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SBS의 긴급출동 SOS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작팀의 설명에 의하면 부모와 세 아이가 살고 있는 한 가정에 개 8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집의 아주머니가 길에서 개들을 주워 자꾸 집으로 데려와 개체수가 불어났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형적인 '애니멀 홀더(animal hoarder)'다. 애니멀 홀더란 한정된 공간에 적정 개체수를 넘어 동물을 두고 키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대개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 끊임없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방치, 학대로 이어지게 된다.
저녁 6시 현장에 도착하니 아이들과 주인아저씨만 집에 있었다. 개들이 있는 곳은 부엌 한 구석과 싱크대 밑 그리고 집 밖의 작은 간이 나무상자 안. 개들은 거의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공간에 묶여 있었고 악취가 진동했으며 짖음도 심했다. 장기간 묶여 있어 사람과의 친화력이 떨어져 사나워진 것이다. 게다가 한 개는 얼마 전 새끼를 낳은 상태. 이런 개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의 실랑이 끝에 개들을 잡아 케이지에 넣었다. 가까이에서 본 개들은 오랜 기간 목욕도 하지 않아 더럽고 오물이 온 발에 가득 묻어 있었으며 목욕과 미용 치료 사람과의 친화력을 높이는 행동교정이 모두 절실한 상태다.
동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개를 좋아하는 것은 그 집의 아주머니로 어딘가에서 개들을 주워와 기르다 보니 그 안에서 번식을 해 자꾸 늘어났고 최고 25마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한 주민이 나서서 그 중 대부분을 입양을 보냈는데 누군가 한꺼번에 십여 마리의 개들을 데려갔다고 하니 업자로 의심해볼 여지도 있었다. 이 세상에 십여 마리의 개들을 한꺼번에 데려다 키워줄 천사는 아무도 없다. 그는 개들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아주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많은 수의 개들을 관리하다 보니 개를 싫어한다는 아저씨와 아이들이 개들을 학대해 왔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은 주인아저씨가 개들을 많이 때렸다고 증언하고 있었으며 현장에서 개들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도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애니멀 홀딩(animal hoarding)의 문제점시초에는 길거리를 헤매는 동물에 대한 동정심에서 시작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애니멀 홀더들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 만한 개체 수 그 이상을 얻어온다. 한계점에 대한 개념이 없고 조절능력이 없으며 더욱 최악의 상황은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 끊임없이 개들이 번식해 불어난다는 것이다.
개들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의 한계점을 넘어서면 그는 동물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 음식과 물을 제때 공급하지 않거나 배설물을 제대로 키우지 않아 위생상태가 현저히 나빠진다. 점점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심리적으로 회피하고자 최악의 경우 동물을 학대하기도 한다.
22일 방문한 그 집 또한 애초에 개들을 학대할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많은 수의 개들을 관리하면 이웃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개들을 폭력적이고 위압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개들의 경우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개체수가 있게 되면 서열을 두고 서로 다투게 된다. 소유주는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개들을 격리하거나 묶어둘 수밖에 없으며 하루 종일 묶여 사람의 손길이 부족하고 활동량이 떨어지는 상태가 되면 개들은 사나워지게 된다. 개들이 사나워질수록 사람과의 친화력이 떨어져 공격성은 더욱 심화된다.
시작이 어떤 마음에서이건 애니멀 홀딩의 결말은 항상 동물학대이다. 서구에서는 이 애니멀 홀딩이 동물학대의 유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과 인식이 미비해 아직까지 반드시 저지해야 할 학대유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이웃의 눈에 띄게 되는 것은 대부분 악취나 소음으로 인한 민원으로부터 시작되어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방치 상태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현재 동물보호법 상 학대의 유형은 물리적인 폭력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지로 접하게 되는 학대는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는 장기간 방치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유형이 훨씬 많다. 또한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대하는 폭력보다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처음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욱 많다.
동물행동학자 템플 그랜딘에 의하면 동물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야생상태에서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본능이 잠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은 인간과 달리 같은 조건에서 더욱 학대적 상황에 직면하기 쉽고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 폭력 행위의 수위보다 그 폭력을 당하는 대상의 수동적 처지는 대상을 그 폭력적 상태에서 구조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아동과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폭력이 더욱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은 가해자들이 전적으로 그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 역시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긴급출동 SOS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상황에서 극단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약자 (노인, 아이, 장애인, 여성)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기획된 프로이다. 그런데 이 프로에서는 간간이 폭력적 상황에 직면한 동물들이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그 학대의 범위가 주로 가정이고 개인 소유물이란 이유로 무시되거나 가볍게 처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반려동물 역시 때리고 있으며("아내 때리는 남편은 개도 때린다." <오마이뉴스> 2005년 8월 19일자 기사) 연쇄살인범의 폭력적 행동이 동물학대로부터 시작된다( "동물학대와 범죄자들" (<daum view> 2007년 5월 23일자 기사)는 사실을 통해 동물학대와 약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이는 동물을 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동물은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바라보는 거울이다. 이런 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이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동물을 방치해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든 인간의 문제이다. 이것이 우리가 동물에게 주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덧붙이는 글 | 3남매와 가족, 그리고 개들의 사연은 SBS 긴급출동 SOS 11월 9일 방송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현재 8마리의 개들과 한 마리의 고양이는 동물자유연대의 사무실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치료와 입양에 도움을 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