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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들어가 누워본 것이 이번이 몇 번째쯤 될까? 그나저나 나는 왜 자꾸 관 속에 들어가는 걸까?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라는 직업에 충실하기 위한 체험활동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특별히 그곳에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까?

입관예식 준비가 되어 있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충 대성당
▲ 입관체험 1 입관예식 준비가 되어 있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충 대성당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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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 수업의 하나로 오늘(2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대성당에서는 입관체험이 있었다. 단순히 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식의 입관예식 전 과정을 참석자들이 함께 해나가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제단을 향해 머리를 두도록 세로로 놓인 관 앞에는 검은 리본을 두른 거울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입관 전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옆에는 뼈와 흙과 재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어서 우리가 죽어 무엇으로 남는지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제단 앞에 관이 준비되어 있다
▲ 입관체험 2 제단 앞에 관이 준비되어 있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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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체험을 한 후에는 뼈 - 흙 - 재(사진 오른쪽부터)를 차례로 만져본다
▲ 입관체험 3 입관체험을 한 후에는 뼈 - 흙 - 재(사진 오른쪽부터)를 차례로 만져본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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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도회 김보록 신부의 집례로 진행된 입관예식은 다함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되어, 원하는 참가자들이 두 명의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차례로 입관체험을 하는 동안 죽 이어졌다. 특히 '자신의 죽음 묵상'은 나의 죽음을 상상하며 묵상하도록 되어 있어 그동안의 입관 체험과 달리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당신은 지금 심한 병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이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죽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죽기 전에 꼭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당신의 죽음까지 1시간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1시간을 어떻게 지내고 싶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의 육신에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합니다…

…이제 당신의 시신이 누워있는 관을 앞에 모시고 장례식이 시작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당신의 관 위에 한 송이의 꽃과 한 줌의 모래를 던집니다… 그 꽃과 모래를 그들의 마지막 사랑의 표시로 받으십시오… 당신의 전 생애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당신의 영혼을 맡기십시오… 얼마 후 그 영혼을 떠나 흙으로 돌아갈 당신의 육신도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감은 눈 위로, 그 순간이 오면 그럴거라고 말로만 듣던, 지나온 시간들이 그림처럼 스윽 스쳐지나가며 몇 가지 모습과 생각이 이어서 떠올랐다. 완전히 힘이 빠져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모습, 정말 꼭 하고 싶은 단 한 마디의 말, 내 육신에게 보내는 인사, 내 관 위에 던져질 꽃과 흙, 아니 화장로로 들어가는 내 관과 그걸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

그 순간의 감정은 슬픔도, 미련도, 아쉬움도, 고통도, 후회도, 애통함도 아니었다. 내밀하다고나 할까. 그 누구도 알 수 없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감정을 나 스스로는 완전히 이해했으며, 더 이상의 흔들림 없이 죽음을 받아들여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은 저절로 차분해졌으며, 가슴은 눈가와 함께 촉촉히 젖어들어갔다. 그러나 눈물이 흐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래 전 같은 과정을 수료한 덕에,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순서가 다 끝난 후 다행히 내게도 입관체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먼저 관 앞쪽에 마련된, 검은 리본 두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만 들여다본다. 이것이 곧 영정이며,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 눈으로 보는 마지막 내 얼굴이다. 문득 떠오른 말. '너는 누구냐?  이 세상 이런 얼굴로 살아온 너는 과연 누구냐?'

그리고는 나의 입관체험이 이어졌다.

입관체험에 앞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영정)을 가만 들여다본다...
▲ 입관체험 4 입관체험에 앞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영정)을 가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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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관에 들어가 눕는 중
▲ 입관체험 5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관에 들어가 눕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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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뚜껑이 닫히기 직전
▲ 입관체험 6 관 뚜껑이 닫히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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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 속에 누워있고, 신부님께서는 죽음과 죽음준비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 입관체험 7 나는 관 속에 누워있고, 신부님께서는 죽음과 죽음준비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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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체험이 다 끝난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 50명 가까운 체험자 가운데 8명이 나와 발표를 했다.

…관이 생각보다 좁고 작고 약간 추웠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니 버리는 연습을 더해야 겠다… 죽음이란 매듭이 풀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작은 매듭을 잘 풀면 큰 매듭도 쉽게 풀릴 것이다… 입관체험을 앞두고 두 아들에게 보내는 유언장을 다시 썼다… 관에 발이 닿자 혹시라도 스타킹에 줄이 갈까 싶어 순간적으로 다리를 구부렸다(웃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란 슬픔이 아닌 하늘문이 열리는 것… 남기고 갈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고 역시 그것은 사랑이다… 

이번 입관체험을 준비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그동안 입관체험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있어 제대로 된 체험의 기회를 찾고 있었다"며, "오늘 참가자들이 무척 진지한 모습으로 죽음을 묵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김보록 신부님께서는 밝고 정중하게 예식을 집례해 주셔서 죽음이 결코 칙칙하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실감할 수 있었다"고 총평을 했다.

홍 회장의 소감은, 설교 중에 자신의 나이가 칠십이라며 "물론 신앙의 토대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만, 나 자신이 죽음을 자주 묵상하다보니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지며, 진지함과 함께 안도감을 느끼고, 기쁨이 우러나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고백한 김보록 신부의 이야기와 통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동안의 입관체험에서 미처 정리되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체험을 경험하기도 했고, 상업적으로만 접근해 진지함도 의미도 완전히 결여된 체험도 직접 해봤기에 오늘의 체험은 각별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삶과 죽음을 묵상할 수 있었고, 경건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로 차분하게 진행되어 입관체험에 대한 인식을 일정 부분 바꿀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오늘의 입관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우선,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누구를 향한 것이 될지 확실하게 알았다. 여기서는 밝힐 수 없지만 그동안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던 바로 그 일, 그 관계가 가장 큰 무게로 내게 얹혀있음을 절감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관 속에 누워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진지하게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물론 입관체험이 그 깨달음의 동기 혹은 계기가 되긴 하겠지만, 굳이 그것에 얽매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늘 나는 내 죽음의 과정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자신의 죽음 묵상' 순서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 살면서 삶의 무게에 치이고 관계에 휘둘릴 때, 혹은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해 헤맬 때 오늘 배운 대로 내 죽음을 묵상해 보려 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서 살다 가야 되지 않겠는가...나 떠난 자리에 과연 무엇이, 어떤 기억들이 남게 될까….

그나저나 또 기회가 온다면 나는 이번에도 관 속에 들어가 눕게 될까? 나도 궁금하다.

앞 체험자가 벗어 놓은 신발. 언젠가 내가 떠나고 나면 내 신발만 저렇게 세상에 남겠지...
▲ 입관체험 8 앞 체험자가 벗어 놓은 신발. 언젠가 내가 떠나고 나면 내 신발만 저렇게 세상에 남겠지...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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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 문의 전화 : 02-736-1928



태그:#죽음준비, #웰다잉, #입관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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