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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청사 앞에서 수능거부 일인시위 나선 학생들.
ⓒ 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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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수능거부 일인시위를 하는 학생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강산, 김찬욱, 박두헌, 이민안 학생.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수능거부 일인시위를 하는 학생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강산, 김찬욱, 박두헌, 이민안 학생. ⓒ 김대홍

오늘은 2009년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시행된 날이야. 시험을 봤을 고3들에겐,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12년간 공부해 온 모든 게 평가되어 점수화되는, 원하는 대학에 가느냐 못 가느냐 판이 갈리는, 19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일 거야.

하지만 고3들이 한창 시험을 보고 있었을 시간,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능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외치며 릴레이로 수능거부 1인시위를 한 학생들이 있어. 이들 역시 원래는 수능시험장에 있어야 할 대한민국 고3들이지.

오늘 릴레이 1인시위를 한 산청 간디학교 3학년 박두헌, 김강산, 김찬욱, 이민안군은 "우리 청소년들은 학벌과 학력이 중시되는 사회 안에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과 과열된 입시경쟁, 반인권적인 살인교육 속에 12년을 산다"며 공교육 실태를 비난했어.

이들은 또 "수능은 이런 문제들의 시발점이자 결정체이기에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하며, 대안이 될 수 있는 대학평준화를 통해 청소년들이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지.

김강산군과 이민안군이 각각 정부청사 정문과 후문에서 1인시위를 하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어.  

- 수능거부 1인시위, 어떻게 하게 된 거야?
박두헌 : "2학년 때, 대학고민을 하면서 처음에는 체육교육 쪽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생각했었는데, 영 마음이 안 내키더라고. 그러는 동안 대학 입시, 수능에 대해, 진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지, 한번 더. 그러면서 입시제도의 잘못된 점들을 느끼게 됐고,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를 많이 접하게 됐어. 그래서 대학에 안 가기로 결정했지. (대학을 안 가겠다는 마음은 대학의 필요성이 나에게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 그러곤 '대학 안 가고 수능 안 보는데, 수능날 1인시위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김찬욱 :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를 느끼긴 하지만, 난 사람을 점수 가지고 잘라 내는 수능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어. 사람은 꿈도 관심사도 다 다른데 모든 이에게 같은 것을 강요하고 그걸로 평가를 하는 거니까. 시험점수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 그건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원으로서 사는 거라고 생각해.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두헌이가 같이 하자 했지."

- 네가 생각하는 공교육의 문제는 뭔데?
박두헌 : "이건 오늘 들고 온 피켓에 잘 정리해 뒀어. 대학에 가지 않거나,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차별 받고 무시 받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해. 이 때문에 매년 학생 200여 명이 자신들의 성적을 탓하며 자살을 한다고 해. 다른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 사는 청소년들에겐 꿈꿀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또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수능을 거부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 1인시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건 없었어?
박두헌 :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많았는데, 찬욱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괜찮았어. 가장 어려웠던 건 피켓 만드는 거. 어제 새벽 3시까지 만들었어. 그런데 이런저런 노력들에 대비해서 충분히 값어치 있는 날이었다고 생각해."

김찬욱 : "음, 4명이 같은 걸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다 다르니까. 의견을 모으면서 좀 빙빙 돌았던 것 같고, 주변의 시선들이 좀... 나는 대학 가는데, 그래서 '수시로 붙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는 말들이 조금 신경 쓰였어. (그럴 바엔 그냥 수시 안 넣을 걸.) 말로는 신경 안 쓴다고는 하지만 다 친구들이니까..."

- 오늘 1인시위 하면서 생각하거나 느낀 게 있다면?
박두헌 : "아직 혼자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고 특히 정부청사 앞이라 많이 긴장했어. 아무튼 좋은 경험을 많이 해봤던 것 같아, 고3 때 수능 거부를 한다는 건 지금까지나 앞으로나 없을 테니까. 또 준비하면서 학교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다들 입시 제도에 대해선 반대를 하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 들어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아 그리고, 대학평준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대학평준화가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 하는지, 또 그러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김찬욱 : "겨울은 역시 상상 이상으로 엄청 춥고, 역시 경찰은 겁이 많고(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기자회견 한다니까 전경 쫙 깔렸었잖아. 우리 1인시위 하는데도 막 빨리 끝내라고 하고), 그리고... 배고파..."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됐던 이들의 수능거부 릴레이 1인시위는 2시 즈음 마무리됐어. 박두헌군은 오전 11시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주최 기자회견에 학생대표로 참가해 발언을 하기도 했지. 오늘 1인시위는 정부청사 앞에 계셨던 경찰 분들과 관계자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별 탈 없이 끝났어, 후훗.

지금 기사를 쓰고 있는 나 역시 오늘의 주인공, 대한민국 고3이야. 수능대박 초콜릿도 받았고, 콕콕 잘 찍으라는 응원 문자도 받았지. 하지만 나는 수능시험을 치는 대신, 거센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이들과 함께 했어. 왜냐고? 난 대한민국의 고3 이니까, 이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관심을 갖고 행동해야 변화할 테니까 말야~.

덧붙이는 글 | 이날 영상취재한 영상을 올릴 예정입니다. 영상 안에는 이 기사에 실지 못한 이민안군과 김강산군의 인터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능#수능거부#일인시위#대학평준화#간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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