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문화의 성숙 없이는 언제든지 퇴행과 반전, 타락의 위험 속에 내몰린다."

 

<오마이뉴스>와 출판그룹 휴머니스트가 마련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강좌의 첫 강연자로 나선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장)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23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특강에서 도 교수는 한국사회가 처한 총체적 위기의 징후들을 꼼꼼히 짚어갔다.

 

"2년 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안심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안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후퇴기에 들어가 있다. 몇몇 정치학자들은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되었느니' 하는 망발들을 쏟아냈다.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민주주의는 제도이면서 문화이고, 정신이면서 가치다. 또한 민주주의를 성숙 시키는 것은 정치영역만의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영역의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하는 민주적 가치와 태도, 원칙, 의식, 정신상태, 곧 '시민문화'의 성숙을 요구한다. 문화의 토양 없이 민주사회는 요원하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 같아 보이는 것도 쉽사리 엎어지거나 퇴행과 반전의 운명을 거듭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마라톤이다."

 

도 교수는 또 우리 사회에서 증오가 자유와 관용을 대체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권자는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에게만 둘러싸이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미국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만의 말을 인용한 도 교수는 어떤 집권세력도 반대를 허용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오의 문화가 확산되는 사회에서는 자유가 제약되고 관용이 발붙일 장소가 없다. 관용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다. 관용의 현대적 의미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타인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관용은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민주주의의 가장 창조적인 순간을 만들어가지만 지금 우리는 관용 사회로부터 굉장히 멀어져 있다.

 

관용의 정신이 서울에 오면 낙엽처럼 시들어 거리를 뒹굴게 된다. 보수적이라고 비판받는 미국의 록펠러 재단은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자도 지원했다. 민주정치의 필수 덕목은 반대를 허용하는 일이다. 그것이 없으면 집권세력 자신이 자빠지게 된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정치인들이 하는 짓이 반대파를 때려잡는 일이다."

 

이어 도 교수는 사회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언론이 잠들었을 때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에서 신문과 방송 같은 미디어는 단순히 정보의 전달자뿐만 아니라 의견을 만들고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수행한다. 권력에 대해 감시해야할 언론이 침묵할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우리의 감시견(Watchdog)은 잠들었는가? 잠든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잠꼬대와 허튼 소리를 해댄다. 심지어는 꿈에서도 거짓말을 하는 놀라운 역량을 발휘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할 존재들이 눈을 감으면, 경고음이 침묵해 버리면 그 사회는 망하는 것이다."

 

도 교수는 '시장전체주의'라는 새로운 괴물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가치만이 인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원리라고 믿는 시장유일체제가 바로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시장에서 팔리는 것만이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효용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그 사회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 번영과 행복을 강조하다보니 개인의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할 것 없다는 심리가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괴물의 등에 올라타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시장체제가 전 사회를 먹어 버리면 그 사회는 반드시 엎어진다. 시장 전체주의적 사고방식과 사회운영 방식이 우리를 장악하게 하면 안된다. 교육을 한번 돌아보라. 교육은 마지막까지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이것까지 얼마나 시장이라는 괴물의 손에 장악되었는지 보라."

 

무엇보다 도 교수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이 절실히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란 물음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목표에 관한 질문이며 정신과 비전, 꿈과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망각한 사회는 제아무리 잘살아도 길 잃은 사회다.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2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시민성이 살아있는 시민적 민주주의 사회이고 둘째는 공동체적 사회이다. 시민사회는 그 속에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뜻함, 친절함, 우애, 선의, 배려, 연민 이런 인간적 가치들은 공동체적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좋은 사회의 구성원은 첫째가 시민이고 거기 더하여 이웃이다. 시민과 이웃이라는 두 가지 존재가 결합했을 때 좋은 사회가 가능하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두 번째 강좌는 24일 저녁 7시 30분 '1인 미디어, 주류 미디어의 깃발을 내리다'는 주제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강연자로 나선다.

 


태그:#도정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