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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여, 내 말 들어보게
언젠가 우리는 이 값비싼 생활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을 거라네. 암, 틀림없이 그럴 거야."

소 알로이시오 신부(본명은 알로이시오 슈월쓰이며, '소蘇'는 그의 한국 성이다.)가 1958년 한국에 부임해 들어와 부산교구 신부로 재직하다 급성간염에 걸려 미국에 돌아간 뒤, 어느 신부에게 들은 소 신부의 말이다. 하느님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서 천국을 보았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과 살았고, 가장 가난한 시대의 한국에서 가난으로 세상을 헤매는 아이들과 부랑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헐벗고 굶주린 한국에 부임해 온 그처럼,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풍요롭게 사는 이 나라의 신부가 지금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갔다면 1960년대 초 그와 똑같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미국(한국)에는 개들도 피할 집이 있고 병을 치료할 병원이 있었지만, 한국(아프리카 이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일까?"

으리으리한 교회당을 소유하고 대형차 뒤에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는 성직자도 있지만, 평생을 소 알로이시오 신부처럼 사는 이들도 있다. 가장 가난한 자들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 평생을 그들과 함께 하며 살았던 이의 전기(傳記)는 그래서 읽을수록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고, 고개가 숙연해진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은 단순히 소 신부의 생애를 적고만 있지 않다. 부산을 중심으로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의, 사람들의 참혹한 삶을 수많은 흑백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마리아 수녀회'와 병든 이를 돌보는 '구호병원' 설립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단순히 가난과 병마로부터 아이들과 병약자를 구한 것이 아니라 구호를 빙자해 아이들을 착취한 구호소와 단체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구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손수건 사업으로 모금을 하게 된 사연 등 모금방법에 대해서도  세세하고도 담담하게 기록한다.

말하자면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이 책은 작게는 그가 설립한 자선단체와 학교 병원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후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 구호활동의 한 역사를 요약한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가난한 생활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생활환경은 사람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난하게 살다 보면 가난하게 생각할 수 있고, 가난하게 느낄 수 있고, 가난한 이들과 같은 파장 속에 머물 수 있다."

이 말처럼 부산 송도 성당의 똥냄새와 죽은 동물의 썩은 냄새가 나는 판잣집에서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4년 9개월을 살았다. 그는 수많은 후원금을 모금해 학교와 병원 구호소를 세웠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했으며 검소한 식생활을 유지했다. 그는 30여년 동안 한국에서 수많은 일을 하다 1992년 필리핀에서 선종(善終)했으며, 그가 세운 마리아 수녀회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그리고 브라질에서 의료시설과 정규교육 기관을 갖춘 소년/소녀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 자신 가난하게 살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가 되었던 소 알로이시오. 한국 사회가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면, OECD 국가 중 국민총소득 대비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외 원조 수준에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물질만능과 무한경쟁에서 '다른  사람은 짓밟아도 좋다'는 식으로 승자독식의 본능적 삶만 추구하는 우리들은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던져 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주: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83년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고, 1984년과 1992년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덧붙이는 글 |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소 알로이시오 지음/박우택 옮김 책낸 곳-책으로 여는 세상 값 10,000원



#소 알로이시오#구호병원#마리아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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