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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경기도 화성으로 매일 출장을 나가게 된 남편은 파김치처럼 피로에 절어 집에 온다. 그래도 아이가 잠들기 전에 잠시라도 놀아주기 위하여 신호도 대충 무시하면서 차를 달렸다던 남편은, 어느새 잠들어버린 아이를 깨우지도 못하고 손만 만지작거리며 아쉬워했다. 고단한 몸을 누이며 그는 작게 한숨을 쉰다.

 

"나는 왜 늘 일에 치여서 사는 걸까."

 

40대 대부분 가장들처럼 밥벌이를 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유예하고 상사의 지시를 따라, 중간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이리저리 떠밀리는 것이 직장생활 15년차쯤 되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다.

 

오늘도 남편은 멀리 경기도로 출근하기 위해 우리가 아직 잠든 아침 6시경에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느지막히 일어나 출근하던 나는 문득 그가 애처롭다. 그리고 그가 벌어오는 돈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응원하는 문자도 하나 보냈다.

 

그런 내가 오늘 하루 4대강을 위해 11만 원을 썼다. 남편의 계좌에서 돈을 찾아서 11만 원을 썼기에 그의 노동의 결과로 얻은 이 돈을 내가 왜 4대강에 쓰는가 생각한다. 1만 원은 4대강 사업을 막는 국민 소송인단에 참여하기 위해 냈고, 10만 원은 환경연합에서 진행하는 4대강 사업반대 라디오 광고비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우스운 일이다. 남편이 노동을 해서 내는 근로소득세의 일부도 4대강 사업에 들어갔을 터이니, 그는 4대강 '살리기'라고 불려지는 (실체인 '죽이기'를 가리기 위한 얼마나 가증스런 명명인가!) 토목사업을 위해서도 세금을 내는 셈이고, 한편 그 사업을 막기 위한 성금도 내는 셈이니 서글픈 현실이 아니랄 수 없다.

 

어제부터 4대강 사업이 착수되었다고 한다. 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였고 일을 했지만, 세상이 좀 떠들썩해주기를, 누군가 강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포클레인 아래 가서 몸을 누이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물론 정치권을 비롯하여 시민단체들이 4대강 사업을 비난하는 기자회견도 하고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삽질은 시작되었다.

 

누군가 돈키호테처럼 용감한 사람이 나타나서 (무모할지라도) 4대강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면, 나는 11만 원이 아닌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다. 어차피 파헤쳐지고 가둬지고 콘크리트로 발라진 강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기에, 강의 죽음은 그 안에 깃든 생명들뿐 아니라 농민들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모두에게 겨누는 죽음의 칼이기에, 소수를 위한 알량한 개발이익에, 반짝 살아나는 건설경기 부양에 강을 함부로 내줄 수 없는 것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변 풍경과 석양에 유난히 반짝거리던 강가, 구비구비 흐르는 강가를 따라 걷던 추억은 오롯이 내 안에 살아 있다. 자라나는 내 아이는 어디서 이런 아름다움을 누릴 것인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낙엽들이 뒤척이는 11월, 강가의 생명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태그:#4대강 , #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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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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