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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웠다.
화장장 가는 길은, 추웠다.
11월 16일,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4도로 떨어진 날이었다.

화장장 견학을 위해 나선 날..
▲ 밤새 떨어져 쌓인 은행잎 화장장 견학을 위해 나선 날..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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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을 위해 화장장(벽제 승화원) 정문을 들어선 것이 어언 스무 번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다. 내가 유족이 되어 들어서던 날... 오늘도 어김 없이 마주치게 될 유족들...

'제 가족처럼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승화원 정문에 붙어있는 현수막
▲ 벽제 승화원(화장장) 정문 '제 가족처럼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승화원 정문에 붙어있는 현수막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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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어르신들을 만나 승화원 입구에서 다같이 묵념을 하고 오늘의 견학을 시작한다. 각각의 화장로에서 새롭게 화장이 시작되는 시간과 정확하게 맞았는지, 영구차의 문이 열리고 고인을 모신 행렬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한 쪽으로 비켜서서 지켜보시는 어르신들 표정이 진지하다.

화장의 시작과 함께 유족들의 울음 소리가 높아지고, 여기저기서 찬송가 소리와 독경 소리가 섞여든다. 유족 아닌 견학자의 처지가 못내 죄송해 모두가 숨죽이고 유족들 사이로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고야 만다.

화장하고 난 후의 유회(遺灰), 즉 가루가 된 뼈[분골(粉骨)]를 어떻게 묻거나 뿌리는지를 보러 걸음을 옮겼다.

왕릉식 납골당(추모의 집)을 거쳐 먼저 들른 곳은 2008년 11월 13일부터 사용을 시작한 자연장지, '어울림 동산'이다. 유회를 흙과 섞어 동그랗게 파놓은 구멍에 모시고 나서, 흙을 덮어 자그마한 봉분을 만든 후 나중에 그곳에 잔디와 꽃을 심는다. 1년 남짓 동안 700여 분 정도가 이곳에 묻히셨다고 한다. 비용은 40년 사용에 50만원(기초생활수급권자와 국가유공자는 50% 할인된 25만원)이다.


이어서 간 곳은 산골공원인 '추모의 숲'. 앞의 '어울림 동산'이 동그란 구멍에 개별적으로 묻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일정 기간 동안 돌아가신 분들이 커다란 구덩이에 함께 모셔진다는 차이가 있다. 개별적인 공간을 사용하지 않아서일까, 이곳 추모의 숲은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고인의 유회를 모시는 곳
▲ 산골공원(추모의 숲) 고인의 유회를 모시는 곳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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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회(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것)가 흙에 섞여 뿌려져 있다
▲ 산골공원(추모의 숲) 고인의 유회(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것)가 흙에 섞여 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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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설공단 장묘사업단 직원들의 안내와 설명을 듣고 나서 어르신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죽어 어디 묻힐까, 그동안 매장 아니면 화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나 죽고나면 그 뿐, 이후의 일은 남은 사람들이 적당히 알아서...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자연으로 잘 돌아가는 일 역시 내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한 어르신의 고백은 여러 차례 어르신들 모시고 다니면서 들은 말씀 가운데 최고였다.

죽음준비란 그런 것. 존엄한 죽음의 방식을 고민하고 나 떠난 자리를 가능하면 깨끗하게 만들려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추모의 숲을 빠져나오는 데 그동안 여러 차례 왔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은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새겨진 날짜를 보니 몇 달 전이다. 아, 그래서 기억에 없구나. 그런데 문구가 참 좋다. 가슴을 조용하게 울린다.

새겨진 '향아..'라는 글씨. '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이 글을 지어 새긴 사람은 '향'이라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었던 누구일까...이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산골공원(추모의 숲)에서 만난 작은 추모비
▲ 추모의 숲에서... 산골공원(추모의 숲)에서 만난 작은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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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장장-납골당-산골공원-자연장지로 이어지는 견학은 변화하는 장묘 방식을 공부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우연히 마주치는 이런 비석의 글귀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볼 때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깨닫는 것처럼, 죽음이 있는 자리에서 살아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삶의 진실이니까.

견학을 마무리하면서 어르신들 모시고 단체 사진을 찍는다. 어르신들 얼굴이 왠지 굳어있다. 두번 째 찍을 때는 이왕이면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활짝 웃어보기로 한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고즈넉한 묘지들이 눈에 들어온다...그곳에는 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적막과 고요가 깃들어 있다...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학생들과 함께
▲ 추모의 숲에서...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학생들과 함께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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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공원 아래 쪽에 자리한 공동묘지...
▲ 묘지 풍경 산골공원 아래 쪽에 자리한 공동묘지...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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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죽음준비, #웰다잉, #죽음준비학교,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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