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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에 발생한 9.11 현장인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2006년 여름에 찍었다.
 지난 2001년에 발생한 9.11 현장인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2006년 여름에 찍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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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치고 있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교재인 <LifePrints2 (New Readers Press)>에는 한국에서 온 이씨네 가족이 나온다. 남편의 이름은 준이고 아내는 킴이다. 이들에게는 한이라는 아들과 미국에서 태어난 모니카라는 딸이 있다.

교재 1과인 <직업 구하기>에는 무직인 남편 준이 날마다 신문 구직난을 들여다 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 킴은 피자 가게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내보지만 영어도 미숙하고 경험도 부족하여 퇴짜를 맞는다.

하지만 2과에 들어가면 무직자였던 준이 취업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시코스트 인더스트리'에 기계공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가 버는 돈은 한 달에 $2082.65. 집세를 비롯해 기타 생활비로 나가는 돈은 $1874이다.

생활비의 내역은 전기, 전화비, 버스비, 식비, 의료비와 기타가 전부다. 물론 사교육비는 전혀 없다. 이들 부부가 쓰고 남은 돈으로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고작 $208.65.

이 책이 발행된 해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2년이다. 그러니까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단원인 11과에 나오는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기>다. 

킴과 준은 한국을 떠난 지 겨우 2년 밖에 안 됐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 시민이 되려면 아직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들에게는 3년이 긴 시간이지만 기다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킴과 준은 아직도 미국이 낯설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녀들을 키우는 데는 미국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씨네 가족은 이미 영어도 많이 배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수업을 들었고 계속해서 시민권 강좌도 들을 예정이다. 

이 단원에서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킴은 미국 시민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다. 그녀는 미국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때로 미국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멍청하게 느꼈던 적도 있다. 하긴 그래서 배우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미국에서 자라게 되어 행복하다. 가족들에게 최선의 것을 다해 주고 싶은 그녀로서는 미국이 자기 가족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확신한다.  

킴은 한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매주 편지를 쓴다. 여동생 수 역시 미국으로 오려는 생각이 있다. 킴은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고, 더 나은 일자리도 가질 수 있다고. 또, 여성이 사장이 되는 일도 종종 있다고.  

수는 언니의 말을 들으며 미국 생활이 멋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킴은 자신의 여동생이 곧 미국으로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뉴욕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뉴욕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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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이씨네 가족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미국을 지목했다는 대목에서 이를 가르쳐야 하는 나, 한국인은 좀 당황스럽다. 이른바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익숙한 한국 이름 반기문 UN 사무총장 이름도 종종 이곳 미국 뉴스에 나오고, 국제적인 위상도 웬만큼 높다고 하는 한국에서 말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중에는 사담 후세인을 경험한 이라크 출신도, 구 소련 체제를 경험한 러시아 출신도, 아직도 내란을 겪고 있는 남미 출신도, 가난한 아프리카 출신도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냥 미국에 남겠다고 한다. 완전 귀국은 싫고 그저 한두 번 방문하는 정도만 하고 싶다고.

미국에 산 지 5년, 또는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아직도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언어소통에 지장이 있고 모국에서의 교육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아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자기 나라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대학교수까지 했지만 이곳에서 야간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이 자기 나라보다 풍족해서, 또한 자녀 교육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나라처럼 정치적인 탄압이나 내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물질이 궁핍하지도 않은 대한민국에서 '미국 시민'이 되기를 작정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 이국 땅 미국에 뿌리내리기로 작정한 데에는 일견 수긍이 가는 면도 없잖아 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 언제 가봐도 경계가 삼엄하다.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 언제 가봐도 경계가 삼엄하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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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딸이 견뎌야 할 상처가 너무 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 가운데 이른바 국내 명문대 교수였던 A씨가 있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누구나 선호하는 명문대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 근무하다가 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직업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유는 자신의 장애인 딸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겪어야 할 상처와 차별을 그 부모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사실 미국에 대해 이러저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미국을 칭찬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 관심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시각 장애인(앞이 거의 안 보이는) 자녀를 둔 어느 부부의 얘기를 들었다. 사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 부부의 장애인 아들은 그냥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물론 학교와 학생, 교사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하지만 상급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교실을 이동해야 하고 특별 활동 등에서 문제가 있게 되자 일반 학생들과의 수업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학교 측에서는 그 장애인 학생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수 학교로 전학을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특수 학교는 집에서 네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에 있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배려로 학교 기숙사에 묵게 되었고 정기적으로 자신의 집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동적인 것은 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 부모를 위해 학교 측에서는 학생이 가정을 방문할 때 마다 네 시간 이상을 달려 학생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장애인의 문제도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에도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실상이 잘 나와 있다.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던 장 교수가 경제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아야 했던가.

건물도, 도로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장애인을 무슨 걸인 취급하거나 못 볼 것인양 외면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이 많은 나라, 화려한 경제 뒷면에 감춰진 우리나라의 야만적인 모습이다.  

키 작고 뚱뚱한 사람은 '루저' 취급하니까

자고 나면 새로운 신조어가 많이 등장하는 우리나라다. 그래서 우리말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종종 불평을 한다. 그렇잖아도 배우기 어려운 한국어가 바로 이 신조어 때문에 더 어렵다고. 하긴 토종 한국인인 나도 인터넷에 올라온 최근 뉴스를 읽고 있노라면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요 며칠 사이 인터넷에 집중적으로 뜬 단어인 '미수다. 홍대녀. 루저'의 경우도 그랬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여 검색을 해보니 내용은 단순했다. 어느 여대생이 <미녀들의 수다>라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남성의 키는 경쟁력. 키 180cm 미만인 남자는 루저"라는 말을 했고, 이에 누리꾼들이 발끈하여 그녀의 신상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등 융단폭격식으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그런 부적절한 발언을 편집하지 않고 내보낸 방송국 측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판단에 반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나, 왜곡 편향된 발언, 몰상식한 발언이나 행동 따위는 걸러서 내보내는 게 상식 아닌가. 더구나 생방송도 아닌 녹화방송에서.

방송 모니터를 했던 내 경험이 그렇게 말하지만 이런 정도의 판단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송의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이런 판단을 왜 제작진은 하지 못했을까.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이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 정도의 발언 수위는 괜찮을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가 이런 '방송 사고'를 가져왔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이런 천박한 외모 지상주의는 사회와 가정 모두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보통 키, 보통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루저'로 몰아붙인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아래 두 사례도 결국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빚어낸 슬픈 현실이다.   

#1. 공부 잘하면 뭐해? 키가 작은데

잘 아는 친구 딸이 서울대에 들어갔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다. 그 딸에게 조금 아쉬운(본인이나 그 엄마가 늘 콤플렉스라고 떠들고 다니니까) 점이 있다면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딸이 제 엄마에게 그러더란다.

"공부 잘 하면 뭐해? 키가 작은데."

딸의 불평이 계속 이어졌다.

"엄마는 무슨 배짱으로 애 낳을 생각을 했어. 엄마 아빠 둘 다 작으면서. 본인들이야 서로 좋아해서 결혼까지 한 건 뭐라 안 하겠는데 그 키에 애까지 낳을 생각을 했던 건 좀 심했어. 태어날 2세도 한 번 쯤 생각했어야지. 무슨 강심장으로 애를 낳고."

농담처럼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은 친구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그 엄마는 키를 크게 키운다는 약 광고나 키를 크게 만든다는 운동기구 광고를 보면 금세 눈이 돌아간다. 그 친구의 소원은 키 크게 하는 신약이 빨리 개발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키 크게 하는 좋은 '미제약'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부탁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 엄마는 나중에 자신의 딸이 키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미국으로 보낼 작정을 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 잘 해도 키가 작으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종종 들으면서. 

#2. 못생긴 건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 못해!

주재원으로 미국에 왔다가 1년 뒤 한국으로 돌아갈 가정에서 목격한 일이다. 모녀간에 벌어진 치사한(?) 밥싸움을 구경했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던 딸의 밥그릇을 엄마가 빼앗았다. 작작 먹으라고. 사춘기 딸은 때가 때인 만큼 식욕이 당기고 이곳 체육시간에 자주 뛰는 1마일(1.6 km)의 운동량 때문에 집에 오면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집에 오면 걸신 들린양 마구 먹어치웠다. 그러자 기름진 미국의 급식 때문에 살이 많이 쪘다고 생각한 엄마는 딸의 밥그릇을 냉정하게 빼앗았다.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내가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너무 하네"라며 농담을 건네자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에 계속 살 거면 모르지만 한국에 돌아갈 거니까 뚱뚱하면 안 돼."
"왜?"
"너 몰라서 물어? 한국에서는 뚱뚱하면 왕따 당해. 그래서 이런 말 하잖아. 못 생긴 건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 못 한다고."

실없는 우스갯소리에 그냥 웃고 말았지만 키가 작고 뚱뚱하면 그야말로 '루저'로 취급하는 나라가 한국이란다. 문명 국가에서 이런 야만이 자행되고 있다는 건 지극히 슬픈 일이다. 

키 작고 뚱뚱한 사람도 당당하게 나서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봤던 인상적인 장면이다. 풋볼 경기가 벌어지는 운동장에 가면 활기차게 구호를 외치고 응원하는 예쁜 고등학생 치어리더나 댄서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는 날씬한 여학생만 있는 게 아니다. 뚱뚱한 여학생도 곧잘 있다. 이들은 몸에 착 달라 붙는 옷이나 짧은 치마를 입고도 아주 당당하다. 뚱뚱하다고 주눅들지도 않고 이들을 향해 뚱뚱하다고 수근대는 사람도 없다. 물론 본인들이야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마칭밴드.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마칭밴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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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뚱뚱한 사람 본인도 절대로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용기를 내어 치어리더나 댄싱 팀에서 활동한다 해도 뭇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뒷말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킴이 말했듯이 미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민자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내 학생들 가운데에도 이민자로 살면서 미국에서 겪고 있는 인종적인 차별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빈번한 총기사고 때문에 미국살이가 겁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정말 부러울 정도다. 또한 우리처럼 키가 작다고, 뚱뚱하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별로 못 봤다. 물론 미국이라고 그런 따돌림이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신체와 관련하여 그 약점을 끄집어내어 죄인처럼 주눅들게 하는 건 보지 못했다.

미국 역시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로 문제가 많은 나라다. 그러나 타고난 개개인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태도에서 "미국이 이래서 좋다"는 말을 연발하는 사람들을 나는 종종 만난다.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에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에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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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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