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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에 산 데스크 탑 컴퓨터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면 다운이 되더니 올 봄부터는 컴퓨터를 켜고 조금 지나면 그냥 꺼져버립니다. 수리센터에 가져가니 메인보드가 생명이 다 되었다고 했습니다.

1주일 전 11년 된 휴대전화 단말기를 바꾸었듯이 결국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아이들과 함께 썼습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게임까지 하니 컴퓨터가 쉴 시간이 없지요. 지난 설날에 국악 연주를 하는 동영상을 보고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설날 국악 연주를 보면소 춤추는 아이들. 바로 이 컴퓨터가 7년을 쓴 컴퓨터입니다.
 설날 국악 연주를 보면소 춤추는 아이들. 바로 이 컴퓨터가 7년을 쓴 컴퓨터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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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왕 바꾸기로 한 것 처음으로 노트북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바꾸고 보니 아이들과 노트북을 같이 사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없는 집 살림에 더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왕 벌인 것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여보 이왕 사는 것 아이들도 사주면 어떨까요."
"벌써 사주면 어떻게 해요."
"아니 노트북은 아이들이 하기가 힘들어요. 이제 아이들도 컴퓨터가 필요하고. 만날 같이 하니까 나도 불편하고. 다른 살림살이에서 조금 아끼면 되잖아요."

"그럼 사주세요."

집안 살림이 어려운 것을 아는 아내는 아이들에게까지 컴퓨터를 사 주는 것을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살림살이를 조금 아끼면 된다는 말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컴퓨터를 산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지난 토요일 컴퓨터가 집에 왔습니다. 자기들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싱글벙글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들 컴퓨터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아직은 셋이 함께 써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많겠지만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탕화면' 때문입니다. 바탕화면을 딸 아이 사진으로 만들었더니 막둥이가 왜 누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새 컴퓨터 바탕화면을 누나 사진으로 해주었더니 막둥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새 컴퓨터 바탕화면을 누나 사진으로 해주었더니 막둥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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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해요."
"누나가 예쁘니까."
"나도 잘 생겼단 말이예요."
"막둥이 너 잘 생긴 것은 알겠는데 너는 아빠 말 잘 안 듣잖아."
"누나는 아빠 말 잘 들어요?"
"너보다는 잘 듣지."
"그래 이것은 너무 해요. 같이 쓰는 컴퓨터를 왜 누나 사진으로 바탕화면을 만들어요."
"그럼 막둥이 사진으로 바탕화면으로 만들어 볼까? 우리 막둥이 사진이 여기 있네. 이 사진 어때?"

지난 2월 22일 막둥이는 엄마가 결혼 혼수품으로 가져온 12년 된 텔레비전을 밀어 떨어뜨려 망가뜨렸습니다. 막둥이는 우리 집 전자제품을 망가뜨리는 대장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오디오, 냉장고문까지 막둥이 손길만 거치면 망가집니다. 텔레비전을 망가뜨린 후 형과 누나가 지금까지 망가뜨린 오디오, 냉장고, 지구본 이야기를 하자 듣고 시무룩해진 모습을 바탕화면으로 하자는 말에 막둥이는 반대를 했습니다.

지난 2월 텔레비전을 망가뜨린 후 형과 누나가 지금까지 망가뜨린 오디오, 냉장고, 지구본 이야기를 하자 듣고 시무룩해진 모습을 바탕화면으로 하자는 말에 막둥이는 반대를 했다.
 지난 2월 텔레비전을 망가뜨린 후 형과 누나가 지금까지 망가뜨린 오디오, 냉장고, 지구본 이야기를 하자 듣고 시무룩해진 모습을 바탕화면으로 하자는 말에 막둥이는 반대를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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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만들 수 있어요. 누나는 예쁜 얼굴이고, 나는 우는 얼굴이잖아요."
"아빠는 이 사진이 좋은데. 이 사진으로 하자."

"싫어요. 다른 사진으로 바꿔요."
"그럼 어떤 사진으로 할까."
"형아와 누나, 내가 같이 찍은 사진으로 해주세요. 여기 있잖아요."

"야 우리 막둥이 이런 사진도 찾아내고."
"이 사진으로 해주세요."

지난 2월 MBC 방송녹화가 있어 방송국에 갔다가 1층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내어 바탕화면으로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지난 2월 MBC 방송녹화가 있어 방송국에 갔다가 1층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내어 바탕화면으로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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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MBC에서 한 프로그램 녹화 촬영이 있어 갔다가 1층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 날 미디어악법을 국회상임위에서 직권 상정했는데 글귀가 마음에 들어 찍었습니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답니다. '언론탄압'과 'MB정권' 심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막둥이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니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탕화면으로 지정하니 사진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타협했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을 때까지 누나 사진으로 바탕화면을 하기로 했습니다. 막둥이 바람대로 자기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지정을 하는 날이 올까요.


태그:#컴퓨터, #바탕화면, #막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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