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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스테이(homestay) / 민박 / 함께 먹고자기

 

.. 티베트 사람들의 집에 한두 명씩 홈스테이를 했어요. 전 남자고 키도 크잖아요. 집이 너무 작아 처음에는 우리가 머무는 것이 미안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 봐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는 가족들의 마음에 지금은 진짜 가족처럼 편안해졌어요 ..  <희망을 여행하라>(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소나무,2009) 387쪽

 

 "티베트 사람들의 집에"는 "티베트 사람들 집에"나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집에"로 다듬고, "한두 명(名)씩"은 "한두 사람씩"으로 다듬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것이"는 "우리가 머무는 일이"나 "우리가 머문다 했을 때"로 손보고, '불편(不便)할까'는 '어려워 할까'나 '힘들어 할까'로 손보며, "세심(細心)하게 배려(配慮)해"는 "차근차근 살펴"나 "꼼꼼히 헤아려"나 "깊이 마음써"로 손봅니다. "가족(家族)들의 마음에"는 "식구들 마음에"로 손질할 수 있는데 바로 앞에 '마음쓰다'를 뜻하는 한자말 '배려'가 있으니 이 대목은 "차근차근 살펴 주시는 식구들 모습에"나 "꼼꼼히 헤아려 주시는 식구들 모습에"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가족(家族)처럼'은 '한식구처럼'이나 '살붙이처럼'으로 고쳐쓰고, '편안(便安)해졌어요'는 '느긋해졌어요'나 '푸근해졌어요'나 '좋아졌어요'로 고쳐씁니다.

 

 ┌ homestay : 《미》 홈스테이 (외국 유학생이 체재국의 일반 가정에서 지내기)

 │

 ├ 티베트 사람들의 집에 홈스테이를 했어요

 │→ 티베트 사람들 집에서 지냈어요

 │→ 티베트 사람들 집에서 머물렀어요

 │→ 티베트 사람들 집에서 함께 살았어요

 │→ 티베트 사람들 집에서 함께 지냈어요

 └ …

 

 미국말이라고 하는 '홈스테이'이지만, 이 미국말은 오늘날 우리한테는 미국말이 아닌 여느 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앙부처(한국관광공사)에서 정책을 내놓을 때에도 버젓이 '홈스테이'라는 낱말이 나타나지만, 관광회사에서도 으레 '홈스테이'를 말하고, 나라밖으로 배우러 가는 사람들을 이끄는 모임에서도 흔히 '홈스테이'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말이 바뀌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만, 알쏭달쏭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저처럼 한국땅에서만 지내는 사람들일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밖으로 손쉽게 나다니는 사람들한테는 '홈스테이'라는 낱말이 익숙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고, 지난날 우리들이 써 오던 '민박(民泊)'은 어쩐지 시골스럽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나 어린이들이라면 '홈스테이'라는 낱말은 알아도 '민박'이라는 낱말은 모르지 싶어요.

 

 [민박(民泊)] 여행할 때에 일반 민가에서 묵음

 

 생각해 보면, '민박'은 여행을 하며 묵는 여느 살림집을 가리킨달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라밖으로 배우러 간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걸맞지 않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살피면 '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홈스테이'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에서는 '민박'이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았을까요? 아니, 마땅히 '민박'이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는지요?

 

 ┌ 각 가정별로 직접 면접을 하여 홈스테이를 정하게 된다

 │→ 집마다 따로 면접을 하며 머물 집을 잡는다

 │→ 살림집마다 한 곳씩 면접을 하며 함께 지낼 집을 잡는다

 ├ 중산층 가정의 홈스테이를 통해

 │→ 중산층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 중산층 살림집에서 먹고자면서

 └ …

 

 미국말 'homestay'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 이 같은 미국말을 써야 한다면 쓸 노릇입니다. 다만, 이 말을 쓰기 앞서 이 낱말이 어떻게 짜여 있고 어느 자리에서 왜 쓰는가는 차근차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낱말 짜임새를 들여다보면, '집(home) + 머물기(stay)'입니다. 우리야 이 낱말 'homestay'가 바깥말이지만, 이 낱말을 지어서 쓰는 미국사람한테는 제 나라 말입니다. 미국사람으로서는 미국땅에서 미국 이웃하고 살아가면서 저절로 튀어나와 주고받는 말마디입니다.

 

 '집머물기'인 'homestay'라 한다면, 미국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에는 어떤 말을 써야 알맞을까를 곱씹어 봅니다. 더욱이, 한국말을 익히고 한국 문화를 살피며 한국사람하고 어울리고자 하는 미국사람한테, 우리는 미국사람이 아는 미국말 'homestay'를 어떤 우리 말로 풀어내거나 옮겨내어 가르치거나 일러 주어야 좋을까요. 그냥 한글로 '홈스테이'라고 적으면 될까요?

 

 아직 영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영어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한테 '나라밖으로 가서 지낼 때 머무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떠올려 봅니다. 이때에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홈스테이'가 어떤 일이요 어떤 모습이라고 들려주겠습니까?

 

 ┌ 아동을 입양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 어린이를 입양한 집에서 함께 머물며

 │→ 어린이를 입양한 집에서 함께 지내며

 │→ 어린이를 입양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 유학생과 홈스테이를 매칭시켜 선정해준다고 한다

 │→ 유학생과 머물 집을 이어 준다고 한다

 │→ 유학생과 먹고잘 집을 맺어 준다고 한다

 └ …

 

 가난한 살림이라 나라밖 나들이는 꿈조차 꾸지 않아 'homestay'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둘레에서 이런 말을 쓰든 저런 영어를 읊든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라밖 나들이뿐 아니라 나라안 나들이에서도 '민박'이라는 낱말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제 "민박집에 간다"고는 말하지 않고 "홈스테이를 한다"고 말합니다. 시골집이든 도시집이든 "여느 사람 살아가는 살림집"에 찾아가는 마당임에도 '살림집'이라는 낱말은 우리 스스로 쓰지 않으며 '홈스테이'라는 낱말만 씁니다.

 

 그러고 보면, '홈스테이'라는 낱말로 그치지 않습니다. 차를 마시는 찻집이 '찻집'이라는 간판은 안 달고 '다방(茶房)'이라고만 하다가 요사이에는 '커피집(그나마 한글로 안 쓰고 알파벳으로만 적습니다)'으로 바뀌듯,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우리 말글로는 우리 삶자락을 나타내지 않는 가운데, 한자말과 영어라는 옷만 바삐바삐 뒤집어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보리술을 마시건 무슨 마실거리를 마시건 '병따개'만을 찾습니다. 그러나 제 둘레 거의 모든 동무나 선후배들은 '오프너'만을 찾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제가 꺼내는 '병따개'라는 낱말을 못 알아듣기까지 합니다. '병따개'라는 낱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고 하는 선후배를 만난 적이 있으며, 제 어릴 적 고향동무들은 "야, '병따개'라는 말이 있었냐? 몰랐어?" 하고 읊조리기까지 합니다. 이 녀석들은 어릴 적에 같이 어울리고 놀며 '병따개'라고만 말했는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하고 살고 어울리고 하면서 말이고 삶이고 온통 뒤바뀌어 버리더군요.

 

 ┌ 집머물기

 ├ 여느집살이 / 살림집살이

 └ …

 

 영어 말뜻을 곧이곧대로 옮기면 '집머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쓰자고 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뭐, 이대로도 좋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보다는 '여느집살이'라든지 '살림집살이'처럼 새말을 빚을 때가 좀더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한 낱말로 꼭 써야 하는 자리라 한다면,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줄줄줄 이야기를 펼치는 자리에서는, 굳이 이런저런 새말을 빚기보다는 글월과 말마디에 살며시 녹여내면 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함께 먹고자면서"라든지 "여느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라든지 "여느 집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라든지 하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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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홈스테이#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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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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