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동네에서 가까운 A고등학교 입학설명회를 갔다왔다. 그 전날엔 남편이 B고등학교 설명회에 다녀왔다. 부부가 이렇게 '입학설명회'라는 곳에 번갈아 갔다 온 건 사고친(?) 아들아이 때문이다.
정작 고등학교에 갈 당사자인 아들은 엄마 아빠가 설명회에서 갖고 온 학교정보지만 건성으로 훑어봤다.
"넌 어디가 맘에 들어?""결정해놓고 뭘 또 물어봐요?""그래, A 학교가 집에서도 가깝고 괜찮은 것 같아.""알았어요, 되게 신경쓰는 척 하시네."아이의 말에 나는 속으로 발끈했다. '싸가지 없는 놈. 신경쓰는 척이 아니라 지금 너한테 무지 신경쓰고 있거든!' 목구멍 안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꾹 눌러참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온화한(?)' 표정으로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를 힐끔 쳐다보던 아이가 한마디 하면서 컴 앞에 앉았다.
"표정관리하면서 괜히 관대한 척 하지마요."아이가 하는 말에 나는 어금니를 꾹 누르며 입이 한 일 자로 닫혔다. 녀석은 이어폰을 귀에 꽂더니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엔 칠판 앞에서 수학을 풀이하는 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고 있는 아이에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주방으로 가서 물 한잔을 마셨다. 들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아무렇지 않는 표정을 보이기까지(아이는 그런 내 표정까지를 읽어내지만) 아이는 내 인생의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나 학교 그만둘래요!"
중학교 2학년이 되고 한달 쯤 되었을 때다. 아이는 학교에 안 다니겠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어쩌면 우리에겐 갑자기이지만 아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을거란 짐작은 들었다.
"왜?"
"그냥요!"
생각이 복잡했다. 그냥 학교를 그만둔다니. 그동안 아이의 친구관계나 학업, 담임과 소통은 그런대로 무난했었다. 학교를 그만 둘 만한 이유를 당장에 듣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사춘기를 아주 예민하게 보낸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자기 생각을 편안하게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한 달만 더 다녀보면서 그래도 정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지 고민해보라고 했다. 또래끼리 어울려야 할 시기에 혼자 생활할 아이를 떠올리니 심란했다.
아이는 우리와 약속한 한 달을 기꺼이(?) 다녔다. 그리고 집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그 한달이 엄마 아빠한테 그래도 자기가 많은 고민으로 결정했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시간표를 세우고 인강을 들었다. 아이는 과학고를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고를 가려면 수학경시대회 같은 곳에서 수상경력도 필요했다. 하지만 아이는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길이 멀었다. 인터넷으로 과학고의 정보를 상세하게 알면 알수록 아이의 실망은 더 커졌다.
자기 계획표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강제성 없는 계획은 가끔씩 아이를 무기력하고 나른하게 만들었다. 달달한 아침잠을 늘어져라 자는 것은 물론, 밤을 새워 컴퓨터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본다는 건 지리산도사보다도 더한 내공이 있어야 했다.
노상 컴퓨터를 붙들고 살던 아이가 어느날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에이, 학교를 그만두니 인맥이 끊어지네."
자기가 그만둬놓고 이건 또 뭔 말인가. 학교를 그만두고도 컴을 통해서 간간이 몇몇 친구들이랑 채팅을 했는데 친구가 이민을 떠나고 해외연수를 가는 바람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것이다. 유일한 소통이 좁혀지고,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공백이 점점 커질수록 아이는 속에서 쌓이는 불안과 불평불만을 온통 가족들에게 쏟아냈다. 그 중에 나는 아이의 봉이었다.
야예 눈앞에서 안 보이면 서로 부딪힐 일도 아니건만, 사사건건 두 모자는 튕기는 공처럼 예고도 짐작도 없이 허구한날 씩씩거렸다. 밥상 앞에서 밥을 먹을 때도 학교에서는 음식을 골고루 먹었는데 집에서는 만날 먹는 것만 먹는다고 불평이 늘었다. 온통 아이한테 묶여서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주나, 이걸 하면 잘 먹을까, 저걸 하면 좋아할까. 시시때때로 신경을 써야 했다. 그뿐이랴. 교복을 벗으니 이번엔 입을 게 없다고 옷타령을 해댔다. 그렇다고 옷을 사오면 순하게 그냥 입지도 않았다. 엄마 감각이 그렇지 뭐, 하는 말이나 내뱉는 심술투덜이가 우리 아이였다. 생각할수록 세상에 이런 아니꼬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날마다 아이랑 티격태격하면서 지낸던 어느 날, 아는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를 그만둘까 하는데 내 조언이 필요했단다.
"혹시 홈스쿨링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시나 해서요. 저도 굳이 아이가 꼭 학교를 다녀야만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이한테 그런 얘기를 들으니 아주 막연해지네요."
"글쎄요. 홈스쿨링이라고 말하니 거창한데요. 우리애는 중학과정인데, 고등학교과정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통화를 하는 중에 아들아이가 언제 왔는지 나를 보면서 자기 두 손으로 'X' 자를 만들어보였다. 두 사람 얘기를 듣고 있다가 자기 경험을 전해주고 싶었나보다. 아이는 그것도 부족해서 메모지에 '절대 안됨'이라고 써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 아들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딴에는 결정한 바가 있어 학교를 그만뒀지만, 자기도 힘들다는것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란 걸 다시한번 확인하고 깨달으면서, 아이가 이 시간을 홀로 견디는 것이 내내 안타까웠다.
***
올해 4월, 학교를 그만둔 지 꼭 일년 후에 아이는 그동안 혼자 공부한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과학고의 미련은 대전에서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접었다.
경기도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고입선발고사를 치른다. 입학설명회가 학교마다 끝나고 이제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이가 다닐 고등학교에 시험접수를 해야 한다. 아이는 지금 다음달 중순에 보게 될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엄마한테 투덜대면서 말이다.
학교를 그만둘 때만 해도 아이 머리가 내 어깨에 와있었다. 이젠 내 머리가 아이 어깨에 머문다. 눈에 띄게 키가 크는 만큼 마음도 크는 중이다. 크면서 상처도 받고 스스로 극복하면서 내년엔 어엿한 고등학생이 될 것이다. 다시 바쁘고 힘든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되지만 아이는 그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실감하리라.
홈스쿨로 전화했던 엄마와 다시 통화를 하면서 아들아이의 마음을 전했다. 며칠후 그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애한테 얘기를 해줬더니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생각으로 정리를 했어요. 저랑 부딪칠 것도 없이 아주 설득력있게 받아들이더라구요. 때마침 아주 적절한 조언이었어요. 고마워요." 덧붙이는 글 | <저, 사고쳤어요> 응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