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층의 붉은 벽돌색 민가 아래에 아드리아해(Adriatic Sea)의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나의 가족을 태운 베니스의 수상버스, 바포레토(vaporetto)는 바닷 물결에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햇살도 뜨거웠지만 바람도 셌다. 햇살 아래 바닷바람은 나와 딸의 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바다의 수로 위로 선박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 무라노 섬 가는 길. 바다의 수로 위로 선박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수상버스는 무라노(Murano) 섬 중심부의 수로 속으로 점점 들어갔다. 작지만 물이 가득한 바닷물 수로 위로 크고 작은 요트와 선박들이 정박해 있고 배들 사이에는 배를 바다 위에 달아매는 나무 말뚝들이 바다위로 솟아 있었다. 나는 가족을 데리고 유리공예 박물관(Museo dell'Arte Vetrario) 수상버스 선착장에 내렸다.

무라노 섬의 거리에는 그 이름 유명한 베니스의 유리공예품 가게가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앙증맞고 예쁜 유리제품들에 딸 아이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약간 작은 유리제품은 가격이 5유로(euro). 이탈리아 물가를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하게 원산지 유리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도 중국산 싸구려 유리 제품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유리제품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탈리아 산과 중국산 유리제품은 정교함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선착장 오른편으로 난 수로를 따라 길을 계속 걸었다. 나의 목표는 베니스 유리공예 박물관(Museo dell'Arte Vetrario)이었다. 여행 안내서나 인터넷 자료에서도 거의 찾기 힘든 박물관이지만 나는 이 박물관이 역사성과 작품성을 갖춘 박물관일 거라고 확신하고 걷고 있었다.

이 더위에 길을 헤매면 가족의 성화가 이어질 것 같아서 나는 무라노 섬 지도를 다시 들쳐 보았다. 내가 가족과 함께 가는 방향이 박물관 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박물관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행지 길 찾기의 원칙대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걸었고, 지나가는 서양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그 아저씨는 이탈리아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걷는 방향이 '아마도' 박물관 가는 방향일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도 무라노 섬이 처음인 여행자였다.

박물관 입장료는 일인당 5.5유로나 되고 학생요금은 유럽의 학생들만 할인이 되고 있었다. 값비싼 유리 제품과 중세 유리 유물의 도난 우려 때문에 모든 짐은 입구에서 맡겼지만 카메라 가방은 들고 들어갔다. 내 카메라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직원이 다른 직원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카메라 가방을 그대로 통과시켜 준다.

과거부터의 유리공예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 베니스 유리공예박물관. 과거부터의 유리공예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총천연색, 휘황찬란한 현대 유리제품들이 나의 눈길을 잡아끈다. 박물관에 있는 전시물들은 박물관 바깥, 유리제품 상점에서 파는 제품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명품들이었다. 유리 제품들이 정말 흔해진 세상이지만, 이곳의 유리 제품들은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이 유리 제품들은 제품이 만들어질 당시에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리 작품들이었다.

나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유리공예 제품에서부터 시간 순으로 전시된 유리 제품들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무라노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 여전 전인 982년경에 처음으로 유리공예가 전래되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무라노는 이탈리아, 아니 유럽 유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고, 이 유리공예박물관은 무라노 유리공예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박물관의 가장 오래된 유리제품은 기원전과 1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굽 달린 큰 컵과 유리로 만들어진 사발이다. 이 제품들은 틀에 넣고 공기를 불어 만든 제품과 자유롭게 공기를 불어넣어 만든 유리 공예 작품으로 구분되고 있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유리를 만드는 기본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화려한 무라노 유리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 유리공예박물관 전시실. 화려한 무라노 유리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박물관은 조용하면서도 현대적 분위기의 디자인을 품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기도 하겠지만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다른 원료로 만들어진 제품은 없고 모두 유리로만 만들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박물관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라노 유리 공예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제품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이곳 무라노에서 생산된 유리공예 전시품들 중에 가장 오래된 제품은 14세기에 만들어진 유리 제품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고대의 백색 식기는 참으로 이국적이다. 비록 투박하고 유리의 빛이 영롱하지 못하지만 유리의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작품들 중에는 주먹 만한 크기의 갈색 유리병들이 미완성인 상태로 전시 중이다. 볼 품 없지만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남아 있는 소중한 유물들이다.

이 박물관의 유명세는 베니스만의 미적 감각이 가미된 유리 공예를 끝도 없이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곳에 전시된 유리 공예작품은 무려 4,000 여점에 달하고 유리를 제작하던 과거의 도구까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다른 나라에서 아직 무라노의 유리공예를 따라오지 못하던 시절인 18세기와 19세기 중엽까지의 섬세한 유리공예 작품들이 주로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구워 온갖 그릇으로 사용하듯 당시 무라노에서는 총천연색의 유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무라노 섬을 포함하는 베니스는 동방과의 활발한 무역을 통해 융성하던 나라였다. 자연히 베니스는 동방으로부터 선진적인 유리 공예 기술을 배우고 도입하게 되었고, 특히 14세기 중엽 이후에는 화려하고 섬세한 베네치안 글라스 특유의 디자인과 색상이 발현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베니스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유리 공예품의 생산지로 발전하여 왔다.

나는 이 유리공예박물관의 매력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심미적인 예술작품의 정수들이 모여 있는 진짜 박물관을 만나는 뿌듯한 만족감이 밀려왔다. 사진촬영 금지라는 표지는 있지만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는 직원은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모니터에 담긴 유리제품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지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바다 위 외딴 섬의 공방에서 수세기 동안 만들어졌을 유리의 마술을 상상해 보았다. 유리 공예의 장인들은 유럽 각 나라의 귀족들로부터 인정받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이 섬에 모이게 되었고, 이곳에 발을 디딘 유리 공예의 장인들은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한 가지 일에 미쳐야 고수의 경지에 미칠 수 있다고 하듯이 이 섬에 잡혀버린 장인들은 미친 듯이 작품을 만들었고 베니스 유리 제품의 명성을 쌓아갔던 것이다. 오묘한 색상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무라노 유리 공예의 명성은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 평생을 이 섬에서 유배된 듯이 살았던 그들의 희생 위에서 이룩되어진 것이었다. 수로를 사이에 둔 당시 유리공예 공방에서는 유리 제품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박물관 전시실 천장에 걸린 현란한 유리 샹들리에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유리만 가지고 저런 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유리는 보석이 가지지 못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유리가 보석 대비 제조비용이 저렴해서 보석보다 인기가 없을 뿐이지 그 아름다움은 보석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베니스의 마을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있다.
▲ 유리공예박물관의 창밖. 베니스의 마을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전시된 유리 공예품 중 가장 압권은 유리로만 만들어진 거대한 분수 모형이다. 전시실의 한쪽 구석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유리 분수에는 유리로 분수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롱한 유리 분수물이 전시실을 밝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무라노 섬의 수로가 내려다보이는 박물관의 2층 창가에 섰다. 아! 그리도 그리던  베니스의 마을, 베니스의 바다가 창밖에서 어우러지고 있었다. 바다에 면한 집들은 오래 되어 헐었지만 역사의 풍상을 안고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붉은 집들은 이곳의 하늘과 바다와 너무 잘 어울렸다.

대리석 우물 위에 총천연색의 유리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유리공예박물관 안마당. 대리석 우물 위에 총천연색의 유리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아내, 딸과 함께 박물관 1층의 안마당을 지나 후원으로 가 보았다. 대리석 조각과 함께 무지개 빛깔의 유리공예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도기로 만들어진 인공의 열대나무들이 붉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잔디밭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붉은색 침대의 현대적 디자인인 박물관의 과거 작품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고향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고향답게 현대적 디자인을 뽐내고 있다.
▲ 유리공예박물관 후원. 베니스 비엔날레의 고향답게 현대적 디자인을 뽐내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후원의 잔디밭에는 사람도 몇 없다. 나는 벽돌을 쌓아 만든 벤치에 아내와 함께 앉았다. 베니스 시내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무라노 섬의 적막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의 딸이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 정원 안에는 우리 가족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 고요한 행복을 가족과 함께 함에 너무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8년 7월 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무라노 섬, #유리공예박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