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 영화와 드라마가 그렇듯, 스릴러 계열의 소설들은 여름이 전성기다. 실제로 인기 있는 추리작가의 소설들은 거의 대부분 여름에 나온다. 반면에 추위가 올 때는 어떤가. 볼 만한 작품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간되는 작품의 양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일이 좀 덜한 것 같다. 때 이른 겨울날씨가 예고되고 있음에도 팽팽한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코넬 울리치의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와 마이클 코넬리의 <블러드 워크>가 그 주인공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상의 여인>이라는 소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위를 보더라도 역대 추리소설 베스트 10 안에 들어가는 걸작이다. <환상의 여인>을 쓴 작가의 이름은 윌리엄 아이리시, 필명이다. 본명은 코넬 울리치.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명성만으로도 기대감을 높여주는 소설이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겉표지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겉표지
ⓒ 이룸

관련사진보기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형사 톰 숀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어느 여인을 구하면서 시작한다. 자살하려고 했던 여자의 이름은 진 레이드. 진은 부잣집의 외동딸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다. 그런데 왜 자살하려고 하는 걸까.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주 무서운 것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톰 숀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진 레이드는 그동안 있었던 기이한 일들을 설명한다.

어느 날 진의 아버지가 출장을 떠났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장이었다. 그런데 하녀 중 누군가가 불안해하면서 진의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진이었지만 뭔가 불길함을 느껴 아버지에게 연락하려 하는데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대신에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는 소식만 듣는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진은 거의 넋을 놓고 있는데, 아버지가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진은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녀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것도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진은 두려워진다. 이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진과 아버지는 하녀에게 '예언'을 전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진의 아버지는 남자를 시험한다. 그의 몇몇 말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 부자가 된다. 엄청난 돈을 벌게 된다.

진의 아버지는 욕심을 내며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 그러자 남자는 "6월14일과 15일 사이. 자정 시각에", "당신은 사자의 아가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요"라고 한다. 곧 죽게 된다는 예언이었다. 이때부터 진과 아버지의 운명이 바뀐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해 자포자기했다. 진도 마찬가지였다. 자살하려고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톰 숀은 진을 돕기 위해 예언자와 하녀 등을 조사한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냉정하게 흐르고 그만큼이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된다. 톰 숀은 진의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까? 정말 예언은 실현될 것인가? 그것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꽤나 스릴감 넘치는 일이다. 덕분에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게 해주는데 그 농도가 만만치 않다.

<블러드 워크>겉표지
 <블러드 워크>겉표지
ⓒ 랜덤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시인>으로 인기를 얻은 마이클 코넬리의 <블러드 워크>도 짜릿한 긴장감을 맛보게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FBI 프로파일러 출신의 테리 매케일럽에게 정체 모를 여인이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매케일렙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장을 잡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는 운 좋게 심장이식수술을 받게 되어 살아난 후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해변에서 한가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여인은 그에게 어떤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한다. 매케일럽은 거절하려 한다. 경찰들은 은퇴 후에 종종 사립탐정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동생이 살해당했는데 경찰 조사가 이상하다고 말해도 무시하려 한다. 하지만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심장을 준 사람이 그녀의 죽은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강도사건으로 보이는 일이었다. 매케일럽은 확인하는 셈 치고 담당 경찰들을 만나는데 여기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챈다. 경찰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연쇄살인이라는 뜻일까. 모른다. 하지만 매케일럽은 어떤 살인사건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때 능력 있는 경찰이라면 연결고리가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 매케일럽도 그것을 찾는데 몰두한다. 하지만 답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것을 살펴봐도 피해자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이 없다. 단서도 미비하다. 살인사건의 어떤 목격자는 중요한 정보를 보지 못했고 살인사건을 제보한 사람도 그저 제보만 하고 줄행랑쳤다. 경찰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래야 단서가 생기기 때문이다. 매케일럽은 어떤가. 그는 뭔가를 깨닫는다. 이 사건이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요즘 소개되는 영미권의 추리소설은 스케일이 큰 것이 장점이다. 반면에 세세한 것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블러드 워크>는 어떤가. 스케일이 큰 것을 자랑하는데, 동시에 세세한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트릭이 정밀해지면서 더 치열해졌다. 허를 찌르는 반전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의 전개 또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긴장감은 어떤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추리소설에 웬만큼 단련된 '내성'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추리소설은 여름에 봐야 제 맛이라고 한다. 더울 때 만나는 추리소설의 긴장감이 청량음료처럼 짜릿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겨울에 좋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한 것일 테다. 그런 때에 나온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와 <블러드 워크>, 추운 날에 추리소설 읽는 것 또한 짜릿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단숨(2014)


태그:#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 #마이클 코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