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아이들 데리고 내려오라고 성화다. 다섯 살 호연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이 일주일간 휴원한다고 한다. 신종플루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두 명이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단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아이를 맡길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 연세를 생각해 보니 그도 못 할 짓이다. 여든 둘, 내가 옆에서 돌봐드려도 시원치 않을 연세인데 되레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출근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이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호연이를 하루씩 데리고 출근하기로 했다. 하루는 아내가 하루는 내가.

 

막상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모가 서명만 하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고.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려도 어린이집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면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호연이 문제는 해결됐다. 

 

12살 딸 열이 펄펄, 병원 찾아 삼만리

 

 

금요일(10월30일), 일찍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12살 딸 애 얼굴이 심상치 않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아빠인 나를 보고도 "다녀왔어"하고 심드렁하게 인사할 뿐이다. 평소 같으면 반갑게 인사하는 법을 강제로 가르쳤을 터인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물었다.

 

"어디 아프니? 학교에서 언짢은 일 있었니?"

"아니 나 열나, 좀 어지럽고."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신종플루가 12살 하영이를 습격했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엄습했다.

 

"이 녀석아, 그럼 아빠한테 전화 했어야지 여태 뭐 했어."

"엄마한테 얘기 했어. 지금 오고 있대. 같이 병원 가려고."

"빨리 준비해. 아빠하고 병원 가자."

"싫어. 나 엄마하고 갈래."

 

거 참! 어째서 아이들은 아빠하고 병원 가는 것을 꺼리는지 모를 일이다. 나름대로 꽤 부드러운 아빠라 자부했건만 이런 얘기 듣고 보면 김이 팍 샌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 그랬다. 이상하게 아빠하고 병원 가기는 부담스러웠다. 병원 갈 때는 역시 편하게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엄마가 만만했다.

 

"야 이 녀석아, 지금 몇 신데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병원 문 닫을 시간 다됐잖아. 빨리 준비하고 나와."

 

응석 받아 줄 시간이 없었다. 그때 시간 오후 7시, 병원이 문을 닫고 의사들이 퇴근할 시간이다. 서둘러 집 근처 병원을 찾았지만 예상대로 담당 의사들은 모두 퇴근 하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S병원이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종종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한다. 아차 싶었다. 나만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공연히 나까지 신종플루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약국에 가서 잽싸게 마스크를 하나 샀다.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된다.

 

접수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열이 나고 기침이 난다고 한다. 신종플루가 의심이 돼서 온 사람들이다. 하영이를 진료한 의사가 신종플루가 의심된다며 치료제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고 신종플루 검사를 해 볼 것이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예'하고 대답했다.

 

진료를 마치고 접수대에 가서 진료비 영수증을 보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검사료만 자그마치 12만7450원이었다. 진찰료와 약 조제료 주사 맞은 비용까지 합하니 자그마치 19만1620원이다. 진찰료 중 3만4330원은 비급여 품목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7만8600원을 부담했어도 11만2930원을 진료비로 지불해야 했다.

 

신종플루 검사는 간단했다. 면봉을 코에 넣어 콧물을 채취하면 끝이다. 3초 정도 걸렸다. 아무래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검사하는 병원 직원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 이미 타미플루 처방했는데 무엇 때문에 검사 여부를 물은 것이냐? 신종플루라고 판정 되면 그 다음엔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고.

 

병원 직원 왈 검사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다. 그래서 좀 비싼 것이다. 한 번은 검사를 해 놓아야 다음에 또 열 날 때도 검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신종플루로 판정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대답을 듣고는 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느냐고 물으니 일주일 정도 걸린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주일이면 신종플루를 이겨 내든지 아니면 신종플루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오든지 결정이 날 시간이다. 결국 일주일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면 굳이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열이 펄펄 끓는 하영이 손을 잡고 돌아오면서 자꾸만 영화 <식코>가 생각났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영화 식코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미국의 의료계를 고발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식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노인들을 버리는 장면이다. 충격적이다. 노인들을 환자복을 입힌 채로 택시에 태워 멀리 버린다.

 

검사비 12만 7천원 낸 것이 무지무지 억울해서 <식코>가 생각난 것은 아니다. 어쩐지 우리나라가 노인들을 택시에 태워서 버리는 야만적인 미국 의료체계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재난 사태 운운할 정도 질병이면 치료비 정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신종플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