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V'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 금요일(6일) 미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백악관 대변인 로버트 깁스(Robert Gibbs)는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그것은 2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실업률에 대한것도, 논란이 거듭되는 의료보험개혁안도 아닌 ABC 방송에서 지난 화요일 방영을 시작한 80년대 미니시리즈 리메이크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의견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린 드라마 'V'는 지구를 침략한 -최종적으로는 인간을 먹이로 삼으려는- 외계인들과 지구인 레지스탕스간의 사투가 주된 내용이며 1983년에 미국에서 처음 방영되었고 16년만인 2009년 리메이크가 방송되어 높은 시청률(당일 1400만 명 시청집계)을 기록한 미니시리즈이다.
지난 화요일, 'V'가 방영되고 나서 많은 평론가와 미디어는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텔레그라프(Telegraph)의 레이첼 레이(Rachel Ray)는 "으시시하게 흥미로운 스토리라인과 독창적인 캐릭터들로 손쉽게 시청자들을 지구를 구하는 모험의 세계로 빨아들인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으며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의 머린 라이언(Maureen Ryan)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 인기 드라마와 미국대통령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기에 공식브리핑에서 이런 질문까지 나오는 것일까.
새로이 방영된 시리즈의 첫회에서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리더 안나는 카리스마와 매력 있는 외모를 지녔으며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해 자신들의 방문이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성공적으로 홍보한다. 인터넷에 익숙한 젋은 세대들은 그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지지세력에 힘을 더한다. 그녀-혹은 그것-는 전쟁과 탐욕으로 갈라진 인류에게 희망과 화합, 그리고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신들의 진보된 과학적, 의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료시설 제공을 제안한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지구인들 앞에서도 불편한 기색없이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변화를 포용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라며 변화를 역설하는 안나.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미국인들은 이 식인 외계인들과 그들의 리더의 등장이 자신들이 아는 인물의 1년 전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느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젊은 그의 혜성 같은 등장,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 호감가는 외모, 인터넷과 블로그 등의 미디어를 적극 이용하는 선거전략, 젊은 세대들의 압도적인 지지, 희망과 변화의 메시지,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선 의료보장개혁까지.
시카고 트리뷴의 글렌 가빈(Glenn Garvin)은 "V는 끝내주는 공상과학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가시돋힌 메시지이다"라고 소개했으며 보수적이며 반 오바마 진영인 폭스티비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와 의료보험개혁안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책임프로듀서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외압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던 ABC의 관계자는 대본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전에 완성되었으며 현 행정부에 대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연관은 전혀 의도된 바가 아니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리지널 'V' 시리즈의 모티브는 20세기 초 유럽과 아시아를 뒤흔든 파시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력한 권력과 통제, 일반 국민들에게 주입되는 끊임없는 메시지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바탕으로 이미 자리잡은 전체주의적 시스템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대결이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 뒤에 숨은 메시지였던 것인데,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다름아닌 자국의 대통령과 외계인의 불편한 연관성은 9.11테러 이후 강력해져만 가는 국가권력에 대한 우려와 취임 1년동안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들의 실망과 우려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깁스 대변인은 '자신은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대통령에게 물어는 보겠다'고 대답했고, 설사 오바마 대통령이 외계인으로 불린다 해도 그정도는 오늘 들은 나쁜 말들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라며 자조적인 농담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