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버스나 전철에서 책 읽는 것을 즐겼지요. 지금이야 태안에서 대전이든 서울이든 두 시간이면 가지만, 몇 시간씩 걸리던 시절, 책 속에 푹 파묻혀서 언제 가고 왔는지 모르던 때도 있었지요. 점점 나이 먹어 가면서 책을 읽기보다 묵주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지금도 버스나 전철 안에서 더러 책을 읽기도 하지만, 묵주기도를 하는 경우가 월등 많습니다.
그런데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구걸'하는 장애인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지하도에서도 더러 보지요. 그분들을 볼 때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옛날 한때 '보증빚'에 짓눌려서 몹시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전철 안에서 묵주기도 하는 것을 삼가곤 했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다가 구걸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난감해지기 때문이었지요. 구걸하는 장애인을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적은 금액이나마 매번 적선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묵주를 쥐고 기도하던 사람이 장애인의 구걸을 모른 척한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그러니까 쪼가리 돈 몇 푼 아끼느라고 묵주기도를 조심하거나 포기한 경우가 많았던 거지요.
2003년 3월, 베트남전쟁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고민을 했습니다. 적법 절차와 정밀 검사에 따른 판정이긴 하지만, 만약 내 몸의 질병이 베트남전쟁 고엽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갔을 때는 면구스러워지리라는 생각이었지요. 이상한 양심의 불편 때문에 고심을 하다가 얻은 결론이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을 혼자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시외버스 요금은 30% 할인 받고 지하철은 무임인 덕분에, 그때부터는 서울을 갈 적마다 시외버스 할인 받은 금액과 지하철 요금을 주머니에 따로 넣곤 했습니다. 전철 안에 앉아서 묵주기도를 하다가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나면 쉽게 천원짜리 지폐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먼 곳을 가고 오고 하다보면 적선을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돈이 모자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 정도의 적선도 어려워서 혹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나게 될까봐 전철 안에서 마음놓고 묵주기도도 하지 못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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