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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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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많은 언론들이 "교육과학기술부는 앞으로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하면 해당 학생 등은 등교하지 않게 하되 휴교는 가급적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난 10월 29일자 언론 보도를 보면 "교과부는 '지금까지 휴업조치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임의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학교단위별 대응능력을 강화시켜주기 위해 학교단위별 휴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금명간 전국 교육청에 시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이는 대략 교과부가 얼마나 우왕좌왕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교과부가 시도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로 처음 내려 보낸 신종플루 지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휴교를 '가급적' '자제하라'는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교과부의 이러한 지침 때문에 많은 학교들은 혼란을 면하지 못했고, 신종플루는 그 때문에 더욱 확산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또 교과부는 신종플루에 감염된 학생이 전교생 중 몇 퍼센트 이상이면 휴교를 하라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도 없이, '가급적' '자제' 등의 용어를 써서 휴교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학교장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시도교육청이 그 기준을 명확히 정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학교장들은 '가급적' '자제'라는 교과부 지침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다가 신종플루 환자가 크게 늘어나 학부모와 교사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뒤에야 학급별, 학년별, 전교생 휴교를 하였다. 

교과부 '휴교 자제' 지침은 책임회피용 말장난

초중등교육법 제64조에 보면 '관할청은 재해 등의 긴급한 사유로 정상수업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학교의 장에게 휴업을 명할 수 있다. 명령을 받은 학교의 장은 지체 없이 휴업을 하여야 한다. 관할청은 학교의 장이 명령에 불구하고 휴업을 하지 아니하거나 특별히 긴급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휴교처분을 할 수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요약하면 시도교육청은 관할 학교에 휴업을 명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47조를 보면 '학교의 장은 비상재해 기타 급박한 사정이 발생한 때에는 임시휴업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지체 없이 관할청에 이를 보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관할청은 학교에 휴업을 명령할 수 있지만, 명령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의 장은 스스로 판단하여 휴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단, 학교의 장은 휴업 시 그 사실을 지체 없이 교육청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을 볼 때, 교과부가 학교에 '가급적' 휴업을 '자제'하라고 명령할 권한은 없다. 시도교육청을 통해 휴업을 '하라'고 명령하든지, 아니면 학교의 휴업 결정을 '불허'하든지 할 일이지, '가급적' '자제' 등의 애매모호한 지침을 내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 교과부의 '가급적' '자제' 지침은 신종플루로 인한 휴업으로 사회적 파장이 발생하는 경우, 그 책임을 학교의 장에게 떠넘기겠다는 얕은 관료적 근성의 소산이다. 신종플루가 별로 확산되지 않을 때에는 "휴업을 '자제'하라고 한 것이 맞지 않느냐"고 자화자찬을 하고, 신종플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이 되는 때에는 "'가급적'이라는 말뜻도 모르는 무지한 학교장이 독단으로 휴업을 지체하여 문제가 커졌다"고 책임을 미룰 요량이다. 학교장에게 있는 휴업권을 '가급적' '자제' 운운하는 말장난을 통해 침해하면서 교과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근거까지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헌법 지키려는 경기교육감과 어기려는 교과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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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징계령 제6조를 보면, '교육기관·교육행정기관 또는 교육연구기관의 장이 징계의결의 요구 또는 신청을 할 때에는 징계사유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행한 후에 입증에 필요한 다음 각호의 관계 자료를 관할 징계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겸임기관의 장이 겸임공무원에 대하여 징계의결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본직기관의 장을 거쳐야 한다'면서 각호의 자료로 여러 가지 문서를 열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혐의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공문서 등 관계 증거자료 5.혐의 내용에 대한 조사기록 또는 수사기록 6.혐의 관련자에 대한 조치사항 및 그에 대한 증거자료'이다.

교과부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이 법령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혐의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공문서나 관계 증거자료, 조사기록, 수사기록' 등이 있으면 징계를 해야 하는데, 시국 선언 교사들은 검찰이 기소를 했거나 법원에서 1심 유죄 판결을 내렸으니 이미 혐의가 입증되었으므로 이들을 경기도 교육감이 즉각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범법이라는 논리다. 중앙정부 부처인 교과부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 제 27조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기 이전에는 당연히 모든 형사 피의자는 무죄로 인정받는다. 이는 헌법의 정신이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이는 법 위에 정치권력, 행정권력이 존재하는 무법천지의 독재국가가 된다.

교과부는 법을 지키기 바란다. 정치검찰, 정치판사, 정치교수 등의 오욕을 덮어쓰지 않으려면 교과부의 '영혼이 없는' 고위 공무원들은 당연히 모든 문제를 교육적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헌법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과부는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교육을 관장하려 하나.

"교육부가 없어져야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말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도 꾸준히 떠돈 까닭을 교과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태그:#김상곤, #교과부, #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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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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