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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일제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2일. 대학 진학이 꿈이기는 수험생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이민정(26.천안시 성정동)씨는 그날 고사장에 있지 않았다. 수험생들이 떨리는 마음으로 답안지에 정답을 기재하는 동안 민정씨는 집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학 입학 이후를 그려봤다.

여유는 10월 말 쯤 찾아왔다. 올해 나사렛대학교(천안시 쌍용동)의 인간재활학과 수시모집 전형에 응시한 민정씨에게 대학은 지난 10월 28일 합격 통지서를 보내왔다. 중학교 3학년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 아래 상하반신이 모두 마비, 제도권 교육에서 10여년 동안 떠나 있어야 했던 민정씨가 비로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교통사고로 포기한 헤어 디자이너의 꿈

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으로 대학 입학에 성공한 이민정씨.
 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으로 대학 입학에 성공한 이민정씨.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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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민정씨의 장래 희망은 오랫동안 헤어 디자이너였다. 머리 다듬는 것을 좋아해 틈날 때마다 친구들 머리를 손질해주곤 했다. '잘 한다'는 이야기도 곧잘 들었다.

하지만 1999년 사고 이후 민정씨는 헤어 디자이너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해 발생한 빗길 교통사고로 민정씨는 상하반신이 모두 마비된 지체1급의 중증 장애인이 됐다. 사고 직후 수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현재도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지만 목과 손목을 조금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체의 다른 부위를 마음대로 가눌 수 없다.

또래들과 어울려 하고 싶은 것이 한창 많은 나이의 중학교 3학년 여중생에게 찾아온 불의의 교통사고는 많은 것을 바꾸어 버렸다. 우선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원망과 한숨 속에 2~3년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 무렵, 이렇게 살아서는 폐인이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다. 어머니를 통해 교사로 정년퇴직한 분들이 복지관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복지관을 오가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고만 없었으면 무난히 졸업했을 중학교 과정을 21세때 검정고시 합격으로 마쳤다.

천안으로 이사한 2006년 9월부터는 야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장애인교육기관을 물색하다가 천안에 소재한 충남 유일의 성인장애인 교육시설인 한빛장애인야간학교를 알게 됐다. 월.수.금, 매주 3일은 저녁시간이면 어김없이 야학에 나가 수업을 들었다. 장애 때문에 노트 필기를 할 수 없는 탓에 낮 동안 복습과 예습을 반복했다. 수학은 어려웠지만 영어와 국사는 무척 재밌었다.

고입검정고시에 2007년 첫 도전했다. 한 차례 실패의 아픔을 겪고 재도전, 이듬해인 2008년 8월 당당히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동권 보장돼야 공부도 계속해"

고입 검정고시 합격 뒤에는 인터넷 교육방송 등을 활용해 집에서 혼자 공부를 이어갔다. 야학에서 알게 된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공부법을 알려주고 가끔 전화로 조언을 해 주는 등 격려를 잊지 않았다.

2008년 8월 대학 입학의 문을 두드렸다.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수시모집 전형에 응시해 면접까지 마쳤지만 합격의 기쁨은 맛 보지 못했다. 올해 다시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원서를 접수했다. 지난달 10일 면접에서 면접관은 "왜, 대학에 다니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민정씨는 "혼자만의 공부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넓은 곳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얼핏 합격을 예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예감은 현실로 실현됐다. 장애로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민정씨는 일찌감치 자신의 진학 진로를 사회복지쪽으로 정했다.

"장애인이 된 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해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목표이죠. 장애인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로 저와 같은 당사자인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민정씨가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은 대학 진학 뿐만이 아니다. 야학에서 다른 장애인단체들도 소개받으며 사람들과 교류 폭이 넓어졌다. 움직임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예전에는 외출도 꺼린 채 집에만 있었지만 공부를 시작한 뒤 부터는 친구들도 새로 사귀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빛장애인야학이 배출한 첫 대학생이 된 민정씨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공부의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과제로 부족한 성인장애인 교육시설 확충과 이동지원편의 제공을 꼽았다.

"저만 해도 이동지원서비스가 없었으면 공부를 포기했을 겁니다. 생계활동이 있는데, 가족들이 저만 돌볼 수는 없죠. 자원봉사자들과 이동봉사차량이 집과 야학을 오갈 수 있게 도와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권은 장애인들에게 생명과 같은 기본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5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대학진학,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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