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학창시절 나에게 시험은 곧 '비상계엄령'이었다. 집에서는 일단 재미있는 만화책을 읽지 못하게 하고 행여나 읽다가 걸리면 무조건 야단을 쳤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은 그야말로 쥐죽은 듯 살아야 했다.
선생들의 몽둥이 찜질이 시작되고 집에 가면 부모님의 불호령이 이어지고... 그래서 결국엔 성적표를 가방에 숨긴 채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시간이 반복됐다.
지금도 가끔 꾸는 꿈이 있다. 교육 정책이 갑자기 바뀌어서 고등학교 3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교실에 앉아 있는데 대뜸 다음날부터 중간고사란다. 그것도 고등학교 시절 엄청 싫어하던 물리와 화학, 수학을 같은 날, 그것도 모두 다음 날에 본다.
이런, 하나도 모르는데! 머리가 몽롱해지며 아무 생각이 없어지다가 점점 "맞아, 나 회사 나가지'를 느끼면서 악몽에서 깨어난다. 남들은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가끔 꾼다는데 나는 지금도 학교에서 시험보는 꿈을 꾸는 것을 보면 내가 시험을 정말 싫어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주일을 쫓아다닌 꼬리표, '평균 미달자'
이런 시험의 악몽을 언제 처음 느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 매주 치른 산수 시험이 그 시초였다. 지금도 수요일이 되면 '시험보는 날인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수 시험은 내 인생 최초의 악몽을 경험한 시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요일이면 6학년 전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산수 시험을 쳤다. 그 때 왜 그 시험을 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실력 향상 운운하는데 왜 굳이 산수만 봤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 시험이 악몽인 이유는 우선 '평균 이하'를 향한 선생님의 무지막지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수를 채점해 반 평균 이하를 맞은 학생은 일단 몽둥이가 기다리고 선생님의 꾸중이 이어진다. 수업이 다 끝나도 집에 일찍 갈 수가 없다. 남아서 산수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고역은 다음 시험이 있는 일주일 동안 '평균 미달자'라는 꼬리표를 지겹도록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환희와 좌절, 안도감이 교차하는 채점이 끝나면 선생님은 "하나 틀린 사람?", "두 개 틀린 사람?" 하며 손든 아이들 숫자를 셌다.
그렇게 해서 평균이 나오면 이하자들은 바로 일어서야 했다. 그 순간 평균 이하자가 누구인지를 모든 반 학생들은 알게 된다 평균 미달자의 굴레는 그렇게 씌워지고 일주일동안 어느 시간이 되어도 이들은 '평균 미달자'로 불려진다.
6학년을 마치고 우리 반은 문집을 만들었다. 그 때 한 친구가 평균 미달자가 됐을 때를 쓴 글 속에 이런 말이 있던 게 기억난다.
"시험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죽도록 미웠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험을 만든 사람도 다 훌륭하다."
"실은 오늘 시험봐요"
한동안 집에는 시험 본다는 이야기를 안했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했지만 당시 시험이라고 하면 어머니는 집에 있는 책들을 일절 못 읽게 했다. 매주 시험이 있다고 하면 어머니는 분명 1년 내내 아무 책도 읽지 말라고 할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 역시 나는 집에다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신나게 뛰어놀았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고 가방을 챙기다가 떠오른 것. 오늘이 수요일이었다. 이런!
갑자기 학교가 가기 싫었다. 몽둥이도 두렵고 꾸중도 두렵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가면 더더욱 혼난다. 이래저래 머뭇거리다 어머니한테 들켰다. 결국 이실직고 했다.
"저... 실은... 오늘... 시험 봐요."
우리 어머니,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하고..."라며 길길이 노하셨고 나는 도망치듯이 집을 나섰다. 그렇게 친 시험이 어땠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일주일이 괴로웠다는 것 외에는.
멍이 대신 말해주는 시험의 결과
받아쓰기, 쪽지시험, 외우기 시험... 그 시험의 결과는 손바닥과 종아리의 멍이 대신 말해주곤 했다. 그도 모자라 이제 매주 계속 산수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리 우리를 놀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왜 자꾸 평균 이하자들을 무시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시험이 완전 폐지됐다는 소리를 듣다가 이제는 일제고사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때의 나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의 나처럼, 혹은 다른 아이들처럼 '왜 놀지 못하게 만드냐?'는 원망과 함께 '시험을 만든 사람이 죽도록 밉지만 시험을 만든 사람도 훌륭하다'며 아픈 상처를 만지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은 바로 '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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