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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투자사에 세종시 입주 압력> 20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이다.

 

정부가 대구 신서와 충북 오송을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선정하고도 세종시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의 반대급부로 세종시에 의료과학시티 건설을 추진해 선정 따로, 유치 따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이에 대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충북 오송,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 훨씬 전부터 추진해온 사항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행정기관이전 백지화가 몰고 올 도미노 현상을 예측하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세종시 추진과정과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세종시 행정기관 이전이 백지화되면 혁신도시도, 기업도시도 다 도루묵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론에 쾌재를 부르고 있다. 지난 17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전경련과 만나 세종시 이전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민간투자자에게 토지를 저가로 공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상당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검토하겠다는 게 요지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재벌특혜도시건설청'으로 명패 바꿔라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청이 세종시 민관합동위에 제안한 안을 들여다보면 인센티브안에는 학교나 병원 설립을 위한 규제 완화, 자족기능용지 최소 20% 확대, 기업이나 대학의 원형지 개발 허용 등이 제시돼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본적인 투자 인센티브 외에 "개별 기업에 필요한 특별한 인센티브를 별도로 마련해 줄 것"을 추가 요구했다.

 

또 있다. 정부가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조성한다며 밝힌 투자유치 방안에는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토지 공급 ▲국가유공자와 장애인 의무 고용 및 유급휴가 배제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대폭적 감면 ▲공장 신설과 고용 훈련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이 포함돼 있다. 세종시를 '재벌특혜도시'로 만들고 행정복합도시건설청을 '특별재벌도시건설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건설청, 일 년 전부터 "평균원가보다 낮은 가격" 약속

 

이게 끝이 아니다. 행정복합도시건설청은 지난해 말 외국기업 등을 상대로 한 영문홈페이지에 "중요투자자에게 인근 산업단지와 비교해 상당히 낮은, 심지어 평균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공급할 것"과 "기업들이 장기할부로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하고 대규모 투자자에겐 땅을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원형지공급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도시건설청은 "지난해 초부터 외국기업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정도 수준의 인센티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이런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도화해서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게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무런 법적 근거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미 일 년 전부터 외국자본과 재벌기업이 판을 칠 수 있도록 하는 초 특혜방안을 마련, 제시해온 셈이다.

 

잠시 기억을 되돌려보자.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통한 행정도시건설은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핵심과제로 채택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침체'라는 국토의 이중구조 심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행정기관 이전'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중앙행정기관을 대폭 이전해 균형발전을 위한 터전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설득에 600년 삶의 터전을 헐값에 내줬다. 실제 보상금액대별 소유자 분포현황에 따르더라도 전체 1만 1587명 중 3억 원 미만 보상을 받은 사람이 73.3%에 이른다. 5천만 원 이하 소유자가 31.3%로 가장 많고, 5천만 원에서 1억 원 미만도 17%를 차지하고 있다.

 

"행정기관 이전만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 벌써 잊었나 

 

 
행정도시가 아닌 재벌과 외국자본을 위한 또 다른 판박이 기업도시나 혁신도시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지방민 누구도 행정도시 건설을 목 놓아 외치지 않았을 것이다. 원주민들도 재벌특혜도시를 위해 조상의 유골을 품에 안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시 건설은 2030년까지 30년 장기 계획이다. 그 시작은 이명박 대통령이 수 십 차례에 걸쳐 약속했던 원안 그대로 9부2처2청을 이전하는 것이다.

      

중앙행정기관만 이전하면 쉽게 진척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재벌과 외국기업만 콧노래를 부르는 어이없는 대책만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는 거다.

 

충청민들과 지방민들이 세종시 예정지에 대기업을 유치하지 못해 안달하는 게 아니다. 당초 약속했던 대로 중앙행정기관 이전으로 지방도 국가균형발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달라는 것이다.

 

균형발전은 온데 간데없이 판박이 도시개발로 재벌과 외국자본에게 특혜만 줄 생각이라면 아예 세종시 건설을 중단하는 편이 낫다. 지난 19일 행정도시건설청 앞에서 만난 연기주민의 한 마디를 그대로 옮겨 본다.

 

"행정도시 건설한다고 해서 집 주고 땅 내줬더니 재벌들에게 헐값에 팔겠다고... 냅 둬유! 차라리 그 땅 개나 줄래유."


태그:#중앙행정기관, #재벌도시건설청, #행정도시건설청, #전경련,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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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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