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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직업을 묻기보단, 이름을 묻기보단 “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이에요.”라고 묻는다. 못나고, 못 배운 이들만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강사 노동자들은 기본 학력이 석사고, 박사다. 대학을 갓 졸업한 영민한 머리들이 청년인턴이라는 미명하에 비정규직으로 팔린다. 관공서들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공장이 되어 있고,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병원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공장이 되고 있다.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우리의 삶을 직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마이뉴스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사회운동 네트워크와 공동으로 ‘당신은 정규직인가요?’ 기획 기사를 몇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2009년 한국에 살고 있는 20대라면 예외 없이 느껴야 하는 '불안'이라는 키워드는 더 이상 되뇌기조차 민망한 문구가 되어버렸다. 88만원 세대로 우리를 부르며 느꼈던 약간의 위로와 자조적 마음도 이제는 사라졌다. 저임금 아르바이트와 불안한 취업. 괜찮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어디에도 없지만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니고 더 괜찮은 스펙을 위해 뛰는 것이다. 이러한 20대의 삶과 '불안정 노동'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불안정 노동'에 20대는 어떻게 내몰리나

대졸 초임 삭감과 청년 인턴제는 정권과 기업이 만들어낸 가장 비열한 방법 중에 하나였다. 미래를 담보로 살아가는 청년의 미래를 가장 잘 착취할 수 있는 방법을 어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희망고문'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청년인턴, 행정인턴은 온갖 사탕발림으로 겹겹이 포장해봤자 10개월의 유예기간이었다.

어떤 친구는 '놀기 민망해서', 어떤 친구는 '나중에 스펙이라도 될 테니', 어떤 친구는 '혹시 열심히 하면 뽑힐지 누가 아냐' 라며 인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친구들은 과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며 밥값도 벌지 못하거나, 돈은 받을지언정 사무실 풍경처럼 앉아서 자존감을 파괴당하는 중이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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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부터 정부는 실업 대책으로 '잡 셰어링', '청년인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각 기업들에서는 이것에 발 맞춰 'SK상생인턴'이나 '삼성청년인턴' 등을 홍보하며 청년인턴을 채용하고 '착한 기업 이미지'를 판매하며 정부의 보조금까지 받는 일거양득을 누렸다. 대졸 초임을 삭감한 돈으로 만들어진 청년 인턴은 모두가 알고 있듯 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LG에서는 지난 6월, 청년인턴제로 고용하고 있던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대거 채용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그 기사 밑에 달려있는 리플은 '공채 안내고 인턴 중에 뽑은 건데 이게 무슨 상생이냐', '일 년씩 사람 써보고 그중에 80% 골라 뽑은 게 뭐가 그렇게 잘했다는 거냐, 20%는 어디 갔냐'며 이 이벤트의 본질을 알려줬다.

사실 잡 셰어링은 일자리 창출의 효과보다 '임금삭감'의 의미가 더 크다. 즉, 정부의 잡 셰어링 확대와 공공기관 인턴제는 정규직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없고 '불안정한 고용의 일시적 확대'다. 오히려 임금삭감의 효과만 가져오니 '일자리 창출 대책'이 아니라 '임금 빼앗기'대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점점 확산, 장려되고 있는데 문제는 경제위기하 임금삭감을 당연한 전제로 놓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미덕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 모두의 눈을 가리는 수단이다.

청년인턴제가 청년들에게 가져다주는 문제점은 다양하다. 인턴을 채용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직무가 전문적이다 보니 단기 인턴들에게는 시킬 수 없다. 일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어차피 시킬 일이 없으니 결국 아르바이트생과 비슷한 사무보조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비일비재 하다. 인턴으로 고용된다고 해도 1년 미만의 기간밖에 일을 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즉, 인턴사원을 지원하게 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전망을 가지고 인턴을 해나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턴 기간을 통해 취업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난다는 것도 거짓으로 판명되었는데, 11월부터 순차적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전국 2만여 행정인턴 가운데 10%만이 취업에 성공하였다는 조사가 나왔다. 올해 하반기 채용에 대해 상장사 543개 기업에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 하반기에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은 194개사로 전체의 35.4%에 그쳤다. 이는 지난 하반기와 비교하면 13.3%가 줄어든 결과이다.

반면 인턴사원 채용은 전체의 20%인 113개 기업이 계획이 있는 것으로 답변해 작년 하반기에 비해 3.4%가 늘어난 결과다. 이쯤 되면 기업들도 돈 많이 들고 책임질 것도 많은 정직원을 뽑느니 돈 덜 줘도 찍소리 않고 일하는 젊고 빠릿빠릿한 인턴사원을 뽑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걸 그새 학습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봄 직하다.

인턴을 늘려서 고용창출을 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넌센스인 상황에서 많은 대학생들은 그 넌센스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다가, 잘 되지 않으면 청년인턴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다시 도서관으로 혹은 대학원 진학으로 학교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높은 등록금에 치여 한 달 수 십 만원의 학자금이자 대출도 버거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취업의 길마저 막혀버린 학생들은 마음을 한 뼘 한 뼘 도려내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 이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왜 없겠는가.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 순번표 앞에 몰려들고 있는 실직자들의 모습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 순번표 앞에 몰려들고 있는 실직자들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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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 숨어있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대졸 신입사원'이라는 말에 있다. 정부와 기업은 '대졸 신입사원들도 임금 적게 받아가며 일한다는데 나머지도 그래야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며 '고통분담'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누구도 원한 바는 아니었으나 인턴으로 취직을 한 사람도, 인턴에게 직장을 내어주기 위해 자신의 봉급을 깎은 신입사원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주기 위해 정리해고 된 50대 과장님에게도 세상은 똑같이 각박해 졌다.

실제로 기업들은 잡 셰어링을 빌미로 사실상 강제해고를 벌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어 고통분담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

정부는 "고용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임금의 하향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전경련 총재는 "한국의 너무 높은 임금과 고용 경직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좀 더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늘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만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정부와 기업들의 처사는 다양한 노동자를 똑같이 벼랑으로 내밀면서 동시에 교묘한 방식으로 반목을 조장한다. 청년 노동자와 늙은 노동자가 함께 고용될 수 없다, 원래 고용된 노동자는 신입 노동자를 위해서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인턴에 원서를 내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들 대부분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바는 아니나 '대안'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쓸쓸한 원서를 한 장 더 쓸 수밖에 없다. 잠깐이라도 '노는 시간'이 생기면 다음 원서를 쓸 때 불이익을 볼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자신을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쇠라도 씹어 삼킬 청춘'들이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십 수 년 뒤엔 더 걱정이 될 일이다. 청년 실업이 큰 사회문제라도 모두 똑같이 떠들지만 대안은 참 제각각이었다. 겉보기엔 번지르르한 상생과 양보라는 말이 아무런 희망 없는 단어라는 것을 많은 청년들은 이미 삶을 통해 배웠다. 전체 고용이 줄어갈수록, 안정적 일자리의 총량이 줄어갈수록 삶이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하기에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 비정규직 고용을 합법화하려 했던 CPE법안에 프랑스 청년과 노동자가 연대해서 싸웠던 것, 87년 한국에서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 노동권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를 달렸던 기억으로 '우리'가 '진짜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기존 학내에 있던 공동체들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가장 기본이었던 학생회라는 구조마저 학교에 의해 적극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지금, 대학이라는 공간은 정치적 진공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과 학자, 많은 정치인들이 '20대가 무기력하다'고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20대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으며, 또 일부는 적극적으로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청년 실업과 등록금에 대한 문제제기, 기만적인 잡 셰어링에 맞서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는 것, 전쟁과 금융화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행동'을 만드는 것, 이것을 통해 변혁의 전망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에겐 필요하다. 세대론으로 점철된 담론에서 발견할 수 없는 청년들 사이의 계급문제부터 세대를 넘어선 계급적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연대'를 우리가 발언할 수 있을 때 희망은 자라날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포기하기 쉬운 때일수록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마음과 계획이 절실하다. 혼자만의 시도와 좌절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삶의 조건을 다시 구성해 나가는 행동이 지금 이곳에 필요하다. 마음 한 켠 도려내고 세상에 냉소를 던지며 살기보다 내 옆 사람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는 것, 우리라고 불가능할리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민영 기자는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장이며 <전국학생행진> 회원입니다.



#청년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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