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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한가로운 오후. 작은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으로 향했다. 억새의 물결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는 전주천은 의외로 한가하다. 몇 몇 나이 든 아줌마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 자전거를 타고 억새의 물결 속으로 달려가는 모습, 강아지를 앞세우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세웠다. 걷기 위해서다. 늘 타고 다니는 습성에 빠져서인지 어느 날부터인지 걷는 게 생소할 때가 있다. 걷는 것이 생활이어야 할 인간이 이젠 타는 게 생활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이 때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도시인에게 걷는 건 생활이 아니라 운동이 되어버렸다. 생활으로서의 걷기가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걷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떠랴 싶다. 걷다 보면 운동도 되고 생활도 되는 것. 문명의 위험 요소가 전혀 없는 이곳을 혼자만의 여유로움으로 걷다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게 된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막걸리 한 사발에 시를 읊조렸던 한벽루에서 흘러내리는 전주천의 물은 옛물이 아니지만 옛 사연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흐르고 있다.

 

그 흐르는 물을 따라 오리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부리로 서로의 깃털을 만져주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인다. 그들이 노니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자 눈치를 준다. 왜 남의 한가로움과 사랑을 방해하느냐는 투다. 그런 녀석들에게 '뭐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너희들이 보기 좋아서 그런 것뿐이야.' 속으로 이렇게 말을 해놓고 자리를 뜬다.

 

오리들은 혼자 있는 법이 거의 없다. 함께 무리 지으며 지낸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 물길을 오고 가는 오리들은 크게 다투는 법도 없다. 돌아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처럼 서로 앞서기 위해 아웅다웅 하는 모습 없다. 그저 행복한 발놀림을 할 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붉은빛과 분홍빛을 띤 꽃이 다가온다. 하얀 고깔을 쓴 갈대숲 한쪽에 조금은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꽃들이 가을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는 모습이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오후의 햇살과 조끔은 쌀쌀한 바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억새가 일렁이는 천변을 걷다보면 싸전다리 밑을 건너게 된다. 싸전다리라는 이름은 옛날에 이 다리목을 끼고 쌀가게가 죽 늘어서 있어 붙은 이름이다. 싸전은 쌀가게라는 뜻으로 천변을 끼고 한쪽에는 쌀가게가, 다른 한쪽에는 나무시장 같은 것도 섰다고 한다. 옛날엔 전주천을 이어주는 다리를 따라 여러 장이 섰다고 한다. 지금의 매곡교는 담뱃대 가게가 많이 있다고 해서 '설대전다리'라 했고, 완산교는 소금가게들이 있다고 해서 '소금전다리'라 했다.

 

그렇게 천변을 걷다보면 여러 다리 밑을 지나가게 되는데 다리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 같은 안내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살다보면 아쉬운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지금처럼 맑은 가을 날,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고 하루를 흘려보내고 그렇게 겨울을 맞이한다면 그것 또한 아쉬움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억새가 출렁이는 이 천변을 걷지 못하고 한 해를 또 보낸다면 이 또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하루를 게으름으로 보내면 아쉬움은 두 배로 남아 한숨으로 돌아오곤 하는 걸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느끼게 된다. 오늘 천 변 걷기도 어쩌면 그런 아쉬움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억새와 냇물의 모습을 감상하며 걷는데 왼다리가 저려온다. 디스크로 인한 다리 저림이다. 그동안 허리가 아프면 가까운 병원에서 물리치료나 받거나 침을 맞으며 그때그때 증상만 완화시켰는데 이게 악화되어 디스크가 되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수술이라는 단어가 무서워 병원을 나오고 말았다.

 

40여분을 걷다가 돌아오는 길, 머리 위 난간에서 두 마리가 두 부리를 연신 맞대며 입맞춤을 한다. 그 입맞춤을 훔쳐보는 길손이 있음을 눈치 채곤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뗀다. 또 다른 한쪽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의 비둘기들은 뒤엉켜 사랑싸움인지 놀이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요란하게 하고 있다. 그 녀석들은 길손의 눈초린 아예 관심이 없다.

 

관심을 모른 척하는 녀석들을 뒤로 하고 다시 걷는 억새 사이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없다. 가로등도 하나 둘씩 도심의 거리를 밝힐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사물이나 자신의 역할이 다 있는 것 같다. 헌데 사람만이 그 역할을 하나로 만들려고 한다. 좋게 말하면 통일성, 질서이고 나쁘게 말하면 획일화, 규격화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행을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멀리만 떠나려고 한다.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눈을 돌리며 내 발 아래에 있는 것들, 내 눈 아래에 있는 것들 속에 아름다운 것들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멀리 하려고 한다. 가까이 있음으로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데 말이다.

 

 


태그:#전주천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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