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야학생들의 발표회를 앞두고 티셔츠들을 만들었다. 마음에 소망하는 좋은 생각들이 붓으로 표현되어 색색이 면 티에 배어들었다. 내가 만약 중풍맞아 왼팔로만 살아간다면 이렇게 아기 자기 멋진 티를 만들 수가 있을까?
미소, 여유, 사랑, 멋진인생 등 등 다양한 문구를 학생들이 썼지만 재료비 지출상 그 모두를 티로 만들지는 못했다. 다수결로 해서 두 개의 작품만 티로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미소였다. 미소를 쓴 분은 아직 30대인대도 잠결에 몸이 마비되어 간신히 왼 팔로 글씨를 쓴다. 그래도 눈동자는 사슴처럼 맑고 항상 잘 웃다보니 벌써 눈꼬리에 부채같은 주름이 잡혀 가만히 있어도 절로 미소짓는 얼굴이다.
그 분이 쓰고 싶어하는 미소에 대한 글 내용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붓 잡은 지 1년도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큼 몸이 말을 안 들어 필력이 늘지 않았기에 쓸 수 있는 만큼만 문구를 정리해서 쓰기로 했다.
"나의 작은 미소로 누군가가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습니다."
이것으로 줄였는데 이 내용도 더 줄였다.
그리고 다른 분은 여유라는 내용을 가지고 쓰셨다. 그 분 또한 두 아이의 엄마인데 말을 하지 못하면서도 오른 팔, 오른 얼굴, 오른 다리 등이 아기때부터 마비되었다. 당연히 공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현재 야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차근 차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왼 팔만으로도 모시저고리를 손질하고, 못 만드는 음식이 없다. 한글을 잘 모르고 입근육을 못 움직이기에 나하고는 구화도 필담도 안된다.
그래도 그녀와 나는 오랫동안 잘 통했다. 왼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간단한 수화와 눈빛만으로 우리는 일상에 필요한 대화는 다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만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남편은 훌륭한 차량운전자이다. 택시, 봉고, 버스 등 모든 영업용차량은 다 운전이 가능하다.
그녀의 남편은 수화를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녀는 글도 모르고 구화도 모른 상태에서 두 사람은 눈빛으로 소통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두 아이를 낳고 그녀의 남편은 나보다 그녀와 소통을 더욱 잘한다. 그녀의 남편은 차량에 대한 훌륭한 운전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훌륭한 운전자기이기도 한 것 같다.
핸드폰을 가지고도 두 사람이 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핸폰은 보통 언어전달과 문자메시지 기능을 하지만 두 사람이 이것들이 다 안 된다.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 필요하면 그녀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그녀의 남편은 이것 저것 그녀의 필요한 사항들을 먼저 말하면 그녀가 비슷한 사항들에 대해 반응되는 "어...어!" 라든가 "우...아...어!" 등의 소리로 확인하면서 그녀를 당장 데리러 오든가 아니면 한 시간 후에 데리러 오든가 한다.
이 두 사람을 보면 마치 인디언들의 자연과 가까운 지혜로운 삶들이 생각난다. 살아가는데 때로는 많은 말들이 필요 없는 것 같고 우리들은 너무 많은 말들의 홍수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대화가 부족하다고 서로 대화의 기술이나 갈등관리 기술 같은 것을 배워야만 가정생활과 조직생활을 이롭게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 요즘이다.
여유라는 글귀를 쓴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성서의 글을 이야기 했다. 여기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옛날에 자기는 외롭다거나 아니면 정말로 마음이 춥고 슬프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 비움'인 '여유'를 뜻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묵향과 예술을 하면 마음이 여유가 생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며 그러한 '마음의 가난함'에서 오는 '여유로움'은 법정스님의 '텅 빈 충만' 과 상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아이들이 여행을 떠난 휴일이다. 종일 고즈넉한 침묵 속에서 이 침묵을 깬 것은 친구의 문자메시지이다. 싱글로 벌써 20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주말이면 그녀와 자주 밥을 먹었는데 다리를 다쳐서 한동안 가지 못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네! 눈도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일어날 수가 없어! 이럴 때 누군가 밥을 좀 차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과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만도 고마운 거겠지. 분명히 몇 시간 후면 배고픔에 내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 강아지들 밥도 주게 될 테니 말야!"
그러한 그녀의 문자메시지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눈오고 추워지면 온 전신의 뼈다구가 쑤셔대는 것은 그녀와 내가 똑같기 떄문이다. 그녀는 틀림없이 나도 자기처럼 그렇게 이불 속에 누워서 제대로 못 챙겨먹는 줄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동병상련으로 작은 위안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그렇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덜 춥고 힘이 되는 것이다. 작은 민들레 홀씨같은 그런 미소를 나누고 사는 이웃과 스스로 마음이 가난해지는 여유를 가지거나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는 그런 여러 이웃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