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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작은 정자를 하나를 지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정자를 짓고, 아이들의 교육에만 전념했다. 화려하지 않은 정자는 그래서 더욱 따스함이 배어있다. 남들은 벼슬을 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벌이는데, 남계정의 주인은 초연히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이런 남계 김진이 바보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깊은 속을 아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을 듯하다.

 

남계 김진은 조선 중엽의 유학자다. 남계(南溪)는 그의 호로 자(字)는 이온(李溫)이며, 본관은 통천이다. 김진은 조선조 중종 22년인 1527년에 태어나, 25세에 초급과거시험에 급제를 하여 생원이 되었다. 선조 7년인 1574년에는 합천에서 훈도로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진은 곧 고향으로 낙향을 하여 오직 학문과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만 정성을 쏟았다. 남계정은 김진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지은 정자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훈장을 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다.

 

남계정은 선조 13년인 1580년에 처음으로 지어, 1673(현종 14)과 1859년에 중수를 하였다. 남계정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는 붉은 벽돌로 둘러 담을 쌓고, 문이 잠겨 있다. 아마 후손들이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잠을 통을 채운 듯하다. 정자는 대청과 방으로 되어있으며, 앞쪽으로는 마루가 연결이 되어있다. 정자 안에는 의병장 조헌과 고경명 등이 김진의 높은 덕을 기리는 글들이 걸려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전주에서 순창으로 나가는 국도(옛 길로 지금은 앞으로 전용도로가 생겼다)에서 구이면 소재지 방향으로 접어들면, 좌측에 있는 원두현의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원두현은 통천 김씨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형성 시기는 600년 정도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남계정 마루에서 내다보면 앞에 모악산이 보인다. 어머니의 산이라는 이 모악산을 바라다보면서 남계 김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을 날 찾은 남계정 앞에 느티나무 고목은 이미 앞을 다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남계정 앞에 선 작은 산죽은 푸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남계의 곧은 성격을 알려주는 듯하다. 작지만 따듯한 정자, 남계정은 그렇게 모악을 바라다보며 오롯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태그:#남계정, #느티나무, #훈장,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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