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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라 KBS 계약직지부 지부장이 이병순 현 KBS 사장과 함께 사장후보 5인방에 들었다.
 홍미라 KBS 계약직지부 지부장이 이병순 현 KBS 사장과 함께 사장후보 5인방에 들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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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장과 그가 해고한 노동자가 모두 사장 후보

"사장님! KBS 비정규직 노동자들 복직시키십시오. 왜 못 본 체하십니까."

지난 10월 1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장에 나타난 이병순 KBS 사장을 향한 한 여성의 외마디가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국회 경위들이 몰려들었다.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국감 전 모든 증인들을 밖으로 나가게 한 뒤 신분증 검사를 하고 다시 입장토록 했다. 일대 사건이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홍미라(35) KBS 계약직지부장이었다. 1999년 7월 KBS 파견직 사원으로 입사해 KBS 시청자상담실에서 일했던 홍 지부장은 정부의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던 7월 1일에 잘렸다. 회사가 제안한 자회사나 외부업체로 가지 않겠다고 하니 법 시행하는 첫날 해고된 것이다. 해고를 총괄 지시한 사람은 이병순 사장이다. 이 사장은 지난해 12월 경영개혁단을 만들어 가장 먼저 비정규직 해고에 나섰다. 약한 고리부터 자르기 시작한 게다.

홍 지부장은 112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해고자 복직과 계약해지 중단을 요구하면서 '투쟁 중'이다. 그동안 이들은 국회 앞에서 1인시위도 했고 KBS 본관로비 점거농성도 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차 본교섭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 홍 지부장은 지난 11일 KBS 새 사장 후보에 등록했다. KBS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홍 지부장을 5배수로 압축된 후보군에 넣었다. KBS 사추위가 천거한 5명의 KBS 사장후보는 이병순 현 사장, 강동순 전 감사,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 이봉희 전 미주 KBS 사장 그리고 홍 지부장이다.

이병순 사장과 홍 지부장은 19일 면접시험을 함께 치르게 된다. 이병순 사장 처지에서 보면 자신이 해고한 노동자와 함께 '사장후보'가 된 셈이다. 참으로 재밌는 형국이다.

이보다 더 역설적인 상황이 있다. KBS 노동조합과 직능단체들은 '이병순·강동순·김인규' 3인에 대해 '부적격 후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정치적 편향 때문이다. 심지어 KBS노조는 김인규 회장이 사장이 되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해석해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홍 지부장이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되는 건가.

<오마이뉴스>는 14일 오후 홍 지부장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KBS와 맞붙어 싸우다 KBS의 사장이 되기로 결심한 홍 지부장. 왜 사장이 되려는 것일까. 그는 '공익과 인간이 자본과 효율을 압도하는 KBS'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나머지 4명과 경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계약직지부(지부장 홍미라)가 해고자 복직과 계약해지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KBS 계약직지부(지부장 홍미라)가 해고자 복직과 계약해지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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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갖고 후보 등록... 경영계획서 진지하게 써냈다"

- KBS의 새 사장 후보 5인방에 들었다. 
"놀라운 일이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서류심사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회사가 서류심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5배수로 압축된 후보군에 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떨떨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KBS 사장 선임 정국에서 진정성을 갖고 새 사장 후보에 등록했다. 경영계획서를 아주 진지하게 써냈다."

- 경영계획서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담겼나.
"KBS의 7대 비전을 담았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썼다. 공영성과 공익적 가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풍부한 정보와 다양한 목소리가 담기는 방송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가 정권의 눈치를 보고 또 돈에 얽매여 공영성을 담기 어렵다면 그것은 공영방송이 아니다. 그밖에 비정규직, 88만원세대, 이주노동자,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방송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직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창의적 조직을 만들고 독창적인 KBS를 만들겠다고 썼다."

- 이병순 사장은 KBS 계약직지부의 교섭상대였다. 그런데 함께 후보라인에 서게 됐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나는 KBS 시청자상담실에서 비정규직으로 10년간 일했다. 이병순 사장은 지난해 12월 경영개혁단을 만들고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섰다. 나는 정부의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일 해고됐다. 사실상 이병순 사장이 나를 자른 셈이다.

420명의 KBS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161명은 회사의 제안대로 자회사나 외부업체로 갔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112명이 남아 계약직지부를 만들고 활동 중이다. 우리는 회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편법적으로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투쟁 중이다. 사실 나는 '이병순 사장 반대운동'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같은 새 사장후보에 선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라고밖에 설명 못 하겠다."

 이병순 KBS 사장이 12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기 앞서 고흥길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병순 KBS 사장이 12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기 앞서 고흥길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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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강동순·김인규, 공영방송 사장 될 자격 없다"

- 이병순 사장은 연임을 위해 공모에 응했다. 어떻게 보나.
"이병순 사장은 짧은 임기 중에 참으로 많은 사람을 잘랐다. 비정규직들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김제동씨 등등 많지 않나. 그런 사람이 공영방송인 KBS의 사장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후보 등록 자격이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 KBS 노동조합과 사원행동 등은 이병순·강동순·김인규 세 후보에 대해 절대불가 방침을 밝혔다. 이에 동의하나.
"이병순 사장은 물론 강동순 전 KBS 감사,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은 KBS의 사장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정치적 편향 때문이다. 정치적 독립에 부적격한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 KBS의 사장이 된다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담보될 수 없다. KBS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흔들렸다. 공격 받았다. 그러나 KBS는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겠나.
"이병순 사장은 흑자기록 운운하지만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선 인물이다. 공영방송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다.

강동순 전 감사는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 방송위원을 지냈다. 2006년 11월 폭로된 여의도 밀담에서 그는 정연주 사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고 특정 노조위원장을 밀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 호남사람들은 심하게 이야기하면 김정일이가 내려와도 우리 동네에는 포 안 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누가 한반도를 통제해도 우리만 안 건드리면 된다, 이런 호남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분이 공영방송 사장에 걸맞을까.

김인규 회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KBS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줄 수 없는 사람이다. 또 얼마 전에는 청와대에서 통신회사들을 상대로 250억 원을 모금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세 명을 제외하면 홍 지부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는 건가.
"(웃음) 나는 정치적으로 어디에 줄 선 바 없기 때문에 정치적 독립성은 반드시 보장할 수 있다. 19일 면접도 진지한 자세로 진정성을 갖고 치를 계획이다."

 미디어행동 회원들과 KBS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사원들이 14일 오후 KBS 본관 앞에서 "김제동씨 퇴출은 이병순 사장의 연임을 위한 막장 개편"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미디어행동 회원들과 KBS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사원들이 14일 오후 KBS 본관 앞에서 "김제동씨 퇴출은 이병순 사장의 연임을 위한 막장 개편"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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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행위 아니다, KBS에 대한 정답 제출하겠다"

- 면접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7대 비전을 구체화할 것이다. 또 KBS 조직 전반을 파악해서 면접에 임할 것이다."

- 혹시 퍼포먼스 차원에서 사장 후보에 등록한 것은 아닌가.
"절대 아니다. 퍼포먼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공영방송 KBS에 대한 정답을 담아보겠다는 취지로 경영계획서를 제출했고 사장 공모에 임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KBS 사장에 공모할 수 있다."

- KBS 계약직지부와 회사 간 교섭 상황은 어떤가.
"2차 본교섭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사측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고자 복직과 계약해지 중단을 요구조건으로 걸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답이 없다. 지금까지는 KBS 인력관리실장이 사장의 위임장을 받아 대신 교섭에 나왔다. 이병순 사장은 단 한 번도 직접 나선 바 없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비정규직이지만 우리는 KBS를 믿었다.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신 당했다. 현재의 KBS는 공영방송이 아니다. 공영방송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KBS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정답을 이번 사장 면접 때 제출하겠다."


#홍미라 KBS 계약직지부장#이병순 KBS 사장#강동순 전 KBS 감사#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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