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GOP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군인들이 있는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섹터 곳곳에 상상을 초월하는 가파른 근무지가 다수 존재하므로 강한 체력 없이는 군생활이 불가능한 곳이다.


전투지역전단의 부대가 GOP로 올라가기 전에 병사들을 골라내는 것만 봐도 일반부대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체력이나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병사는 GOP로 올라가기 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


그런데 이렇게 고르고 고른 군인들이 모인 GOP에서 왜 철책이 뚫리는 것일까. 우선 GOP부대의 특징을 짚어 보도록 하자.

 

GOP가 일반부대와 다른 점

 

첫째, 면회, 외박이 제한되며 휴가 또한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가기 어렵다. GOP의 특성상 근무자가 비는 일은 용납될 수 없으며 근무자를 다른 곳에서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낮밤이 완전히 뒤바뀐다. GOP는 철야 근무가 기본으로 해가 떨어진 시점부터 해가 뜰 때까지 투입된다. 낮근무 또한 존재하므로 밤시간이 짧은 여름 이외에는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리기 쉽다. 특히 대부분의 근무지가 산중턱인데다 각각 해당 지역의 최북단인 탓에 체감온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셋째, 항상 시간과 인원이 아쉽다. GOP에도 근무 이외의 여러가지 작업이 존재한다. 특히 비나 눈이 올 경우, 일반부대에 비해 서너 배의 위험이 따른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가파른 근무지로 가는 계단이 자주 어는데 이때는 근무자들이 잠을 줄여가며 얼음을 깨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일반부대라면 중대나 대대단위로 협력이 가능하지만 GOP는 소대 단위로 몇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으므로 지원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정된 소대인원으로 작업과 근무를 모두 이행해야 하므로 인원이 모자랄 경우, 근무자 모두가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장 근무시간이 긴 겨울철에 작업이 있을 경우, 밤새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항상 실전이다. GOP 근무는 일반 부대의 경계근무와 달리 항시 실탄을 장전해 놓으며 개개인 모두가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다. 일반부대의 병사보다 긴장이 높은 상황에 노출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365일 일상이 반복된다. GOP에는 일요일도 명절도 없다. 반복되는 일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매일 매일 똑같은 근무와 작업 속에서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경쇠약을 경험하기도 한다. 선진국의 경우, 이런 식의 근무를 지속할 경우 정신과의 상담이나 치료를 보장하고 있다.

 

철책은 왜 뚫렸을까. 그리고 왜 뚫리고도 몰랐나
 
이번 사건에서 아무리 월북자가 그 지역의 지리에 정통했다고 하여도 근무자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병사의 근무 태만과 함께 섹터를 맡은 간부가 해당 시간에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근무자가 이동을 하지 않고 초소에서 근무를 설 때 초소와 초소간에는 감시가 불가능한 시간대가 발생한다. 근무를 맡은 간부가 해당 섹터를 돌아 다니며 그 시간을 메꾸지 않으면 자연히 빈틈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월북자들은 이 시간대를 이용하여 철책을 뚫는다.
 

또한 철책이 뚫리고도 몰랐다는 사실은 근무가 시작되고 끝날 때 해야 하는 철책 점검 또한 그냥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새해가 되면 으레 TV에서 철책을 만지며 근무지로 이동하는 GOP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근무의 투입과 철수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중 하나다.


이때는 소대장, 부소대장을 포함한 근무자의 전원투입이 규칙으로 철책이 훼손됐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간부 이하 모든 소대원이 철책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간부 대신 몇몇 병사가 순찰패(철책마다 한쪽은 흰색, 한쪽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패가 달려 있다. 철책 확인을 증명하기 위해 이 순찰패를 돌려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를 대충 돌려 놓은 것으로 점검을 끝냈거나 아예 간부가 전원투입시간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을 바꿔야 하나


이번 민간인 월북으로 언론과 정치계는 또 한번 군을 호되게 질책할 것이며 국방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최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004년도에 철책이 뚫렸을 때도 GOP에는 비상이 걸렸다. 초단위로 근무지간 이동 시간을 재점검했고 이동 경로를 효율적으로 조정한다고 소란이 있었다. 상급부대의 방문 또한 어느 때보다 많아졌기에 소대장, 중대장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근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 한 철책이 뚫리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바로 인원이다. 아무리 군이 최첨단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철책을 감시하고 지키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다.


정신력을 강조하고 군기강 해이를 질타해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접 근무를 하고 군생활을 마친 병사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원부족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겨울이 시작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GOP의 병사들은 수면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병사라도 충분히 피로를 풀지 못하면 제대로 근무를 설 수 없다.

 

GOP의 특성상 타소대나 중대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기에 소대 자체 내에서 무리하게 근무와 작업을 해결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사들에게 돌아간다. 휴가자가 발생하여 비번이 없는 날이 계속되면 GOP근무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정치계와 언론은 군에게 대비책을 내놓고 군기강을 세우라고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GOP근무자가 섹터당 한 명씩만 늘어나도 초소와 초소간에 존재하는 불가능한 감시 시간대를 대폭 줄일 수 있고 근무자들의 피로 또한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정부에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예비군 훈련일수를 늘린다고 하지만 현역으로 제대해 한 번이라도 예비군 훈련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가 그 정책에 공감할 수 있을까. 예비군에 투입되는 예산으로 최전방의 병력과 감시 장비를 증강하는 것이 몇 배는 더 현명한 판단임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깨달았으면 한다.


#GOP#동부전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