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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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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큰 애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헉!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들의 체온을 재며 다른 어머니들에게서 들은 증상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갑자기 열이 오르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더라. 마른기침이 나고 온몸이 구석구석 쑤신다더라.

아이에게 머리가 어떤 식으로 아프냐고 묻지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리 없다. 열이 오르진 않았지만 이튿날 아침 학교를 빠지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증상을 살펴보건대 단순한 두통인 듯하나 미심쩍은 상태에서 학교에 그냥 보내면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지각없는 어머니가 되기 십상이다. 의심스러울 때 설령 병원을 안 가더라도 학교는 가면 안 된다.

요즘 아이 어머니들은 만났다 하면 신종플루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근처 학교가 휴교를 하면 왜 우리 학교는 휴교를 안 하느냐며 따지고, 학교 안 나온 아이가 있으면 언제부터냐, 친한 친구는 누구냐 등을 캐묻는다. 신종플루 유행이 시작되던 초반엔 주기적으로 교실 소독하고, 아이들에게 손 닦기 열심히 지도하는 등 학교가 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나름 긍정적인 면도 있구나, 했다.

그런데 반에서 한두 명씩 결석하는 아이들이 생기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확산되고 급기야 학교가 휴교를 결정하는 지경에 이르자 분위기가 완전 살벌해졌다. 무덤덤하던 어머니들까지 들려오는 이야기에 차츰 민감해져 갔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 수, 매일같이 떠드는 감염자 증가세와 백신 접종 등 각종 관련 소식, 연예인들의 잇따른 감염 뉴스,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한 탤런트 아들의 죽음. 이렇게나 시끄러운데 어찌 겁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이런 심리적인 공포가 단순히 건강을 염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 달 전 쯤, 아들의 학급 친구가 일주일 동안 학교를 안 나왔을 때,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했다. 신종플루가 맞다더라, 아니다더라, 동생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집 밖을 못 나오고 있다더라. 아이들은 또 자기들끼리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떠들어댔다.

결국 어느 학부모가 사실 확인에 들어간 결과, 그 아이가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사실이란다. 그런데 그 아이 어머니 말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해서 입 꼭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쉬쉬하라는 건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려 다른 부모들도 자기 아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으면서도, 학교 측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확진 받은 아이가 무슨 몹쓸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기피 대상이 되는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괴담 떠돌고 벽 쌓는 교실... 마음 치료는 어떻게

학교 현관에서 학부모들이 지키고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체온을 재고, 기침 조금만 해도, 열이 약간만 있어도 곧장 부모에게 연락이 가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선 신종플루가 옛날 옛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호환·마마나 다름 없을 듯하다. 신종플루 괴담이 떠돌고, 확진 판정받은 아이가 왕따 아닌 왕따가 되는 분위기 속에 교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쌓이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신종플루를 앓았던 어떤 여자 아이는 약을 먹고 다 나아서 학교에 나왔는데, 친구들에게 자기는 신종플루에 걸린 게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을 하더란다. 신종플루 사태가 개인위생이나 전염병 관련 교육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인성교육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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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얼마 전에도 아이 두 명의 증상이 심상치 않아 부모에게 연락해 병원 가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하며 누구나 걸릴 수 있으니 조심은 하되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생님은 당부했다. 일부러 다른 아이에게 옮기려 할 리 없는데도 아이들 문제다 보니 일부 어머니들은 많이 예민하신 것 같다는 말씀도 있었다. 불안감이 불신으로 이어지는 모양인데, 학교에서 단체 백신 접종이 완결되면 이런 상황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전까진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서 비싼 돈 주고 검사받아야 하는 일이 반복될 것 같다. 만약을 대비해 학교에선 병원에서 확실한 음성판정을 받아오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아들의 신종플루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통보를 받고서도 안도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검사를 받아야 할까, 하는 걱정 말이다.

가을 운동회와 각종 체험학습들이 모조리 취소되고, 재량휴일과 예기치 않은 휴업 덕에 아이들에겐 자유시간이 많아졌지만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해야 하므로 오늘도 아이들은 집안에서 엄마와 지지고 볶는다. 아이들은 답답하고 지겹다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예방주사를 맞기 전까진 최대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 않나.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만큼이나 낯설고 멀어진 사람들. 기침 한 번을 해도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염두에 두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학교 친구들. 예년보다 더욱 쓸쓸한 느낌이 드는 가을.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건 백신도 없고, 좀처럼 면역도 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그:#신종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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