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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진죽봉
▲ 진죽봉 아름다운 진죽봉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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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평 전국 최대 억새 평원으로 유명한 천관산(723m)엘 다녀왔다. 그것은 투병중인 내게 엄청난 도전이고 무리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가고 싶은 소망을 가슴에만 내내 품고 살다가 기회가 오자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따라나선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어떤 후유증이 올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6시부터 채비해서 집을 나섰다. 한편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쾌한 일이었다.

천관산은 등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권유했던 산이다. 특히 억새가 필 때 천관산 억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일행도 없이 혼자서는 떠나기 쉽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권할까 싶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일컫는다는 천관산. 그저 일편단심으로 무등산만을 오르고 바라보며 살아온 내게 천관산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내 몸 상태도 잊고 따라나선 것이다.

산길을 타고 능선과 계곡을 가로 질러 올라가니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 전망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지만 한참 오르다 보면 눈앞이 훤히 트이곤 해 등반의 즐거움을 수시로 안겨주었다. 험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조심조심 나무를 붙잡고 지나면 평지 같은 길들이 나타나 숨을 돌리곤 했다.

구룡봉에서 바라본 다도해
▲ 다도해 구룡봉에서 바라본 다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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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산들
▲ 구룡봉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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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으로 쌓아올린 듯한 기암
▲ 진죽봉 사람의 손으로 쌓아올린 듯한 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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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봉 쪽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앞쪽 풍광과 뒤쪽의 풍광이 완연하게 달랐다. 한 장소에 서서 방향만 바꾸면 이렇게 전혀 다른 광경을 만날 수 있는 천관산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정상을 항하여 힘든 줄도 모르고 오르고 또 오르게 했다.

기온이 낮은 것인지 체감온도가 낮은 것인지 오를수록 몸이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구룡봉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바라본 다도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오르며 힘들었던 그동안의 난관들을 모두 금방 잊게 했다.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은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나를 채워주었다. 산과 바다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곳, 천관산이었다. 그곳을 지나 다시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힘든 길을 따라 오르니 거짓말처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은빛 억새 천지가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장관이었다. 가을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추어대는 은빛 억새들의 군무는 찬란했다.

억새 숲길이 눈앞에
▲ 억새숲 억새 숲길이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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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은 몸이 날아갈 정도
▲ 드러누운 억새 세찬 바람은 몸이 날아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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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의 억새들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등산객들은 하나였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몰아치는지 억새는 바닥에 드러누울 정도였고, 그 바람을 고스란히 맞은 나는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용이 놀았다는 바위의 흔적을 곱게 잡으려다가 세찬 바람에 그만 모자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쉴 새 없이 지나갔다. 그러느라 감기에 더욱 심하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용이 놀았다는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
▲ 용 발자욱 용이 놀았다는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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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안내표지
▲ 안내표지 천관산 안내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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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너른 억새밭의 사방으로 난 갈림길을 가다보면 어느 새 앞에 가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을 잃을까 봐 가쁜 숨을 내쉬며 내려오는데 자꾸만 뒤돌아봐졌다. 저 억새를 두고 내려가면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까.

억새와 산과 바다와 하늘
▲ 억새평원 억새와 산과 바다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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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모습도 금방 감춰버린다
▲ 억새길 사람의 모습도 금방 감춰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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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길을 완상하며
▲ 여유롭게 억새길을 완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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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평지를 걷는 모자의 모습이 곱다
▲ 다정한 가족 완만한 평지를 걷는 모자의 모습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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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과 기암괴석, 비단 같은 단풍, 탁 트인 다도해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은 듯 한 천관산은 산세가 뛰어나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신산(神山)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러왔다고 한다. 구룡봉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바라본 다도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 천관산은 이렇게 능선 어디서든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을 볼 수 있어 색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산이었다. 

또한 천관산은 사방으로 열려져 있어 동쪽과 남쪽은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월출산에서부터 제암산, 팔영산에 이르기까지 영암, 강진, 장흥, 보성, 고흥 등 남도 일원의 크고 작은 산들이 올망졸망 한눈에 들어와 황홀했다. 산에 올라 이렇게 다양하게 먼 곳의 다른 산들을 바라보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등산객들
▲ 정상을 향하여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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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10일 전라남도가 지정한 도립공원으로 능선에 서면 전남 일원의 모든 산과 멀리 제주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는데 특히 봄여름의 초록 능선이 가을에는 은빛 찬란한 억새능선으로 바뀌면서 장관을 연출해 그 많은 사람들을 천관산의 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리라.

학창 시절에 올랐던 월출산은 산세가 험해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천관산은 월출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기암 괴봉이 수없이 솟아 있으면서도 산세는 완만하고 순해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힘들어도 오를 만 했다. 또한 , 비단결 같은 은빛 억새꽃과 능선 곳곳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온갖 바위들이 널려있어 등산하는 즐거움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천관산 억새 능선은 환희대에서부터 펼쳐진다. 특히 정상인 연대봉 능선은 매년 10월 초순에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고 하나 축제가 지났어도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내려가고 있었다. 대자연의 향연이 이처럼 베풀어지고 있는데 무슨 축제시기가 따로 필요하겠는가. 자연의 품에 사람이 하나 되어 어우러질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축제 아닐까.

우리 삶에서 도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도전의 스릴을 만끽하면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집을 나선지 12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자연 속에선 모두가 한 마음이라 어색하거나 부담스런 마음도 없었다. 덕분에 다리는 말할 수 없이 아프고 몸살과 감기는 얻어왔지만 내 한계를 넘었으니 다행이었다. 도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덕분에 다리는 말할 수 없이 아프고 감기는 얻어왔지만 내 한계를 넘었으니 그것으로 이미 충만한 축복이었다.

집에 돌아온 지금도 정상에서 내려다 본 다도해의 아름다운 물결과 억새들의 현란한 몸짓이 눈앞에 가물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무등산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절경이었다. 산과 바다의 그 기막힌 어우러짐. 행복을 한 아름 안고 밤길을 걸어서 귀가했다. 앞으로 몇 날은 무리를 해서 고단한 몸으로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맛본 그 행복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리라.

올 초에는 대구에서 남아있는 한쪽 다리와 한쪽 팔로 목발을 짚고 혜진 양이 1,000m가 넘는 겨울산을 정복하는 모습을 TV로 보았다. 어떻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겨울산, 그것도 눈이 내려 꽁꽁 언 겨울산을 뼈마디가 쑤시는 아픔을 견디면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리는 것을 자신이 계획한 대로 실행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면서 하느님이 그녀에게 숨겨놓은 에너지가 찬란하게 꽃피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인간승리가 주는 눈물겨운 감동이었다. 그녀를 보면서 그지없이 부럽고 또 부끄러웠다. 이제는 그녀를 부러워만 하지 않고 나도 하나하나 해내리라.


태그:#천관산 , #억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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