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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6일 부천시 원미구 중동 안중근 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10월 26일 부천시 원미구 중동 안중근 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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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얼빈에 있었던 안중근 의사 동상이 우리 고장 부천에 왔다. 나는 하얼빈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기 때문에 이 소식이 남다르게 들렸다. 안중근 의사 동상은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나라의 한 사업가가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 동상은 실외에 세울 수 없다는 중국당국의 결정에 따라 우리나라로 오게 되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안 의사 동상 유치를 위해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부천에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동상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인 부천시 원미구 중동 안중근 공원에 세워졌다. 그 이유는 1995년부터 실시해왔던 부천과 하얼빈의 국제교류가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 나도 하얼빈과의 청소년 국제교류 홈스테이에 참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실시된 청소년 국제교류에서 하얼빈에 사는 양천천이라는 학생이 내 파트너가 되었다. 나보다 3살이 어렸지만 키도 10cm 컸고  몸무게도 10kg 이상 많이 나가는 듬직한 학생이었다. 7박 8일간의 일정 중 3일은 시청에서 실시하는 일정에 참가하고 나머지는 우리 집에서 지냈다. 부모님과 함께 인사동에도 가고 중앙박물관, 민속촌 등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곳을 체험했다.

천천이는 예의가 무척 발랐다. 자고 나면 이부자리는 깨끗이 정리하고 우리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무겁다고 따라 나가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항상 남을 먼저 배려했다. 매너있고 듬직한 천천이를 우리 부모님은 무척 좋아하셨다. 아빠는 부천의 아빠라며 천천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일정을 마치고 하얼빈으로 돌아간 천천이를 못잊어 했다. 편지와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해 겨울 천천이 부모님으로부터 초청장이 왔다. 하얼빈 빙등축제에 우리 가족을 초청한 것이다. 나는 마침 하얼빈시가 주최한 국제교류도시 행사에 참석했고 아빠는 천천이 가족의 초청으로 하얼빈에 가게 되었다. 세계적인 축제로 이름난 빙등축제에서는 2008년 북경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주제를 올림픽으로 정해 더 볼거리가 많았다.

일본이 주로 한국,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1939년 세웠다는 731유적지,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개조가 적혀 있었던 안중근 의사기념관에도 갔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겨누었던 곳 하얼빈은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의 권리를 빼앗고 독립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또 만주를 침략하는 등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일은 우리나라를 위해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 일이다."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왜 죽였느냐는 재판장의 말에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통치하려고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수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제3자 저격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쓴 엽기적인 소설이 나왔다고 한다.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은 "한국인처럼 유약하고 활기 없는 민족이 어떻게 감히 이토 히로부미를 쏠 수 있겠느냐"라고 한다.

둘러보면 나라를 위하기는커녕 개인의 욕심을 위해 인간임을 포기한 듯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국독립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진 안 의사의 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안중근 가문의 비극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안 의사의 가족은 모진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큰 아들은 일제에 의해 독살 당하고 동생들은 의문의 실종을 당해 유해를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안 의사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까지 비극에 살다 갔다니 참으로 가슴 아프다. 우리 고장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하며 애국심을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김가람은 고등학생 시민기자입니다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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