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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인수봉에서 발원하여 신도, 삼송, 도내, 강매, 행주동을 거쳐 한강에 합류하는 준용하천이다.
▲ 창릉천 북한산 인수봉에서 발원하여 신도, 삼송, 도내, 강매, 행주동을 거쳐 한강에 합류하는 준용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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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겨울과 가을이 순식간에 교차하며 변덕스런 계절과 날씨를 보였습니다. 앞선 주말쯤부터는 갑자기 영하의 추위가 찾아오더니 새로운 주 중반부터는 다시 포근한 가을 날씨로 돌아왔습니다.

기온과 바람의 변화는 날씨와 계절을 질서 있게 바꾸고 창조합니다. 우리는 그 질서 속에서  바람과 햇빛, 물과 흙, 만물이 주는 우주의 기를 고스란히 공짜로 얻어먹고 마십니다. 그러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며 우주의 작은 어떤 것으로 존재해 갑니다.

주말인 7일 오전, 수도권 지하철 삼송역에 몇몇 사람들이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 속에는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있고, 오늘 비로소 처음 보는 얼굴도 있습니다. 서로가 약속된 시간에 만나 인사를 하고, 반가워하며, 오늘 함께 걸어갈 길에 대하여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단지 함께 길을 걷자고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언젠가 이미 만났던 사람들처럼, 돈독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좋아라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어딘가에 몰래 숨겨 놓았던 비상금을 깜박 잊고 있다가 무심결에 발견해 낸 것 같은 화들짝한 환희와 기쁨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돌다리를 건너고...
▲ 창릉천의 돌다리 돌다리를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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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의 돌다리를 건너는 모습
▲ 돌다리 창릉천의 돌다리를 건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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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올레'길을 개척하고 걷는 사람들이 두 번째로 모이고 만나 길을 걸었습니다. 지하철 삼송역부터, 행주내동까지 이어지는 창릉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택지지구(뉴타운)로 지정되어 굴착기와 육중한 덤프트럭이 맹활약 중인 파괴와 개발이 혼재한 어수선한 창릉천 주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북한산의 주봉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유량이 크게 줄어 낮고 초라하게 흐르고 있는 창릉천의 풍경은 좋아보였습니다. 하지만 하천 바닥에는 탐욕적 인간들에 의해 버려진 오염의 떼와 찌꺼기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은 모습이었습니다.

창릉천은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동 산 1번지인 북한산 인수봉에서 발원하여 사기막골을 지나 신도동, 삼송동, 도내동, 강매동을 지나 흘러 한강에 합류하는 준용하천 입니다. 창릉천은 고양시 관내지역만을 오롯이 흐르는 유일한 하천이라고 합니다. 인접해 있는 곳에 '서오릉'이 있는데, 서오릉의 다섯 개의 왕릉 중 조선의 제8대 임금이었던 예종과 그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가 잠든 창릉(昌陵)으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창릉천 양옆으로 고양삼송 택지지구 개발이 한창인데, 둑길에 덮인 시멘트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중이었다.
▲ 창릉천 둑길 창릉천 양옆으로 고양삼송 택지지구 개발이 한창인데, 둑길에 덮인 시멘트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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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 둑길을 걷다가 잠시 쉬며 창릉천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물 한 모금에 곁들여 나누었다.
▲ 길에서 쉬며 창릉천 둑길을 걷다가 잠시 쉬며 창릉천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물 한 모금에 곁들여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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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의 둑길을 걸으며 하천 모래밭에 펼쳐진 무성한 갈대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잔잔한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휩쓸리며 몸을 비벼대는 마른 갈대의 안무와 노래는 돈 들이지 않고 만끽할 수 있는 가을날 노천의 뮤지컬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복잡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는 이른바 '감성치료극' 이랄까요?

군데군데 물가에 노니는 물떼새, 왜가리와 백로, 검둥오리, 까치와 비둘기들도 만났습니다. 호기심과 반가움에 다가가려 하면 놀람과 경계심으로 날아가 버리는 새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과 우리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멀찍이서 소란 피우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다 지나쳐 가는 것이 그들의 삶에 방해를 주지 않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매동 석교는 축조년대가 과히 오래되지는 않으나, 조선조 전통적인 교량축조 방법의 맥을 잇고 있으며,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 1755년 영조 때 '해포교'라는 목교였다가 1920년대 석교로 신축)
▲ 강매동 석교 강매동 석교는 축조년대가 과히 오래되지는 않으나, 조선조 전통적인 교량축조 방법의 맥을 잇고 있으며,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 1755년 영조 때 '해포교'라는 목교였다가 1920년대 석교로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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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 강매 석교 앞에서
▲ <고양올레>걷기모임 회원들 창릉천 강매 석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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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마땅히 주제도 없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고양시의 환경과 생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고양시의 둘레를 연결하는 걷기 좋은 작은 길,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누리길'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커가고 있는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와 가족들, 우리의 문화유산과 역사에 관한 궁금증과 갈증에 대해서도 소탈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미 정해진 창릉천 둑길 구간만의 걷기가 혹시 지루할까, 하천가의 밭길로도 걸었습니다. 걷다가 길이 없으면 다시 방향을 돌리기도 했고요. 간혹 쉴 새 없이 자동차가 지나는 길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주저하기도 했으며,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배추와 무의 수확을 서두르는 농민들의 바빠진 손길도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복잡했던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나도 몰래 차분하게 정돈되어 가는 느낌을 갖게 되니 이상한 노릇입니다. 누군가 명쾌한 답을 주거나, 길가에 무슨 해답이 설명되어 있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걸으며 스스로를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함께 동행 하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할 수 있으니 걷기여행의 매력은  참 묘합니다.   

강매동에서 행주내동으로 이어지는 자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났다.
▲ 굴다리 아래를 지나며 강매동에서 행주내동으로 이어지는 자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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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고양올레'길을 개척하기 위한 두 번째 걷기여행을 하며 오늘도 생각지도 않게 덤으로 얻은 깨달음과 배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같은 동네 하늘아래 살고 있는 뭇사람들과의 아무런 거리낌 없는 반가운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은 과연 어떤 것인가? 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환경과 생태를 자연스럽게 알고 배우도록 지도하는 안내자는 누구인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세우도록 이끌어 준 동기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의 답은 길이 아닐까 합니다. 걷기여행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인 고양(高揚)의 길을 걸으며 지워진 길을 찾고, 흐트러진 길을 바르게 열고, 시민들과 함께 마음껏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 그물처럼 얽힌 경이로운 우주의 질서에 몸을 맡긴 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각자의 생명을 온전하게 하듯이, 해치지 않고 지혜롭게 공존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길 위를 걸으며 그 무엇보다 귀한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 간의 평화로운 소통이 따뜻하고 풍요롭게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길에서 느끼고 , 어울리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양에 무한 리필'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에 모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막걸리 한 잔으로 정을 나누었다.
▲ 원조국수와 막걸리 뒤풀이 '엄청난 양에 무한 리필'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에 모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막걸리 한 잔으로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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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는 않았지만, 우직한 걸음으로 겸손하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어 어느새 만인의 길, 평화의 길 앞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소박하고 친근한 시민들과, 이웃들과, 가족들과 동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보람이 아닐까' 하는 설렘과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양올레'를 걸어가는 뚜벅이 올레꾼들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소문으로 번지고, 아름답게 퍼져 시민들의 가슴에 다정한 친구의 소식처럼 전달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들과 함께 뚜벅뚜벅, 사뿐사뿐 걷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7일(토)에 두 번째 걷기모임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고양올레'는 고양시에 걷기 좋은 작은 길, 좋은 길을 개척하는 '고양올레' 카페를 cafe.daum.net/gyolleh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양올레, #고양올레길, #고양시, #걷기여행, #창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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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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