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라후프를 한 번 돌리기 시작하면 내가 내려놓지 않는 한 허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싫증이 나서 하기 싫어서 내려놓을 때라야 비로소 끝이 난다. 순전히 내 의지에 따라 훌라후프가 내려오든가 계속 내 허리에서 돌아가든가 한다. 그런 나를 남편은 아주 신기해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훌라후프를 할 줄 알지만 훌라후프를 힘들게 배웠던 기억은 없다.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남편이 처음 훌라후프를 해 본 것은 까마득히 오래 전이다. 처음으로 훌라후프를 해 본 것은 20대 초반이라 했다. 정확히 몇 살 때부터였는지는 남편 자신도 잘 기억 못하지만 어쨌든 20대 초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집 근처에 있던 산 중턱에 약수터가 있어 물 뜨러 갈 때마다 한 번씩은 꼭 훌라후프를 돌려보았다던 남편이지만 단 한번도 허리에서 훌라후프가 돌아갔던 적은 없었다.
돌리자마자 몸에서 곧바로 떨어져버리는 훌라후프를 남편은 약수터에 갈 때마다 시도하고 또 시도해 보았으나 그대로였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만 되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도 매일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약수터에 가는 날, 그때만 한두 번쯤 시도해 본 거였으니 될 리가 만무했으리라. 어떤 산을 가든지 체육시설이 있는 곳, 훌라후프가 있으면 어김없이 한번쯤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남편이었던 남편이 드디어 훌라후프를 완전정복하게 되었다. 어떻게?!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사십여년이 넘도록 자전거를 탈줄 몰랐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했고, 남편을 앞세워 연습하던 그 첫날, 10분만에 자전거 바퀴를 굴려갔고 2시간만에 완전 정복한 것을 본 남편은 많이 놀랐던가보다. 거기서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힘든 것 없이 간단히 배웠던 훌라후프라 남편이 그것 가지고 심각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남편에겐 제법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나의 자전거타기 도전과 성공(?)을 보면서 남편은 '뒤늦게 배운 자전거를 하루만에 타는데' 싶어서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남편은 달력에다가 날짜를 적어가면서 어떻게 성과가 나타나는지 메모하면서 매일 하루에 몇 분씩 꾸준히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봐도 '저렇게 해서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몸과 훌라후프는 따로 놀았다. 뻣뻣한 몸에 훌라후프는 몸에 감기지 않고 돌리자마자 떨어졌다. 하도 안 되니까 인터넷 검색 창에 훌라후프 배우는 방법을 검색도 해보았지만 원하는 답은 보이지 않아 답답해 했다. 결국 나한테까지 훌라후프 돌리기의 원리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딱히 원리라는 게 있나요? 그냥 하다 보면 저절로 습득되는 거예요.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 했더니 난감해 했다. 다 배워놓고 나서야 나중에 한 말이지만 연습해도 늘지 않는 훌라후프 실력에 절망스럽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매일 아침마다 연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매일 아침이면 역기, 윗몸일으키기 등 헬스기구로 운동을 하는데 훌라후프 돌리기가 첨가된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훌라후프 실력은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 10월 1일(목)부터 시작해서 하루 5분 정도 연습했다. 하면서도 남편은 벽을 느꼈다. 하지만, 안 되어서 막막해도, 확신이 서지 않아도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훌라후프 돌리기를 쉬지 않았다.
'할~수 있~다~해보~자 해~보~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없으리라~'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바람에 아침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10일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운동할 땐 내가 옆에서 안 봐주면 재미가 없다고 꼭 관람하도록 하는 남편이다. 그날 아침도 남편이 훌라후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다른 날과 달랐다.
훌라후프를 돌리는데 몸에서 서너 바퀴 돌다가 떨어졌다. '와우~대단하네요! 이젠 됐네요 " 하면서 박수를 쳐 주었다. 남편은 '이제 좀 느낌이 왔다'고 했다. '할 수 있다~해 보자~'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전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벽을 느껴도 매일 아침마다 연습하더니 드디어 희망이 보였다. 그때부터는 좀더 용기를 가지고 연습했다.
21일째 되던 날 아침엔 네 바퀴 이상 돌았다. 처음으로 몸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젠 제법 여유 있게 훌라후프를 돌렸고 보기에도 안정되어 보였다. 몸놀림도 아주 유연해져 있었다. 23일째, 훌라후프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려놓고 싶을 때서야 비로소 훌라후프도 몸에서 떨어졌다. 남편은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것 같았다.
몸에서 안 떨어지고 돌고 있지만 왜 훌라후프가 안 떨어지는지 알 수 없어 했다. 26일째 되던 날, 남편은 이제 반대방향도 연습에 들어갔다. 처음엔 몇 번 떨어지더니 30일째 되던 날, 이젠 오른쪽 왼쪽 양쪽 다 돌려도 안 내려갔다. 이젠 매일 아침에 훌라후프를 돌리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줄 안다. 남편은 지금도 매일 아침 훌라후프를 돌린다.
아주 유연한 몸짓으로 돌린다. 훌라후프를 할 줄 알게 된 남편은 무엇이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단다. "여보! 이제 우리 둘이서 또 뭘 배울까?!"하고 물었다. 일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해보고 함께 배우자고 한다. 훌라후프를 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배우지 못한 것은 어쩌다가 한번, 아주 가끔씩 해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일정하게 연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뭔가를 배우면 옆에 사람도 도전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마치 큰 도를 깨우친 듯 말했다. 처음엔 아주 가벼운 훌라후프로 연습했던 남편, 최종적으로 가까운 산을 등산하면서 크고 묵직한 훌라후프로 실력을 점검했다.
이젠 훌라후프 돌리기도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제자리걸음 20여 년, 한 달가량 매일 조금씩 연습한 결과로 훌라후프 돌리기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나로 인해 '날마다 천국'이라는 남편,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훌라후프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