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두 번째 일요일이었던 지난 8일 오후,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묘역에 제가 운영하는 카페 회원들과 다녀왔습니다. 아내도 참배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지요.
DJ 묘역 참배는 강원도 속초에 사는 회원의 건의로 이루어졌고, 숫자는 적지만,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으며, 돈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덴마크에 거주하는 회원이 행사가 끝나면 저녁식사비에 보태라며 20만 원을 보내와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는 DJ가 대통령 재임 시절 통일의 초석인 6·15 공동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노벨평화상 수상과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외환위기를 벗어났지만, 실패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핵심인 인권개선 등 성공한 부분이 훨씬 많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80년대 초 '김대중옥중서신'을 읽고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용서와 화해가 얼마나 절실한가도 깨우쳤는데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으며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부부는 한몸이며, 한 생각이며, 한 느낌이며, 한 행동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DJ의 권언에 영향을 받아 친목계도 부부동반 모임에만 가입했고, 지금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내와 함께 움직이니까요.
해서 이번 DJ 묘역 참배에도 회원들에게 가능하면 부부동반, 아니면 형제·자매와 동반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참석인원은 14명이지만, 부부동반을 하신 분도 있고, 아들을 데리고 나오기도 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하에 계신 DJ도 기뻐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DJ 묘역에서 만난 후배
폭우가 쏟아진 뒤이고 날씨도 끄물끄물했지만, 일요일이어서 DJ 묘역에는 일반 참배객들이 많았는데요. 지난 10월6일 묘비 제막식 이후 처음 하는 참배이고 '보수' 가면을 쓴 반민주 군사독재 지지자들이 "DJ 묘, 평양으로 이장하라!"는 퍼포먼스를 벌이던 뉴스 사진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단체로 참배하는 회원들 뒷바라지를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제 어깨를 툭 치면서 "형님 여기는 어쩐 일이요?"라고 하기에 돌아보았더니, 함께 뛰놀던 고향동네 후배가 반가운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저도 놀랍고 반가웠지만, 회원들을 먼저 챙겨야 하겠더라고요. 해서 자세한 얘기는 끝나고 별도로 만나 하기로 하고 참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후배를 찾으니까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더군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 제가 외면하는 것 같으니까 기분이 상해 그냥 내려간 것은 아닌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책임감 때문에 객지에서 만난 반가운 고향 후배를 모르는 체 한 것 같아 속이 몹시 께름칙하더군요. 언제 만나면 오해를 풀어야겠지요.
묘소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한 여성회원과 "당신(DJ)은 당신에게 유일한 영웅은 오직 국민이라고 했는데, 참 무지렁이 같았음에도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이 다녀갑니다.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묘역을 내려왔습니다.
생맥줏집에서 만난 동창
행사를 모두 마치고 서울 국립현충원 정문을 나오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전날부터 날이 궂어 걱정되었는데 참배를 마치고 나니까 비가 내려 '하늘이 도와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덴마크에 거주하는 회원이 보내준 돈도 있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서운하더군요. 해서 식당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막걸리와 매운탕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이용해 '행동하는 양심, 우리는 김대중의 유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주제로 잠시 토론을 했는데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까, 기차 시간이 세 시간 가까이 남았더군요. 해서 아내와 저는 속초에서 올라온 회원과 <오아이뉴스> 추광규 시민 기자와 함께 가까운 생맥줏집에 들어갔습니다. 축축하게 젖어가는 거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제가 동창회 총무였던 10년 전 만나고 처음 만난 사이인데요. 이름을 부르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래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던 동창은 잠시 제 이름을 까먹었는지 답답해하는 표정이더군요. 해서 알려줬더니 손으로 이마를 치면서 미안해했습니다.
1천만이 넘는 인구가 아등바등하는 서울에서 물장구치러 다니던 고향 후배와 동창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그래서인지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함께 온 일행들이 있어서 따로 앉을 수밖에 없었지요.
과일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며 DJ 묘역에서 있었던 얘기에 한참 빠져 있는데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더군요. 고개를 돌리니까 "야, 오늘은 미안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야 되거든, 처음 주문한 생맥주하고, 안주 값은 내가 치렀으니까 다음에 또 만나자!"라고 하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겨를도 없이 일행들과 빗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내와 서울에 왔다가 동창을 우연히 만나 술대접을 받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미처 건네지 못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 추 기자는 아무래도 사전에 준비한 연출 같다며 조크를 하더군요.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설명하고 설득하니까 그때야 추 기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울까지 오셔서 동창에게 술대접도 받고, 대단하십니다!"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아무리 동창이라도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술값 내주기가 어렵거든요"라고 하더군요.
'대단하시다'는 말을 연거푸 들으니까 쑥스러웠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동창회 총무를 해서 그런가 보다며 제 입장을 뒷받침해주어 조금은 덜했습니다. 그래도 '연출' 얘기는 한참을 오갔는데요. 동창 '문만철'이 저를 '대단한 분'으로 만들어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철아, 너를 만나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생맥주도 사주고, 나를 '대단한 분'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 언제 만나면 설렁탕에 소주나 한 잔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