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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가.

전쟁에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지친 여인의 마음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구체적인 노랫말은 전해지지 않고 제목만이 전해오고 있다.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이니, 그 애틋함이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마음이 눈앞에 그려진다. 사랑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공명된다.

 

 

선운사 생태공원에 서 있는 화강암 시비가 전하고 있었다. 백제 여인의 사랑을 기억하고자 후세 사람들이 정성으로 세운 시비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사랑이 있기에 아름다워질 수 있고 신바람을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이 있기에 내가 누구인지를 풀어갈 수 있다. 사랑은 삶의 진수다.

 

 

가을의 여운을 즐기기 위하여 선운사를 찾았다. 내장사의 단풍이 힘을 잃었기에 그 여운을 선운사에서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을 보고 집사람은 머뭇거렸지만 반 강요에 따라 나선다. 전주에서 출발하게 되니, 하얀 눈발이 스친다. 처음엔 그것이 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참 동안을 지켜보고 있던 집사람이 큰 소리를 쳤다.

 

"첫눈이예요! 첫눈!"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집사람의 호들갑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소녀의 환희가 배어 있었다. 나이는 숨길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아직 소녀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깊은 곳의 순수한 마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본다. 낭만이 살아있기 때문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어 개의 눈송이는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늘은 햇살로 바뀐다. 호랑이 장가 간다고 하였던가? 날씨가 그랬다. 구름으로 찌푸렸다가는 이내 다시 햇살이 말갛게 비추고, 다시 또 얼굴을 찡그리는 일이 반복하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흥덕을 거쳐 선운사에 도착하였다.

 

 

도솔산 선운사.

검단 선사가 개창한 뒤로 천년의 세월이 쌓인 고찰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24 교구 본사로서 숱한 이야기와 신화 그리고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사에 가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서둘러 떠나버렸다. 가을이 머물던 곳에는 서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득 차 있었다.

 

신라의 진흥왕이 수련을 하였다는 진흥굴의 이야기에서부터 백파율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담겨져 있는 산사다. 어디 그 뿐인가?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문굴을 비롯한 도솔함, 마애석불 등 많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솔산 선운사는 식물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송악이라든가, 장사송 그리고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하얀 눈이 내렸을 대 바위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의 푸른빛은 경이롭다. 준수한 청년처럼 하늘 높이 자라난 장사송의 위용은 대단하다. 군락을 이룬 상태에서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선을 나타내고 있는 동백 숲도 신비하다.

 

 

바람에 날리는 이파리.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삶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이란 점을 보여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바로 인생이란 점을 이파리들은 말하고 있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또 다른 봄이 오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멈추어서도 안 되고 또 멈출 수 없는 길이 바로 인생이다.

 

 

붉은 빛깔로 날리고 있는 낙엽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가을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서 찾은 선운사이지만, 가을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나를 찾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인생이란 점을 날리고 있는 이파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떨어지는 낙엽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비교해본다.

 

 

인생은 끝이 없는 레이스다. 낙엽이 떨어져서 양분이 되고 또 다시 새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반복된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운 일들이 후회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게으름을 합리화시켜왔다. 그 모든 결과는 결국 내 몫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난감해진다. 다가오고 있는 겨울을 바라보며 반성한다. 선운사의 겨울 풍광에 나를 비추어보았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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