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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갑골문 금문(종정문) 전문의 소 그림문자 변천
▲ 소 축(丑)자의 옛글자들 왼쪽부터 갑골문 금문(종정문) 전문의 소 그림문자 변천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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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인 한 국세청 관리의 부인이 차린 미술품 매매업소 G갤러리가 미술품을 강매했다는 의혹을 받아 이들 부부가 출국 금지되는 등 권력과 금력(金力)에 얽힌 추문(醜聞)들이 시중에 난무한다.

때로 애정물(愛情物)도 '한 추문' 한다. 특히 요즘 들어 미술품이 이런 입방아의 단골 메뉴가 되는 점도 이채롭다.

이 공직자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소도둑 얘기를 아시는지? 소도둑이 포도청에 끌려와 딴청을 부리며 했다는 오래된 우스개 얘기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소를 훔친 적이 없소. 단지 길가에 새끼줄이 놓여있어 이를 집어 들고 집에 왔을 따름이오.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이런 답답한 일이 있나!"

이 '억울한' 공직자에 관한 뉴스에 소를 뜻하는 글자 중의 하나인 축(丑)을 떠올리며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등장하는 유서(由緖) 깊은 이 글자는 정작 소의 이미지는 없고 끈을 잡은 손을 그린 것이다. 이 끈의 저편에는 물론 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도둑 얘기를 하고보니 이 글자의 발상이 참 기발하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한자(漢字)의 묘미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을 수 있겠다.

신에 제사지내는 희생물의 대표 격(格)인 중요한 가축(家畜) 소를 표현한 또 하나의 글자는 우(牛)다. 물론 이 글자도 갑골문에서부터 출발하는 전통 있는 상형자(象形字)다. 소의 잘생긴 뿔과 얼굴을 정면에서 묘사(描寫)한 그림글자의 변천(變遷)인 것이다. 물론 소를 의미하는 말로 활용되는 사례는 이 글자가 축(丑)자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

소 축(丑)자는 이내 12지지(地支)의 둘째 자리로 지위를 바꾼다. 아니면, 원래 12지지의 둘째인 축(丑)에 사람들이 소[牛]의 이미지를 부여(附與)했을 수도 있다. 이런 류(類)의 퀴즈는 동북아시아 공통의 고대 인류학적 관심사가 되겠다.

축(丑)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1시부터 3시까지 사이, 방위로는 자(子)와 인(寅) 사이 곧 북동(北東), 달로는 음력 12월, 띠 동물은 물론 소다.

12지지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의 10천간(天干)과 함께 60간지(干支)를 이룬다.

고대로부터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함께 일[事]의 진행과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데 활용됐다. 60간지는 육갑(六甲)이라고도 한다. 흔히 그날의 운세라고 말하는 일진(日辰)도 출처는 이 60간지다.

축(丑)자에서 소의 이미지는 거의 몽그라졌지만 띠 동물로 당당히 살아남았다. 또 '손에 잡힌 끈'의 의미는 맺을 뉴(紐)자에서 절묘하게 살아난다. 뜻 요소인 형부(形符) 실 사(糸)자와  소리요소인 성부(聲符) 축자를 연결한 이 뉴라는 글자는 뭔가를 맺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말한다. 이는 곧 끈이다.

토막해설-소 축(丑)
 상형자(象形字).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모양은 손가락으로 잡은 것을 비트는 것이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는 '묶는다는 뜻이다[紐也] 손을 상형한 것이다[象手之形]'이라고 풀고, 계절과 방위(方位)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설문해자>도 그렇지만,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注)>도 소[牛]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소의 이미지가 이 글자 발생 이후에 생성(生成)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수갑(手匣) 축(軸)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사전은 유대(紐帶)를 '끈이나 띠의 뜻에서, 두 개를 묶어 서로 연결하는 즉 혈연(血緣), 지연(地緣), 이해(利害) 따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푼다. 또 축(丑)의 '비틀어서 매다'라는 뜻이 유대라는 낱말에서 단단한 끈이라는 개념을 짓기도 한다. 비록 축(丑)자가 소리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안의 끈의 의미를 역사 속의 수많은 말무리들 즉 언중(言衆)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부활시키고야 만 것이다. '불멸의 끈'인가.

이미 역사와 신화는 비리(非理)로 부끄러운 수많은 인생들을 낳고 후세에 비춘다. 어설픈 '새끼줄 소도둑'도 그러한 엄연한 사례(事例)다. 대중은, 따로 입을 열고 일일이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 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교훈으로 새긴다. 이는 인간을 넘는다. 그러나 또 인간은 애써 이를 잊는다. 덧없음보다 더 같잖다. 어진 소를 보라, 인생이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 강상헌은 이 신문의 논설주간이며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태그:#소, #인생, #끈,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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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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