마르고 광활한 땅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자연. 그것들은 이미 그 전의 여행에서도 충분히 만끽한 것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실컷 돌아보면서도 멀리 보이는 말로만 듣던 킬리만자로와 마사이족의 화려하고 기품 있는 발걸음에도 와, 와 감탄사를 질러댔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두고 온 조이홈스 아이들과 학교의 노랑 파랑 교복을 입고 동글동글한 웃음소리를 하늘로 내뱉던 꼬마들이 내내 그리웠다.

 

 

하늘과 땅밖에 없는 이곳.

 

그러나 하늘과 땅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올 틈이 없는 공간.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도,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진 이 넓고 가난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땅에서 만난 아이들, 그 어느 위대한 자연보다도 아름답다.

 

글. 니콜키드박(http://askdream.com)

덧붙이는 글 | 2009년 7월부터 2달 동안 지냈던 아프리카 이야기들


태그:#아프리카 , #여행, #박진희박, #케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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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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