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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이 어지럽다.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 후 국회의장, 여당, 야당, 보수· 진보 언론할 것 없이 국민들 어지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4일(어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원안을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하며 더욱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 후, 김형오 국회의장의 납득하기 힘든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등 야당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미디어법 재논의는 여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헌재가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했으므로, 약속했던 대로 국회의장은 사퇴하라"고 이강래 의원이 언성을 높인 것을 의식한 듯, 지난 4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의 정치적 수준을 높이자"고 오히려 훈계를 했다.

어불성설이다. 적반하장이다. 헌재결정 후 김형오 국회의장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 딱 그렇다. 미디어법 헌재결정을 다시 들여다 보자.

'법적책임의 주체는 국회의장 김형오' 못박아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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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신문법, 방송법 가결선포행위 당시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음을 이유로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인용하였다.

3인의 재판관은 가결선포행위자체가 위법위헌이므로 미디어법 자체가 무효라고 결정하였고, 3인의 재판관은 무효확인은 기각하면서도 그 중 2인의 재판관은 위법위헌인 상황을 국회의장이 시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또 1인의 재판관도 가결선포행위가 위법위헌이라고 확인하면서 그 시정은 국회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 중 8인의 의견으로 당시 국회의장 김형오의 의사진행을 대리한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의 법적책임(피청구인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절차상 위법위헌인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의 법적책임의 주체는 국회의장 김형오라고 못 박고 있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의 법적 책임과 시정은 피청구인 김형오 국회의장에 있음을 재판관 다수 의견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는 잘못이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여야의 책임으로 돌리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던 말도 뒤집으며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김형오 국회의장은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 자체가 위법위헌이므로, 해당 법률을 무효선언하고 여야가 재논의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국회수준은 그럼으로써 높일 수 있다.

민주당-진보언론, 결정문 취지 살피지 않고 헌재 비난에 열 올려

이번 헌재 미디어법 결정 후, 혼선과 혼란도 냉철하게 되돌아 보아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과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에도 한가지 묻자. 헌재 결정 후, 결정문 취지도 자세히 살피지 않고 헌법재판소 비난에 열을 올린 것은 아닌가. 그 사이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 책임은 온데 간데 없었다.

민주당 등 야당의 책임이 더 크다. 또 권한쟁의심판 청구인 대리인 변호사로 이름 올린 사람들이 백명이 넘는다. 누구 한 명 헌재결정 후 그 결정취지를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주었는지 묻고 싶다. 이후 민주당 등 야당은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헌재결정취지는 국회에서 시정하라는 것"이라며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국민들에 혼란을 초래한 책임에 대해서 그 누구 한 명 사과없이 그래도 "헌재는 비겁했다"며 발뺌하고 있다.

진보가 반성할 부분이다. 지금처럼 "절차는 위법위헌이지만 미디어법은 유효하다"고 헌재가 결정했다면서 헌재가 하지도 않은 말로 헌재를 비판하며, "그래도 절차위법부분은 국회에서 시정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헌재결정내용을 성급하게 재단해서 혼란을 초래한 점을 민주당 등 야당에서 먼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헌재의 미디어법 결정취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처럼 헌재결정을 비난하면서, 한나라당에 헌재결정에 따라 미디어법 재개정논의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인정할 것은 더 늦기 전에 인정하는 것이 깔끔하다. 민주당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 한나라당, 청와대, <조중동> 등 언론들도 "헌재결정을 존중하라"고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과 진보언론들도 헌재결정취지를 존중하면 된다.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을 향해 미디어법 재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진심으로 미디어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면 이 길이 옳다.

세종시는 '법률'... 대통령이 법률집행 거부하나?

정운찬 총리가 4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를 이전하는 세종시 원안을 사실상 폐기하고, 내년 1월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운찬 총리가 4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를 이전하는 세종시 원안을 사실상 폐기하고, 내년 1월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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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어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내년 1월까지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사실상 세종시 원안폐기선언을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세종시 원안수정불가 방침을 밝히며, 정 총리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추진을 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도 뭔가 이상하다. 이쯤되면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야당의 대응도 답답하다. 4일(어제) 정운찬 총리가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것은 정부정책안도 아닌 일부 정부기관 이전 문제에 관한 법률이다.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 중인 법률에 대해서 대통령과 총리가 일방적으로 법률의 집행을 거부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일명 '세종시법'은 2005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8년 2월 개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이다.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이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위헌선언이 된 후, 이 법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된 내용을 담고 있다(9부 2처 2청 이전). 이 법은 또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을 각하하고, 사실상 합헌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행정부의 시행령도 아닌 국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가 합헌을 선언한 법률을 폐기하겠다고 국무총리가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국민대표기관인 입법부와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행정부가 입법부와 헌법재판소 무시... 신문민독재와 다름없어

신문민독재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행하던 통치스타일로 행정부가 전권을 휘두르려고 한다. 그런데도 야당의 방어자세는 어수룩하다. 민주당은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유지를 천명하라"고 애걸(?)하고 있고, 충청도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은 "정운찬 총리와 세종시 협의는 하지 않겠다"는 수준에서 반발하고 있다.

지금의 대응을 보면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가 국민대표기관임과 동시에 입법기관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은 10월 재보선에서도 승리하고도 미디어법 헌재결정 후, 헌재결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헌재 비난의 선봉에 서며 시간을 버렸다. 지금 미디어법 재개정의 절호의 기회에서 헛발질하던 것과 똑같은 반복을 하고 있다. 그래서다. 정부에 세종시법 원안 추진 천명을 요구하는 수동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입법한 법률과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 처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당과 일명 진보언론들의 분발을 촉구해 본다. 이명박 정부에 대응하는 모습이 어설퍼 보여서다.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야당과 언론이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며 국민들 화풀이를 대신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국민들 처지에서는 미디어법 재개정도 그렇고 세종자치시법 처리 문제도 그렇다. 쉽게 말해 정곡을 찔러라. 그리고 성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남경국 기자는 독일 쾰른대학교 '국가철학 및 법정책 연구소' 객원연구원입니다.



태그:#미디어법, #입법부 , #행정부 , #신문민독재, #삼권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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