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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뜬금없는 휴대폰 문자다. 그동안 한 번도 문자를 주고받지 않았는데, 둘째아들이란 놈에게서 밑도 끝도 없이 문자가 왔다. 12월 12일이 환갑이라는 것이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알고 보면 참 세상살이 제멋대로 살아왔는가 보다. 그런데 왜 하필 12월 12일일까?  1979년 12월 12일은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 등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일이 아닌가? 그리고 보면 벌써 아이들과 떨어져 생활한 지가 20년이 훌쩍 지났다. 나도 참 몹쓸 애비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낸 둘째가 고맙기만 하다.

 

살다가보면 이런저런 많은 일을 당하고 사는 것이 인생살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이야깃거리도 다 다르다. 어느 누구는 참 훌륭한 아버지로 기억이 되는가하면, 어느 누구는 비정한 아버지로 기억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당연히 후자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참 아련한 기억이다. 어린 녀석들이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을 떼어놓고 집을 나선 지가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으니 말이다. 무엇에 미친 것인지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 문화를 지켜보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갖고 시작한 일이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확신을 갖고 한 일이지만, 어린 녀석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가정에 충실히 하지 못한 나이기에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까맣게 잊고 살았다. 일 년이면 거의 반은 길에서 보냈다. 돌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기와조각 하나를 들어내 흙을 털어 소중한 보물이라도 다루듯 하면서 길에서 보낸 세월이다. 언제 철이 지나는지, 언제 내가 태어난 날인지, 그런 것조차 잊고 살았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오늘이 생일이라고 챙겨주면 그것으로 감지덕지하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벽면을 가득채운 CD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지 벌써 20여 년. 그동안 조사한 자료들이 벽면에 가득하다.
벽면을 가득채운 CD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지 벌써 20여 년. 그동안 조사한 자료들이 벽면에 가득하다. ⓒ 하주성

한 쪽 벽면을 채운 CD에 담긴 자료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고 생각을 한다. 어디에 우리 문화재 하나가 훼손이 되었다고 하면 기를 쓰고 찾아다니면서 싸워댔다. '밥 먹여주나'라고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밥을 먹는 것이 그만큼 소중할까?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지고 뺏긴 것들이 부지기수다. '양으로는 90%가 남았지만, 질로는 5%로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문화재의 현실이다. 그런 문화재마저 훼손을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날이 가는 것이 두렵고, 나이가 먹는다는 것이 두렵다. 더 많은 것을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20여 년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참 고생도 무척했다. 장맛비에 길이 막히기도 하고, 눈길에 길을 잃어 몇 시간을 헤메기도 했다. 잘못된 안내판으로 인해 온 산을 몇 시간씩 헤짚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답사를 하다가 경비가 떨어지는 바람에 상여막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살아 온 지난 20여 년의 세월에, 남은 것이라고는 벽면을 채은 자료들 뿐이다.  

 

아이는 '이제는 좀 쉬세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 문화를 등한시하는 세태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친구 녀석들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짓을 하기 위해서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참 세상 웃기게 산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누가 지켜낼 것인가? 잘못되고, 훼손되고, 멋대로인 문화재들도 있기에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환갑#문화재#답사#아들#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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