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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이 불타고 있다!

"It Is burning!" 이태리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한마디로 창덕궁 후원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11월 12일 늦가을에 찾은 창덕궁 후원은 마지막 단풍이 불씨처럼 타고 있었다.
▲ 불타는 창덕궁 후원 "It Is burning!" 이태리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한마디로 창덕궁 후원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11월 12일 늦가을에 찾은 창덕궁 후원은 마지막 단풍이 불씨처럼 타고 있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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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burning!(불타오르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카메라 앵글을 돌려댔다. 그의 가장 말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늦가을 단풍이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꺼지기 전의 불씨가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처연했다.

매년 나는 창덕궁 후원 단풍 구경을 간다. 사실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 등의 내로라하는 단풍도 아름답지만, 창덕궁 후원의 단풍은 곱기가 다른 어떤 곳에도 지지 않는다. 도심에 있으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못한다면 억울할 정도다.

마지막 타는 단풍은 고궁의 지붕과 담벼락을 넘어 거대한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창덕궁 후원의 단풍 마지막 타는 단풍은 고궁의 지붕과 담벼락을 넘어 거대한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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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매년 10월 말경이면 창덕궁을 찾는데 금년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11월도 중순인 12일 목요일 늦은 오후, 자유 관람을 택해 창덕궁 후원을 찾았다. 창덕궁은 자유 관람일에 가야 한다. 그래야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마음대로 후원을 걸어 다닐 수 있다. 매표소 앞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니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어 후원의 단풍도 다 져버렸거니 하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갔다.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에 참나무 낙엽이 깔려 낙엽의 길이 되었다.
▲ 낙엽의 길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에 참나무 낙엽이 깔려 낙엽의 길이 되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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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희정당을 지나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참나무 낙엽이 깔려 있어 '낙엽의 길'이 되었다. 제법 걷는 운치가 좋았다. 그리고 이어서 부용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마지막 타는 단풍이 지나가는 관람객 걸음을 멈추게 했다. 모두가 와! 소리만 냈다.

단풍은 낙엽의 길 담장을 넘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 창덕궁 후원의 단풍 단풍은 낙엽의 길 담장을 넘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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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은 이렇게 붉은 단풍을 이탈리아에서는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유럽은 대부분 노란 색 단풍이 많다. 나는 그와 창덕궁 후원을 동행하게 되었다. 부용지에 도착하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말없이 카메라의 셔터만 눌러댔다.

언덕에서 내려온 불길은 부용지를 끓게 하고 부용정의 문지방으로 번져갔다.
▲ 부용지의 단풍 언덕에서 내려온 불길은 부용지를 끓게 하고 부용정의 문지방으로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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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에도 마지막 타다 남은 단풍이 연못에 길게 드리운 채 연못을 태울 듯 타오르고 있었다. 부용정을 휘감고 늘어뜨린 단풍은 내가 보기에도 과히 절경이었다. 그는 거의 반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이태리에서 온 사진 작가는 부용지의 단풍에 취해 떠날 줄을 모르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 부용지의 단풍 이태리에서 온 사진 작가는 부용지의 단풍에 취해 떠날 줄을 모르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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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오 노!"
"원더풀!"
"주세스 크라이스트!"

그랬다. 때마침 "성군을 꿈꾸다"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는 부용지에 어린 단풍에만 취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온갖 감탄사를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로 부용지의 단풍에 취해 있었다.

부용정의 문지방 사이로 보이는 단풍은 마치 문지방에 불을 부치는 불길 같았다.
▲ 부용지의 단풍 부용정의 문지방 사이로 보이는 단풍은 마치 문지방에 불을 부치는 불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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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단풍은 언덕에서 내려와 부용지를 불태우고, 부용정 문지방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며 정자를 태울 듯 넘실거렸다. 이탈리아인은 거의 1시간여 동안을 부용지의 단풍에 취해 있었다.

우리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영화당을 지나 애련지로 발길을 옮겼다. 숙종이 연꽃을 좋아하여 '애련(愛蓮)'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애련지(愛蓮池)는 차라리 가을이 오면 '애단지(愛丹池)'로 바꾸는 것이 어떨지. 애련지에도 역시 타다 남은 단풍이 석양빛을 밭아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단풍으로 둘러싸인 애련지. 차라리 가을엔 '애단지(愛丹池)'란 이름이 어울릴 것 같다.
▲ 애련지의 단풍 붉은 단풍으로 둘러싸인 애련지. 차라리 가을엔 '애단지(愛丹池)'란 이름이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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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존덕정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붉은 단풍 터널은 반도지(半島池)를 둘러싸고 존덕정(尊德亭)에 이르기까지 철광공장의 용광로(熔鑛爐)처럼 지글지글 끓으며 마지막 불씨를 태우고 있었다.

"원더풀! 원더풀!"
"원더풀 코리아!"

그것은 차라리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용광로와 같았다. 단풍은 하늘과 물, 그리고 땅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 반도지의 단풍 그것은 차라리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용광로와 같았다. 단풍은 하늘과 물, 그리고 땅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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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다! 이탈리아인 사진작가는 이젠 정말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 동안 넋을 잃은 듯 바라보더니 이윽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물속에 투영된 단풍은 하늘을 태우다 모자라서 물을 끓게 하고 땅 위에서 뒹굴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해가 저물 때까지 발목이 잡혀 반도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단풍은 반도지를 끓게 하고 존덕정까지 붉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 반도지의 단풍 단풍은 반도지를 끓게 하고 존덕정까지 붉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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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들어가는 산책로는 낭만의 길이다. 누구나 푹푹 지는 낙엽을 밟다보면 사랑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60을 넘은 듯한 아주머니 네 이 낙엽을 발길로 툭툭 차며 까르르 까르르 소리를 지른다. 그들은 마치 10대 소녀들 같다. 소녀시대! 아름다운 풍경은 이렇게 60대의 노인도 10대 소녀로 바꾸고 만다.

창덕궁의 단풍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원더풀 코리아다!"

옥류청으로 가는 길에서 60대 아주머니들이 낙엽을 발로 톡톡 차며 까르르 웃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60대 노인도 10대 소녀로 만들고 만다.
▲ 창덕궁 후원의 단풍 옥류청으로 가는 길에서 60대 아주머니들이 낙엽을 발로 톡톡 차며 까르르 웃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60대 노인도 10대 소녀로 만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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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영화루에서는 "성군을 꿈꾸다"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단풍과 잘 어울리는 행차다.
▲ 성군을 꿈구다 창덕궁 후원 영화루에서는 "성군을 꿈꾸다"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단풍과 잘 어울리는 행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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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단풍과 빨간 단풍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반도지의 단풍 노란단풍과 빨간 단풍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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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창덕궁 후원의 늦가을 단풍, #반도지의 단풍, # 부용지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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